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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주문제 고려역사(1)  
hanbark33  l  2019-03-11 조회 : 135    

제32주문제 고려역사(1)


1). 고려사기의 기록(1)
고려 왕건은 당나라 황제의 혼외자식으로 추정되며 고려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는데 아시다(한반도) 역사가 아니라 중국의 역사다.


1. 고려사 권 제42. 세가 42. 공민왕조 경술19년(1370): 과거제도
『"4. 향시(鄕試)에는 각 성(省)과 직예부(直隸府)와 주(州)에서는 합계 500명을 한도로 선출한다. 그러나 인재가 많이 모여 있는 곳은 규정된 수에 구애되지 않으며 인재가 부족하여 수가 차지 않는 데에서는 실제 정형대로 공(貢)에 충당할 것이다.
하남성 40명, 산동성 40명, 산서성 40명, 섬서성 40명,
북평성 40명, 복건성 40명, 강서성 40명, 절강성 40명,
호광성 40명, 광동성 25명, 광서성 25명.
경사(京師) 서울에서 실시하는 향시에는 직속부와 주들의 선비 100명이다.』


『5. 회시 (會試)
규정 선발인원 100명인데
가). 고려, 안남, 점성(占城) 등의 나라들에서는 만일 경시에 밝고 조행이 비른 선비가 있으면 각각 그 본국에서 향시를 실시하고 서울로 올려 보내어 회시에 응하게 하는바 규정인원수에는 상관없이 선발한다.
나). 시험일자(생략)』
※안남(安南); 광서성, 운남성, 월남북서부 등지
 점성(占城) : 광동성남부, 월남북부지역.


(해설)
1. 향시: 각 지방별로 치루는 시험이다.

2. 직예부, 직예 주: 직할시 같은 중앙 또는 지방의 직할부서를 말한다.

3. 산동성, 산서성:
『1307년도의 대원혼일방여성람(大元混一方與腥覽)의 고려광역도에는 산동성, 산서성, 하북성, 동북 3성은 없다.』 (중국고지도 광역도참고)
앞으로 대륙사 전공자들이 구체적인 연구를 해야 하지만 현재까지의 필자의견은 왕건의 고려는 산동성과 산서성 이동은 고려영토가 아니었을 것으로 본다. 다만 산서성 서남부 1개 군과 산동성 서남부 약간은 신라 땅이었으므로 고려영토라고 이해가 된다.
산동성과 하북성은 우리나라(伯濟) 땅이고, 이씨조선 때는 하북성만 우리 땅으로 추정된다.
하북성은 증화민국이 가져가고 이것을 중국 땅으로 완전히 굳히기 위해 장개석과 주은래가 “長城以北非我邦”이라고 했는데 한국인들은 속도모르고 만주만 생각하여 좋아했다. 일제의 하수인으로 살아가는 한국의 지식인들 때문에 빚어진 슬픈 사연이다. 그런데 지금도 각성할 줄 모른다.


4. 北平: 기록상 북평은
①한, 후한, 후위: 滿城縣 北(감숙성 창려)
②北平郡 치소: 晉, 후위, 수, 당(平州치소): 감숙성 노룡
③北平縣: 후위, 수, 당, 오대당, 송, 금: 감숙성 노룡
④北平府(順天府) 치소: 明, 淸: 감숙성 창려(경조윤) → 하북성으로 이동조작


5. 북경:
①唐 太原府爲北京, 五代後唐北京.--- 산서성으로 조작했으므로 무시함.
②金國---遼 上京臨湟府(감숙성 무위) 후애 遼 中京大定府로 이동(감숙성 창려추정)
③『明나라 초 하남성 商丘縣을 남경으로하고, 개봉을 북경으로 했다.
   후에 하남성 상구현에서 북평(北平)으로 천도하고 하남성 상구현을 남경으로 했다.
   북평을 북경으로 고쳤다.』 이것은 세상에서 그렇다고 전해오는 것인데 지금까지 확인해서 고치지 않았다.(世俗相沿 至今未改)

★명나라는 청해성의 묘족나라다. 그러므로 요서의 서이족이다. 사천성 성도가 명나라의 남경이며, 감숙성 창려가 명나라의 북경으로서 감숙성의 압록강이 이씨조선과 경계다.
요동의 동이족무대인 이씨조선을 한반도로 이동조작하고 중국전역을 명나라 땅으로 만든 것이 현재의 역사다. 청나라도 똑같이 이씨조선을 없애고 중국전역을 청나라 역사로 바꿔치기 한 것이다.
감숙성 북평은 후에 북경으로 고치고 명나라가 도읍으로 삼았는데 청나라도 도읍으로 삼았다.
하북성 북경은 중화민국의 손문이 만들고 강소성 남경을 남경으로 만든 중화민국의 북경이다.왜 손문은 이씨조선의 도읍인 서안으로 가지 않고 북경에 새로운 도읍을 만들고 남경까지 만들었을 꺼? 그 당시 섬서성 서안은 이씨조선이 망하고 1897년 10월부터 고종의 대한제국이 도읍으로 사용했는데 1910년8월29일 한일합방이 되었으나 계속해서 일본속령인 대한제국의 도읍이었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1900년 이전부터 역사조작을 위한 준비 즉 유물유적을 불태우고, 파괴하고, 개조하고, 신설하고, 중국의 유물을 이동 설치하는 등의 준비를 하는 과정에 있었으므로 일한합방을 하자마자 계획적이고 적극적으로 이민정책을 시행했는데 1911년부터 10년간 중국의 대한제국사람들을 대략 400만명(추정)을 한반도로 이주시켰다. 그러는 가운데 황실과 고중을 한반도로 이동하려 했지만 고종은 죽어도 내나라 내 땅에서 죽겠다고 하며 갈 수 없다고 고집을 피우니 일제로서는 大業을 망치게 되므로 은밀히 독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이 여러 가지 여건과 함께 3.1운동의 촉발제가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제가 한반도 인구조사를 했는데 1910년에 1300만 명이었다. 그러므로 일본군대가 진주하기 전에 이 땅에는 나라도 있었고, 왕도 있었을 것인데 역사와 문화를 완전히 말살하여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일제가 대일본의 대륙사로 창조한 것을 지금까지 우리역사라고 하여왔다.



                                         


★중국의 역사는 상고사부터 현대사까지 서쪽 西夷族의 역사를 동쪽으로 이동하여 東夷族의 역사를 말살했다. 송나라도 역사의 진실을 추적해보면 청해성의 송나라를 동쪽으로 이동하여 고려광역을 축소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송나라의 위치는 가짜이고 송나라 영토까지 사방 4천여리의 통일신라 땅이었고 이것을 고려가 계승한 고려영토로 추정된다. 이 광대한 고려영토를 이씨조선이 계승했다. 그러므로 명나라는 청해성-사천성의 나라다. 평양, 공부, 부여, 경주, 김해(가락국)가 일제가 역사조작을 위해 중국에서 옮겨놓은 가짜이듯이, 만주 광개토 왕릉과 비석이 일제가 중국에서 이동 조작한 가짜이듯이 한반도의 왕릉들은 일제 때 조성된 가짜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말살된 동이족의 역사 일부를 일제가 한반도로 이동조작한 것이 현재의 한국사다.
그래서 한국은 역사문화는 중국의 것이고, 정신문화는 일본의 것(식민사상)이다. 우리 것, 내 것은 없다. 그래서 한국은 올바른 민족정신이 없다. 이로 인하여 한국은 일본국민처럼 단결성이 없고, 오직 이익과 권력만을 위해서 사분오열로 패거리를 지어 싸우는 나라가 된 것이다. 이것이 현재 한국사회에 대한 평가다. 무리모두 패권시대에 패권자들의 음모와 입맛대로 만든 역사문화, 정신문화를 정리해야 진정한 우리자신의 민족정신을 구현할 수 있다.
                                                             2019. 3. 11  
                                                          한국상고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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