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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주문제 일제의 유물조작  
hanbark33  l  2019-03-07 조회 : 19    

31주문제 일제의 유물조작

 

지난 18년간 역사의 진실을 추적한 결과 한국의 역사가 100% 다 조작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래서 필자는 한국의 고인돌부터 경복궁에 이르기 까지 유물유적 전체가 다 조작되었다는 견해를 밝힌바 있다. 필자와 비슷한 견해를 가진 분의 글을 참고로 소개한다.

2017820 난징대학출신 조노헌(釣虛軒)교수가 페이스븍에 실은 글을 2019. 2. 9일 필자가 발췌했는데 이를 소개한다.

 

일제의 주체할 수 없는 유물 조작 본능 ()

일본인에 의한 고고 유물 조작하면 대부분 1990년대에 있었던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의 구석기 조작사건을 떠올릴 겁니다. 이 황당한 유물 조작사건에 장단을 맞추었던 알본 고고학계와 역사학계는 지난 100년동안 쌓아 올린 학술적 권위가 하루아침에 땅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국제 학계조차 이들 학회의 공신력과 연구성과들을 의심의 눈초리를 바라보기 시작했지요. . 최근 갱단 일각에서 이삐리리라는 소설가가 후지무라 신이치의 유물 조작사건을 놓고 이런 소리를 했다지요. 독학으로 고고학을 공부한 아마추어 즉 재야 고고학자의 단독범행이며, 그의 조작행위를 밝혀낸 곳은 오히려 일본 고고학회였다!”.... 이거야 원!

주장의 신빙성은 접어두고라도 참 오지랖 한번 태평양처럼 넓군요. 세상에 이제는 하다 하다 일본 학계 걱정까지 다 해 주다니?

지 딴에는 일본 고고학회는 절대로 유물 조작이나 역사 왜곡은 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생각을 합리화하고, 나아가 국내에서도 사고치는 쪽은 재야다

이딴 궤변을 늘어놓기 위한 허리우드 액션인 거 알만 한 분은 다 압니다. 그러나! 어디 할 짓이 없어서 후지무라의 유물 조작의 본질을 호도하려 듭니까?

국내 갱단이 일본 고고학회와 무슨 관계가 있기에 일본의 유물 조작사건을 그토록 감싸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유물 조작을 아마추어만 하고 프로는 하지 말라는 법이라도 있답니까?

.

물론, 구석기 유물을 조작한 후지무라가 아마추어 고고학자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fact)입니다. 그러나 하나를 보면 열은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일개 아마추어 고고학자가 수십년동안 유물을 조작하면서 명성을 떨쳤다? 그렇다면 거기에는 그의 명성에 밥숟가락을 얹으면서 그의 범죄에 침묵하거나 방조하면서 악성 종기를 키워 놓은 데에서 일본의 역사학계와 고고학계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일본 학계는 후지무라를 일본 고고학의 바람잡이로 실컷 이용해 먹은 후 상황이 불리해지자 막판에 그를 버린 것뿐이에요. 그런데 몸통은 억울하고 꼬리만 죽일 놈이라니 이런 본말 전도가 어디 있습니까! .

갱단 일각에서는 일본의 역사학회, 고고학회를 유물 조작이나 역사 왜곡은 전혀 할 줄 모르는 지고지순한 천사집단이라도 되는 것처럼 호도하곤 합니다. 물론, 그게 다 자신들의 구린 뒤를 감추기 위하여 지레 떠는 호들갑들이지요. 그러나 과연 유물 조작의 모든 책임을 후지무라라는 가련한 아마추어 재야 학자에게만 다 뒤집어씌울 수 있을까요?

일본의 고고학계, 역사학계는 적어도 유적, 유물 조작이나 역사 날조, 왜곡에 있어서만큼은 꿀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그 분야에서 이미 후지무라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화려한 전과를 가지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지요. . <사진 - 1895-1905 러일전쟁 기간동안 여순의 전곽묘를 도굴하는 일본군> . 일본의 고고학자인 곤토 요시로(近藤義郞: 1925-2009)는 과거에 이렇게 참회한 적이 있습니다. 일본 학자들이 조선과 중국에서 벌인 고고학 연구는 아시아 대륙에 대한 일본의 침략정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그가 이렇게 폭로를 한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국 학자 장효주(張曉舟)는 자신의 논문에서 일제가 중국 만주국 경내에서 진행한 고고학 활동들의 특징을 다음의 여섯 가지로 개괄한 바 있습니다. .일본이 주도한 동아고고학회는 일본의 대중국 문화사업의 일환이었음일본정부와 관동군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일제의 문화침략행위였음발굴조사는 일본이 사실상 독점했고 중국은 들러리에 불과했음 고고활동들은 일제에 의해 식민침략을 선전, 미화하는 데에 악용됨발굴된 유물들은 사실상 대부분 일본 학자들에게 약탈당함만주국은 이 모든 문화침략행위에 묵인으로 일관함.

장효주의 주장을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1945년 이전의 일본의 고고학, 역사학은 겉만 학문이지 속 알맹이는 철두철미한 제국주의 문화침략의 도구였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일본의 고고학,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일본 고고학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에는 그것을 인문과학, 또는 하나의 학문이라는 견지에서 이해하려 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학문은 그저 정치, 외교적 목적 달성이라는 사회과학의 하부범주로서만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런 것까지 학문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숭고한 인문학 정신을 모독하는 행위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강단 학계가 왜 국민들로부터 식민사학으로 매도될까요? 그것은 바로 그들이 인문정신을 모독하는 식민사학자들의 논리와 역사왜곡을 그대로 추종하고 미화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왜 진성 학자가 아니라 유사 학자이고 음모가들인지 이제부터 사례별로 차근차근 따져보도록 하겠습니다. . <사진 - 아마추어도 해낸 유물 조작을 전문가 학자들은 안 했다고?> .일본인들의 주체할 수 없는 조작본능.

19세기 말부터 일본인들이 조선에서 무차별적으로 고적을 조사하고 유물을 입수하는 데에 열광했습니다. 이같은 만행은 당시 중국에서도 똑같이 자행되고 있었지요. 일본인들은 패망하는 1945년까지 일본 정부의 비호 하에 자신들이 강점한 만주지역에서 고적 조사와 유물 수습을 빙자한 문화침략을 대대적으로 자행했습니다. .<청나라 황제 보좌에서 포즈를 취한 골동품 중계업자 야마나카> .중국대백과전서-고고학권에서는 1900년에서 1945년까지 일본인들이 중국 영토 내에서 자행한 문화침략 행위들을 상세하게 소개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사례들만 꼽아도 53건이나 됩니다. 여기에 항간에 알려지지 않았거나 자잘한 사례들까지 포함시키면 그 사례가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요. 그 중 일부만 소개해도 10가지가 넘습니다. .1902 오타니, 신강에서 벽화 등 대규모 유물을 절도. 오타니 컬렉션

1905 도리이 류조, 요동반도, 동북지역을 대상으로 1911년까지 도굴, 절도

1910 하마다 케이사쿠, 여순지역에서 한대 고분 도굴, 절도

1918 세키노, 하북, 산서, 하남, 산동, 강소, 절강 등지에서 도굴, 절도

1927 하라다, 하마다, 중국 학자들을 들러리로 세워 여순-대련지역 도굴

1933 무다 데츠지(牟田哲二), 적봉 홍산 일대에서 대량의 유물을 도굴, 반출

1933 골동품 경매업자 야마나카 사이지로(山中定次郞)가 골동품상 예옥서(倪玉書)와 결탁하여 각지 석굴 석조물을 해체, 절도

1934 세키노가 다케시마 등과 요나라 상경, 중경, 경주 등지를 도굴, 절도

1935 미카미가 내몽고 적봉, 북경을 조사한 후 도자기 표본을 절취

1935 하마다가 홍산에서 21일간 발굴조사, 유적 2, 고분 31곳을 도굴

1935-36 하마다, 이케우치, 집안에서 고구려 유물 다수를 밀반출

1936 쿄토동방문화연구소 미즈노, 나가히로, 용문석굴 등을 조사, 절도

1937 낙랑토성을 조사한 하라다, 코마이가 상도(上都) 유적 조사후 절도

1938-39 봉천국립중앙박물관 관장 미야케, 무순에서 요금대 토성 도굴

1940 하라다, 한단의 조왕성(趙王城), 북위 평성(平城) 터를 절도함

1941 일본인이 베이징 원인 두개골을 반출하다가 행방이 불명해짐

1942 일본군이 길림 훈춘의 팔련성(八連城) 터를 도굴

1942 하세베, 다카시, 남경 남쪽에서 삼장법사의 유골을 도굴

1943 하라다와 시마다, 요 조주(祖州)에서 41일간 도굴한 유물을 밀반출

1944 도자기학자 고야마, 적봉, 요 상경 도요지에서 도굴한 유물을 밀반출<1936년 주구점(周口店) 발굴현장에서 발견된 북경원인(北京猿人)” 두개골은 일제 점령기간에 행방불명 되었다>

---- 한반도는 훌륭한 문명문화의 고장이었으므로 유물유적을 불태워 없애고, 파괴하여 없애고, 변조, 개작, 신설 등이 수천가지는 자행되었을 것인데 조사된 정식 기록은 없고 아예 처음부터 그런 일은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조작되어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식민역사를 우리역사라고 하고, 가르치고 세뇌시켰으므로 한국은 일제의 철저한 하수인으로 살아온 갓이다. 이제 우리도 각성할 때가 되었다. ----

일제가 중국에서 벌인 대규모의 무차별적인 도굴, 절도, 밀반출, 조작, 파괴 행각에 상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수십명이 넘습니다. 한국고대사 왜곡문제와 관련하여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만 해도 10명이 넘지요.

오타니 코즈이(大谷光瑞), 도리이 류조(鳥居龍藏), 하마다 코사쿠(濱田耕作), 세키노 타다시(關野貞)와 그 아들 세키노 다케시(關野雄), 하라다 요시토(原田淑人: 1885-1974), 코마이 카즈치카(駒井和愛),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 도리야마 키이치(鳥山喜一), 미카미 츠기오(三上次男), 미즈노 세이이치(水野淸一),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 하세베 코돈토(長谷部言人), 다카시 후유지(高井冬二), 미야케 에츠소(三宅悅宗), 사이토 다케이치(齊藤武一), 마츠모토 노부히데(松本信廣), 니시오카 히데오(西岡秀雄), 후지타 료사쿠(藤田亮策), 코바야시 유키오(小林行雄), 사이토 기쿠타로(齊藤菊太郞), 야마모토 마모루(山本守), 와다 세이(和田淸), 미야케 토시나리(三宅俊成), 고다마 시게오(兒玉重雄), ……. .

일일이 예로 들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이 인물들. 이들은 앞서 언급한 후지무라 같은 아마추어 고고학자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19-20세기 당시 아시아를 통틀어최고의 학부로 손꼽히던 동경제국대 또는 경도제국대에서 역사학, 고고학 관련 정규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교수로 재직하는 최고의 엘리트들이었습니다. 그들 중에서 더욱 출중한 사람들은 중국 고고학자들과 함께 창립한 동아고고학회(東亞考古學會)의 핵심 맴버도 다수 끼어 있습니다.

후지무라와는 격이 다른 당시 아시아 최고의 엘리트인 이들이 1900년부터 1945년 패망 직전까지 발굴조사를 빙자하여 중국, 조선 각지를 헤집고 다니면서 각종 유적, 유물들에 대한 도굴, 절도, 밀반출, 파괴, 조작, 위조 등 온갖 문화침략 행위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거나 개입한 겁니다. .후지무라는 쪼잔하게 유물 몇 개 조작하다가 꼬리가 밟혔지요? 그러나 이들은 아주 통 크게 박스째 일본 정부, 중국 주재 관동군, ‘만주총독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어마어마한 권력을 행사하던 남만주철도 주식회사 등 엄청난 권력기관들을 등에 업고 거액의 국가경비를 지원받으면서 거국적, 집단적으로 문화침략, 역사침략을 자행했습니다! .

실상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뭐라고요? 유물 조작은 아마추어가 했고 일본 고고학회는 그 범죄를 막으려고 했다고요? 실상이 위와 같은데 유물 조작과 역사 왜곡 본능에서 과연 일본의 고고학계와 역사학계가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소도둑들이 바늘도둑을 도둑이라고 하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요?

국내에서는 이들의 문화침략 죄상을 적극적으로 비호하고 미화하는 세력이 강단 학계에서 버젓이 교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삐리리나 기삐리리, 위삐리리, 정삐리리, 윤삐리리 같은 역사의식이라고는 병아리 눈꼽만큼도 없는 앞잡이들과 헌걸레21, 매국신문, 매국경제 등의 잡스러운 찌라시들을 동원해서 일본에서의 유물 조작을 그런 짓은 아마추어 고고학자가 벌인 짓일 뿐 학자나 고고학회와는 전혀 무관하다라는 허튼 말장난으로 소중한 지면을 낭비하고 국민을 기만하고 있습니다. 신의 손세키노와 쌍벽을 이룬 천리안하라다 (다음에 계속)

                                                                            2019. 3. 6.

                                                                                한국상고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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