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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주문제 고려역사(3) 제주(濟州)와 제수(濟水)  
hanbark33  l  2019-03-24 조회 : 52    

제34주문제 고려역사(3). 제주(濟州)와 제수(濟水)

★제(濟), 제주(濟州), 제수(濟水) 이야기
중국 감숙성 동부에 고조선의 에맥국(濊貊國)이 있었는데 일명 우수국(牛首國)이라고 하며 일본의 조상 소시모리의 고향이다. 감숙성 동부와 섬서성 북부로서 이 땅의 가운데에는 속말수(송화강)가 있고 동쪽에는 낙수(洛水)가 있어서 먼 상고시대부터 물이 풍부하고, 농사가 잘되어 중국 최고의 농업생산지였다. 그래서 “속말(粟末)”이라고 하는데 “곡식”을 나타내는 이름으로 부른 것이다. 풍요의 고장이기 때문에 문화가 발달하고 정치가 잘 되어 상고시대에는 단군세기에서 옥야(沃野)라고 했으며, 후세에는 풍주(豊州), 제주(濟州), 만주(滿州)라고 하였다. 그래서 예맥국을 일명 “제(濟)의 땅” 혹은 “제주(濟州)”라고도 했는데 이러한 역사적 근거들을 몽 땅 말살했다. 그러래서 직접기록은 없지만 진실추적으로 알 수 있다.

“제(濟)”란 풍요의 고장이어서 정치, 경제, 문화가 발달하여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는 땅, 잘 다스려지는 땅, 다스리기 좋은 땅”이란 뜻이다. “수신제가(修身濟家)” 즉 “몸을 닦은 후라야 가정을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다”는 뜻의 “제(濟)”이다. 그래서 일명 “제주(濟州)라고도 한다. ”제(濟) 땅(예맥국)“에는 용만(龍灣)이란 항구가 있었는데 단군이 배만드는 곳으로 지정한 송화강가로 추정되고 있다. 송화강 언덕의 넓은 구릉지대를 강릉(江陵)이라고도 했는데 바로 秦나라, 漢나라 시대부터 말 사육으로 이름난 고장이다. 원(元)나라가 고려를 점령하여 신하국으로 삼고 제주에 말 목장을 했다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섬서성 북쪽 장성이 元과 고려의 경계인데 경계에서 대략 700여리쯤 남쪽이다.

제주와 제수에 대한 직접기록은 없지만 중국지리지를 연구해보면,
1). 제주(濟州):
『①춘추시대 盧戎의 나라였는데 齊의 盧邑이다. 로융은 이국(夷國)이다.
 ②한나라 초에 로현(盧縣)인데 당나라가 로현에 제주(濟州)를 설치했다.
 ③제북군(濟北郡)은 “한나라 때 동모후(東牟侯)가 흥기하여 濟北王이 된 땅이다.
 ④금나라 길림부 농안현(農安縣)인데 천권(天卷) 3년에 제주(濟州)를 설치했다.
 ⑤제주는 요나라 황룡부 (黃龍府) 땅이다.』
위에서
①춘추시대 로읍(盧邑)이나 로현(盧縣)은 주나라 땅인 청해성 동변에 있었던 齊나라 땅을 말한다. “로(盧)“는 원래 묘족을 말한다. 로융이란 동이의 단국을 멸망시키고 건설한 고조선은 흉노족 즉 융족의 나라다. 그런데 제나라는 원래묘족의 나라인데 제나라와 고조선은 西黃河 상류가 경계이므로 고조선 백성들 즉 융족이 강을 건너가서 묘족과 함께 산 것이다. 그래서 ”盧, 盧戎, 盧夷“라고 한 것이다. 청해성의 제나라 동쪽에 붙어있는 나라가 후세의 묘족, 동이족, 흉노족의 혼합국인 계림(鷄林: 斯盧: 신라)이다.
②秦, 漢나라는 주나라를 이은 청해성의 나라이므로 로현은 역시 청해성 동변이다. 원래 춘추시대, 진, 한나라 때 의 제주(濟州)는 글자가 (齊州: 제나라 땅)이어야 하는데 제주(濟州)라고 한 것은 주나라 역사무대를 동부로 옮기고 노(魯), 제(齊)나라가 산동성에 있다고 이동 조작했는데 다시 서쪽 감숙성의 역사무대도 하북성 , 산동성으로 이동조작하면서 감숙성의 동모(東牟)와 제주(濟州)도 산동성으로 이동 조작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혼란이다.
周, 秦, 漢은 요서의 나라 즉 서이족의 역사이므로 고려역사와는 상관이 없으니 제주, 제수에 대한 관련사항에서 제외한다.
③원래의 동모는 감숙성의 제주(濟州) 땅에 있는 동개마산으로서 발해 대조영이 나라를 세운 곳이다. 감숙성의 동모산과 제주를 산동성으로 이동 조작한 가짜기록이다. 그러므로 한나라 제북군기록도 해당사항이 아니다.
④금나라 농안현은 최초위치가 고조선의 상춘이고, 청나라의 최초 장춘이다. 감숙성 송화강 동쪽의 동모산지역이고 제주 땅이다. 이것을 자기네 땅인 압록강 서쪽으로 옮겼다. 이것이 두 번째 농안현이다.
송화강은 동쪽이고 고구려, 발해, 고려, 이씨조선 땅이고, 서쪽에 있는 압록강 서쪽 땅은  요, 금, 명, 청나라 땅이다. 그러므로 압록강이 경계이다. 송화강 동쪽의 농안현, 제주, 용만을 압록강 서쪽 즉 요, 금, 명, 청나라 땅으로 이동했다.
수, 당, 요, 금, 명, 청이 동쪽이나 남쪽의 지명을 자기네 땅으로 가져간 것은 자기들이 역사의 주체라는 주도권을 가지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⑤요나라 황룡부 (黃龍府)는 감숙성 요동의 북부 땅으로 압록강 서쪽이고 황룡부 안에 요나라 도성이 있다. 그러므로 원래의 濟水는 송화강인데 청나라 때 압록강으로 바뀐 것이다.
※이렇게 “제(濟)”에 관련된 지명기록을 100개 이상 찾아 검토해보면 제, 제주, 제수가 감숙성 동부 예맥국 땅으로 귀착된다.

★지리서에 나오는 지명위치는 99%가 가짜다, 그러므로 지리서를 보고 결정한 위치는 전부 틀리는 것이다. 중국에서 만주와 한반도로 이동 조작한 역사 즉 고조선, 부여, 고구려,신라, 백제, 발해, 고려, 이씨조선의 도읍에 관한 직접기록은 말살하여 없다. 그러므로 진실추적법으로 해야 하는데 예를 들어 고구려 국내성(집안)지역에서 사용된 행정지명이 100가지 이상이나 된다. 이런 것들은 여러 사기의 여기저기에서 하나씩 나오므로 어떤 것이 어디인줄을 모른다. 그래서 고구려 국내성(집안)의 진짜 위치를 아는 학자가 없는 것이다.
국내성 하나의 위치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100가지 지명기록과 이에 관련된 지명기록들을 다 찾으면 1000개 내지 2000개까지도 지명기록을 찾아 검토해야만 되는데 대략 500개 이내에서 결정된다. 이것을 지도와 설명을 첨부하여 책으로 쓰면 300페이지짜리 한권의 분량도 될 수 있다. 그러니까 시대별, 나라별로 국내성위치에 대한 근거자료를 최소한 100여개나 제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식으로 진실을 규명한 학자는 한국에서도, 세계에서도 없다.
그런데 필자가 지명연구를 한다니까 재야학자 중에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방법으로 하는 것으로 알고 어떤 사람의 후배라고 비하시키면서 모략하고 조직적으로 공격했다. 그러나 필자의 공부방법은 어떤 이론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재야 학자들보다 최소한 멏배의 노력으로 결과를 낸 것이다. 그래도 지명위치가 당초위치와 100% 일치하는 것은 거의 없다. 역사조작으로 수 십리나 수 백리는 보통이고 수 천리까지 이동 조작한 것이 현재의 한, 중의 史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필자가 찾은 위치는 당시의 진짜 지점위치가 아니라 진실에 가장 근접한 위치를 말하는 것이다.



(그림)그림에서 감숙성동부와 섬서성의 예맥국 땅이 상고시대는 옥야(沃野), 당나라 때는 풍주(豊州), 금∼원나라 때는 제주(濟州), 청나라 때는 만주(滿州)로 불리던 땅이다.



2. 제수(濟水):
중국 감숙성의 “제(濟) 땅(예맥국)“에 있는 속말수 즉 송화강을 일명 제수(濟水)리고 했는데 청나라가 서쪽 압록강 서변으로 제주, 용만, 농안현을 이동했으므로 제수가 처음은 송화강이고 다음은 압록강이다. 감숙성 압록강(제수) 서쪽지역인 노룡- 제주- 환도산의 사각형 땅은 복희씨의 일족이 사는 근거지다. 환단고기 신시본기에 ”복희씨는 후에 갈라져 패(佩), 관(觀), 임(任), 기(己), 포(庖), 이(理), 사(姒), 팽(彭)의 8성이 되었다. 지금 산서성 제수(濟水)에 희족(羲族)의 옛 거처가 있다. 임(任), 숙(宿), 수(須), 구(句), 수유(須臾)의 나라는 모두 여기에 모여 있다“고 했다.
역사조작은 ”제수”를 감숙성에서 산동성으로 옮겨놓았는데 여기서는 엉뚱하게 산서성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이 기록은 중화민국 즉 일제 때 역사조작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환단고기는 대부분 이동 조작된 역사를 수용하여 썼고 현대지명까지 나오므로 일제 때 조작된 책이라는 것이 증명된다.
환단고기신시본기에,
“복희의 능은 지금 산동성어대현 부산의 남쪽에 있다”
“한서지리지에 의하면 치우천왕의 능은 산동성의 동평군 수장현관향성 가운데에 있다고 한다” 등이 모두 이동 조작된 역사를 그대로 수용하여 쓴 것이다.
환단고기의 역사무대를 원래위치로 돌려놓으면 좋은 역사자료가 될 수 있지만 일제가 조작한 현재의 허무맹랑한 환단고기가 우리에게 주는 폐단은 막대하다.
복희와 치우의 능은 감숙성 요동 땅을 떠날 수 없다.

3). 강릉(江陵):
그런데 강릉은 청나라(이씨조선) 때 호북성 형주(荊州)로 이동하여 치소로 사용되었다. 후에 산동성으로 이동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기록은 없다. 상동성은 이씨조선의 강원도이고 황하가 산동성 북쪽으로 흐르다가 남쪽으로 흐르다가 하는 변화가 심하여 산동성은 마치 섬과 같은 땅이어서 일명 제주도(濟州道)라는 별칭이 있다.(추정) 산동성에 지금도 재남(濟南)이란 지명이 남아있다.
강원도인 산동성으로 강릉을 옮겨놓았기 때문에 한반도 강원도에 강릉을 이동 조작시켜 놓은 것이다.
                                                                  2019. 3. 25.   
                                                                              한국상고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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