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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주문제 누가 백제를 우리역사라고 하는가?(6)  
hanbark33  l  2020-10-12 조회 : 104    

제91주문제 누가 백제를 우리역사라고 하는가?(6)


1. 이 발표는 한, 중, 일 3국의 15억 인구 중에서 최초로 필자가 20여년의 피땀흘린 연구 끝에 발견하고, 찾아내고, 추적한 것이므로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일제가 만들어준 기존의 역사만 알고 진실을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깊이 새겨주기를 희망한다.


2. 1910년 일제가 조사한 아시다(한반도) 인구는 1300만 명이었다. 그러므로 국가도 있었고, 왕도 있었고 역사로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일제는 이것을 깡그러 말살시켰다.

그리고 일제는 1911년부터 1920년까지 10년 동안 중국 땅에 있었던 대한제국 국민약 400만 명을 한반도로 이민시켰는데 일제는 그들이 가지고 온 역사를 신만주와 아시다(한반도)에 밎추어서 조작한 다음에 “이것이 너의들의 역사다”고 주었는데 한국은 이것을 받아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3. 민족단체라는 허울을 쓰고 고조선이 우리역사이고 단군이 국조라고 하는 것은 일제가 조작한 역사를 고수하는 것이니 일제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하게 하는 것이다.


4. 한국사는 중국사를 섭렵하지 않고서는 밝힐 수 없다. 왜 내나라 역사인데 남의나라 역사를 섭렵해야 밝힐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한국사가 가짜라는 확실한 증거다.


5. 세상에는 진실과 거짓이 있고 강대국과 약소국이 있다. 거짓은 진실을 덮고 있고, 강대국들은 약소국의 역사와 문화를 마음대로 요리했다. 한국의 경우 일제가 만들어준 것으로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으므로 이제 정리해야 될 때가 되었다고 본다. -----한국상고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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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족과 한양(유우찬 저서 “한국사검토서” 560면. 50,000원).


1. 한족(漢族)(중국고금지명대사전 P.1103)

“오천년 전, 최초거주지는 곤륜산이다. 강줄기를 따라 곤륜산 동쪽 아래에서 살았다그 땅의 서부와 북부다황제헌원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묘족이다그 후 점차 커져서 여러 인종들을 규합하여 세력이 커졌다. 위(魏), 진(晉) 이후에 외부인들이 중국을 ”한(漢)”이라고 했다. 본국인도 역시 “한(漢)”이라고 했다. 황하(청해성 서황하상류지역), 장강(양자강 서쪽이역), 월강(사천성 지역)에 거점을 이루었다.(五千年前. 最初據地當在崑崙山. 沿河源東下居. 內地之西部及北部.. 自黃帝戰勝苗族. 其後漸次駏逐各種人. 勢力擴大. 魏晉以後外人稱中國爲漢. 本國人亦自稱漢. 黃河, 長江, 粵江流域居住.)

(월粵: 말 내키다. 어조사, 곰곰이 생각하다, 나라이름, 越과 통: 사천성 땅)

(해설)

한족이란 청해성 청해호 서쪽 곤륜산 일대에서 일어난 치우의 묘족인데 감숙성의 황제헌원과 싸워 승리한 후에 세력이 커졌다는 뜻이다. 한족이나, 한나라라고 한 것은 약 1500년 전에야 생긴 말이다. 한족의 거점이라고 하는 3개소는 단국3韓족의 거점 중의 하나인 청해성의 묘족인데 환단고기와 삼국사기를 한반도역사로 조작했으므로 단국 3韓을 “한(漢)”으로 바꾸어 조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전의 역사와 나라이름을 감추기 위해 1911년 이후 즉 일제시대에 역사조작하면서 “한(漢)”으로 글자를 바꾸어 조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우리는 2200년 전부터 있었고, 서안이 한나라 도읍지라고 알고 있으니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한족(漢族)은 청해성- 사천성- 호북성 서부일대에 퍼져 살은 족속이라는 것이 증명된다. 이 민족의 이동경로는 섬서성 서안서쪽이 거대한 호수였기 때문에 섬서성쪽으로 동진하지 못하고 사천성과 호북성 서쪽의 고지대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나라 때의 제나라와 노나라는 청해성 동남부이고, 오월춘추, 오월동주(吳越同舟), 와신상담 등으로 유명한 오나라, 월나라도 사천성 서부일대의 나라인데 지금의 기록들은 바닷물이 물러간 후에 양자강 동부 동해안지역으로 이동 조작했음을 알 수 있다.

사천성을 한나라 초기에는 월 땅으로 했다가 후에 그 땅을 점령하고 보니 엄청나게 큰 땅이어서 익주(益州)로 고쳤다. 그런데 후세에 사천 땅에는 수많은 강들이 있지만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大江 즉 양자강상류(大金江), 민강(岷江: 흑수), 부강(涪江), 가능강(嘉凌江)이란 4대강이 있는 땅이란 뜻의 四川省으로 고치고 월과 익주는 감숙성 북부에 작은 지역으로 이동시켜놓았다. 그래서 발해역사에 (익주(翼州), 익주강(翼州江: 압록강)이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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