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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주문제 누가 백제를 우리역사라고 하는가?(7)  
hanbark33  l  2020-10-19 조회 : 53    

제92주문제 누가 백제를 우리역사라고 하는가?(7)


1. 이 발표는 한, 중, 일 3국의 15억 인구 중에서 최초로 필자가 20여년의 피땀흘린 연구 끝에 발견하고, 찾아내고, 추적한 것이므로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일제가 만들어준 기존의 역사만 알고 진실을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깊이 새겨주기를 희망한다.


2. 1910년 일제가 조사한 아시다(한반도) 인구는 1300만 명이었다. 그러므로 국가도 있었고, 왕도 있었고 역사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일제는 이것을 깡그러 말살시켰다.

그리고 일제는 1911년부터 1920년까지 10년 동안 중국 땅에 있었던 대한제국 국민약 400만 명을 한반도로 이민시켰는데 일제는 그들이 가지고 온 역사를 신만주와 아시다(한반도)에 밎추어서 조작한 다음에 “이것이 너의들의 역사다”고 주었는데 한국은 이것을 받아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3. 민족단체라는 허울을 쓰고 고조선이 우리역사이고 단군이 국조라고 하는 것은 일제가 조작한 역사를 고수하는 것이니 일제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하게 하는 것이다.


4. 한국사는 중국사를 섭렵하지 않고서는 밝힐 수 없다. 왜 내나라 역사인데 남의나라 역사를 섭렵해야 밝힐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한국사가 가짜라는 확실한 증거다.


5. 세상에는 진실과 거짓이 있고 강대국과 약소국이 있다. 거짓은 진실을 덮고 있고, 강대국들은 약소국의 역사와 문화를 마음대로 요리했다. 한국의 경우 일제가 만들어준 것으로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으므로 이제 정리해야 될 때가 되었다고 본다. -----한국상고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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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족과 한양(유우찬 저서 “한국사검토서” 560면. 50,000원).


2. 한양(漢陽)


1. 한양군(漢陽郡)(중국고금지명대사전):

후한이 전한의 천수군 치소인 기 땅으로 옮겼다. 엣 성이 지금 감숙성 감곡현 남쪽에 있다. 후에 군을 한양으로 고쳤다. 삼국위나라가 다시 천수로 했다.

⊙후위, 서위, 수나라 때 성이 지금 감숙성 례현 서남에 있다.

⊙후위가 설치했는데 북주가 폐했다. 옛 성이 지금 감숙성 천수현 서남에 있다.

⊙본명이 역성인데 또 다른 이름은 (고구려) 건안성이다. (이곳에)수나라가 한양군을 설치했는데 당나라가 폐했다. 엣 성이 지금 감숙성 성현북쪽에 있다.

(後漢移前漢天水郡治 冀. 故城在今甘肅甘谷縣南. 尋改郡爲漢陽. 三國魏復曰天水..

⊙後魏, 西魏, 隋 故城在今甘肅禮縣西南.

⊙後魏置. 北周廢. 故城在今甘肅天水縣西南

⊙本名歷城又名建安城. 隋置漢陽郡. 唐廢. 故城在今甘肅成縣北.)“

(해설)

전한은 지금의 청해성 땅에 있었는데 후한이 전한 때의 천수군 치소였던 기 땅 즉 지금의 감숙성 무산(한양)으로 AD.25년에 천도한 것이다. 이것이 동한의 도읍이다. 그리고 천수군을 한양군으로고쳤다는 뜻이다. 후세에는 이 지역 일대에서 대방 땅 여러 곳으로 이동되었다는 기록이다. 감숙성 천수서남의 기(冀) 땅은 단군의 번한 땅이고, 고조선의 번조선성이므로 원래는“韓”인데 한나라가 “漢“으로 글자를 바꾼 것이다. 또는 1911년 이후 역사조작 때 바꾼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 지역 즉 감숙성 동부의 한수남쪽인 대방군 땅에는 비류백제와 가락국이 있었고, 북쪽에는 낙랑 즉 서라벌, 사로, 고구려가 있었는데 고구려, 백제, 사로, 가락국은 후한 때는 후한에 예속된 郡縣으로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을 국가로 조작해서 한반도역사로 둔갑시킨 것이다.

후한은 219년에 망했으므로 고구려, 백제, 사로, 가락국은 후한이 망한 219년 이후에야 비로소 국가적인 면모를 갖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한나라 현토군 소속으로 있었던 고구려가 자립하기위하여 한나라와의 전쟁이 치열했던 것이 비로소 이해된다.


2. 한양부(漢陽府)(중국고금지명대사전):

“수나라가 면양군을 설치했다. 당나라가 나누어 면주를 설치했다가 후에 한양으로 했다. 후에 다시 면주로 복원했다. 오대와 송나라는 한양군으로 했다. 원나라는 한양부로 승격했다. 청나라 때는 호북성이다. 중화민국이 폐하고 치소를 지금의 한양현으로 했다.(隋置沔陽郡. 唐析置沔州. 尋爲漢陽. 後復曰沔州. 五代及宋爲漢陽軍. 元升爲漢陽府. 淸屬湖北省. 民國廢. 治所爲今漢陽縣.)”

(해설)감숙성의 원래위치를 감추고 남쪽으로 이동 조작된 기록인데 한수가 섬서성 남쪽 한중 땅에서 동쪽의 호북성 무한지역으로 흐르는 한강으로 설명한 것이므로 의미가 없으나 민족의 이동에 의해서 옮겨진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간단히 살펴보면, 면양군은 사천성동북방향인 섬서성 남쪽 한중(남정) 땅인데 여기가 후세의 이동된 한양군이며 후에 호북성 무한지역으로 이동되었다.


3. 한양현(漢陽縣)(중국고금지명대사전):

최초 한양군은 후한이 감숙성 천수군에 설치했고, 최초 한양현은 『삼국의 촉나라가 지금의 사천성 경부현 남쪽에 설치했다.』 그후는 아래와 같다.

『⊙남송이 설치한 것은 지금의 사천성 면죽현 땅이다.

⊙남제가 설치한 것은 당시에 사천성 경계이다.』

(해설)사천성 성도북쪽 면죽현에서 성도 남쪽 아미산지역까지의 강이 한천(漢川) 이며 성도남쪽에 대도천이 있다. 成都는 기자조선왕 기준의 마한이고, 촉나라 도성지역이고, 온조의 금마백제 한양이며 한천(대도천)이 있다.


그리고 다음의 기록은 다시 섬서성 남부 한중 땅에서 호북성 무한에 이르는 한강과 한양의 이동경로다.

『⊙후위가 설치한 것은 옛 치소가 지금의 섬서성 한음현(한중 땅 남정현) 동쪽에 있다.

⊙서위가 설치한 것은 한양군과 같다.

⊙한나라 사이현 땅이다. 후한 말에 사이현 차소가 있었다. 진나라가 석양현을 설치했다가 후에 곡양현으로 고쳤다. 남송이 다시 능곡으로 고쳤다. 제나라는 돈양으로 했다. 수나라가 한진현을 한양으로 했다. 청나라는 호북성 한양부 치소로 삼아 한양진의 총병을 주둔시켰다. 중화민국은 부를 폐하고 현만 존속시켰다. 원래 호북성 강한도 소속이다. 현의 성은 당시에 강과 한양의 합류처다. 강의 동쪽으로 멀리 무창이 있고, 한양의 북쪽에 멀리 한강구가 있다. 옛 부터 지금까지 군사주둔과 전쟁의 요충지다. 성의 북쪽에 있는 구산의 기슭에 철을 주조하는 공창이 있는데 병기제조창이다. 청나라 때 장지동이 창설했는데 중국 유일의 제철창이다.』

(해설)한나라 사이현은 호북성 무창 서남지역이고 오나라, 진(晉)나라의 하구성(夏口城)이다. 이 기록은 섬서성 서남쪽 한중(漢中: 南鄭) 땅에서 호북성 무창지역의 양자강으로 흐르는 한강을 따라 한양이 이동된 것을 설명한 것이다.

만주와 한반도 지명들은 이러한 연혁이 없고 일제때 중국에서 이동조작한 것만 있다.

(유우찬 저 “삼국사기검토서”, “한국사검토서“)


✦한반도 한양은 중국에서 이동조작한 가짜다.

★역사는 역사적조건, 지리적조건, 환경적조건 등으로 검토하여 결정한다. 단순히 책만 가지고 이러 쿵 저러 쿵 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학문으로서 진실을 외면한 사상적 몰이 배들에게 휩쓸리기 쉽다.

-----한국상고사연구회 회장 혁신파역사가 유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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