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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주문제 고려의 위치와 광역(4)  
hanbark33  l  2019-03-31 조회 : 223    

제35주문제 고려의 위치와 광역(4)

현재 한국에 있는 삼국사기와 이조실록은 중국사기인데 조선사 편수회에서 한국사로 조작하고, 환단고기와 고려사기는 중국사기인데 일본으로 가져가서 한반도역사로 개조한 다음에 일본동경에서 발행한 책이므로 여러 말 할 필요조차도 없는데 한국인들은 우리역사라고 한다. 그래서 진실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고려, 이씨조선은 중국의 동이족역사인데 일제가 한반도로 이동 조작한 것이다. 그래서 중국 땅에서 도읍이나 위치는 철저히 말살하여 직접기록은 없다. 그러나 여러 가지 단편적인 조각기록들을 모아보면 그 위치를 알 수 있다. 고려의 위치와 강역에 대한 것을 5∼6회로 나누어 연재할 것인데 독자들도 고려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1. 원(元) :
『朝代名. 本蒙古國. 姓卻特氏(舊作奇渥溫氏). 宋寧宗時鐵木眞稱帝於斡難河上. 號成吉思汗. 世祖開國號元. 滅宋有中國. 都燕京. 今京兆大興縣治. 其時疆域. 東抵日本海. 南連安南. 北至西伯利亞. 西盡亞洲. 西北跨歐洲. 境域之廣. 爲歷朝最. 分爲中書省一. 行中書省十有一. 入中國後凡十主九十一年. 爲明所滅.』(중국고금지명대사전 P.121)
          (각卻: 물리칠, 却本字. 악渥: 윤택할. 저抵: 부딪다, 막다, 거스르다.)
(해설)
①“중국(中國)”:
이 원문에서 요점은 “몽고가 중국 땅에 있는 송나라를 멸했다. 도읍은 연경인데 지금 경조대흥현 치소다. 강역은 동쪽은 일본해에 닿아있다“(滅宋有中國. 都燕京. 今京兆大興縣治. 其時疆域. 東抵日本海.)“이다.
중국이라는 용어는 세종 때 훈민정음해례본에 처음 등장하는데 조선은 8도이고 황제가 있는 경기도를 “중심국(中心國)“으로 삼고 나머지 7개도를 지방정권처럼 인식한 데서 나온 용어이다. 그 이전에는 중원(中原) 또는 중화(中華)라고 했으며 중국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중국대륙 전체를 중국이라고 부른 것은 1911년 이후 중화민국(中華民國)을 줄여서 중국이라고 처음 쓴 말이다. 여기에 옛날부터 써오던 “중화(中華)”가 들어있어서 이전에 “중화”란 말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중국사기에도 자주 등장하고, 한국의  환단고기, 규원사화, 삼국사기, 가락국기, 고려사 등 모든 역사책에 “중국”이 나오므로 1911년 이후 즉 일제 때에 중국과 한국의 역사를 천지개벽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중국”이란 동이족의 역사인데 고조선, 부여, 고구려, 신라, 백제, 발해, 고려, 이씨조선을 만주와 한반도로 이동시키고 중국천하를 서이족의 역사인 요, 순, 하, 은, 주, 진, 한, 수, 당, 송, 명나라로 덮어놓은 현재의 중국대륙을 말하는 것이다.


②“연경(燕京)과 경조(京兆)”:
前燕이 고구려 땅 700리를 빼앗고 고구려를 신하국으로 만들었을 때 연나라 도읍이 감숙성 창려다. 이것이 원나라 때까지 연경으로 부르다가 명나라가 북경으로 고쳐서 도읍으로 삼았는데 경조윤, 또는 대흥현이라고도 했다. 청나라도 도읍으로 삼았다. 이것을 하북성 북경으로 이동 조작했는데 실제로는 하북성의 북경은 1911년 이후 손문정부에서 만든 중화민국의 북경이다.


③“원나라 동쪽은 일본해에 닿아있다(東抵日本海)”
고려는 원나라 식민지로서 원나라 관경 안에 있다. 그런데 중국대륙에 있었던 이씨조선을 점령한 일제시대의 일본해는 현재 발해만을 말한다.
일본해를 한반도의 동해로 보면 고려는 한반도의 나라가 된다. 그래서 학자들 중에는 중국의 고려광역을 한반도까지 연장시키는 사람도 있고 아예 한반도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고려는 통일신라 땅을 승계했고, 고려 땅을 이씨조선이 계승했으므로 이 문장의 “일본해”는 현재의 발해다.
만약 이씨조선을 한반도로 보고 한반도의 동해를 “일본해”라고 하면  가짜인 식민역사를 그대로 계속해야 되고, 일본의 독도영유권주장이나 임나일본부설을 인정해주는 꼴이 된다. 또 원나라가 한국의 제주도에서 말 목장을 했다는 것도 인정해주는 엉터리가 된다. 결국 일제의 대륙사를 우리역사라고 하는 골수친일파 식민사학이 되어버린다.
참고로 중국의 상고시대부터 원나라까지 각 국가별 광역도에는 요동반도 남쪽 모서리가 조금 포함되고, 그 이상 넘어온 지도가 하나도 없다. 동북 3성이 1927년에 설치되었기 때문에 그 이전의 중국사가 동북3성에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 조선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제4권 開城府 上. 山川편
“明太祖洪武三年(1370년 고려공민왕 19년)에 공민왕이 臣稱으로 표를 올리니 명나라 사신이 와서 왕으로 봉한다는 칙서를 전달하고, 고려의 大華岳神및 諸山의 神, 大南海神 및 諸水의 신에게 제사지내고 비석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33주문제에서 고려의 오악, 오진, 4독이 중국 땅의 나라임을 증명했다. 이것이 1392년에 건국한 이씨조선지리지에 고려의 서악화산지신(西嶽華山之神)인 화악(華岳: 華山)이 나오므로 고려와 이씨조선이 중국 땅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중국지리지의 왕건에 대한 기록
서천(西川):
“서천이란 사천성 서부를 말하는 것이며, 당나라 숙종이 성도를 남경으로 삼았다,(四川西部之稱. 唐肅宗改成都爲南京)“(중국고금지명대사전 P.345)(唐肅宗: 10대. 757-762)


서천진(西川鎭):
“당나라 지덕 초에 검남 서천절도를 나누어 설치했는데 치소는 성도다. 지금 성도현 치소다. 익, 팽, 촉, 한, 미, 가, 공, 간, 자, 무, 려, 아 서쪽의 모든 주를 지휘했다. 지금 사천성 서부의 땅이다. 후에 나누고 합친 것들은 일치하지 않는다. 대순 초에 왕건이 그 땅에 있었다.(唐至德初分置劍南西川節度治成都. 今成都縣治. 領益彭蜀漢眉嘉邛簡資茂黎雅以西諸州. 今四川西部之地. 後分合不一. 大順初王建有其地.)”(중국고금지명대사전 P.346)




(그림) 그림에서 금마백제 밑에 점이 사천성 成都로서 백제 때 금마이고, 당나라 서천진(西川鎭) 땅인데 성도가 당나라 남경이고, 고려의 남경이다. 그런데 왕건이 14세때 이 땅에 있었다.


(본문해설)
기록에 의하면 왕건은 877년 탄생하여 943년에 사망했다. 당나라(618-907년) 말기다.
대순 초(당 소종)는 890년∼891년이므로 왕건 탄생 877년∼891년까지 14세가 맞다.
그러므로 왕건이 14세(891년) 때 사천성에 있었다는 증거이다. 그래서 왕건은 당나라사람이고, 당나라 남경인 사천성 성도지역에서 발흥했다. 그러므로 왕건은 중국 당나라 황자이므로 고려는 당나라를 계승한 중국의 국가이다.
당나라는 907년에 망하고 고려는918년(왕건 41세)에 건국되었다. 그러므로 왕건이 당나라 황제의 별자(別子)라는 이야기는 기록상의 연대는 맞지 않으나 원나라가 시조왕건은 원나라와 동족인 동이족이 아니고 서이족인 당나라 황족이라고 추궁하며 고려압박을 강화하니 기록년대를 조작하여 그렇지 않다고 했을 것이므로 맞는 이야기로 본다.
감숙성의 고려는 청해성의 당나라와 인접국이고, 당나라는 말기로서 정국이 불안한 시대였다. 당의 의종(懿宗: 860-873), 희종(僖宗: 874-888)  중에서 한사람이 당시 당나라 남경 땅인 사천성 성도지역에 피난이나 유람왔다 가면서 씨를 뿌렸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다.
사천성 성도지역은 온조백제를 멸망시킨 후 통일신라 땅이 되었는데 당나라가 침략하여 빼앗은 당나라 땅이다. 당나라 남경 땅으로서 성도동쪽에서 남북을 가르는 록두산맥과 창문산맥이 있는데 두 산맥 중의 하나가 당나라와 통일신라의 경계로 추정된다. 만약 왕건의 조상이 백제사람이라 할지라도 왕건 자신은 당나라 땅에서 태어나고 일어난 당나라 족속이다.
지금 사천성 성도지역의 왕건 묘와 비석을 감추기 위해  전촉(前蜀: 901-925:)이라는 나라를 만들어 전촉의 왕이 왕건이라고 꾸몄을 것으로 본다. 중국사기가 90%이상 조작된 가짜이니 이런 기록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참고로 보면 전촉(前蜀)의 관경인 “감숙성 위천도 - 섬서성 서남 - 사천성전체”는 고려왕건의 활동무대와 비숫하다. 따라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궁예와 왕건이아기는 다시 검토해야 한다.다.
중국의 고려에서는 평양북쪽에 개성이 있다. 그런데 한반도는 반대로 평양남쪽 멀리 개성이 있다. 너무나 엉터리다. 그러므로 “평양이 고려 西京”이란 것도 조작된 것이다.

★왕건은 당시 당나라 남경인 사천성 성도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당나라 황제의 혼외자식으로 추정되며 당나라 땅인 사천성 성도를 중심으로 일어난 당나라 사람이다. 고려의 명장 강감찬의 고향은 감숙성 계림의 서쪽 서황하변 임하(臨夏)서북 60리에 있는 최초의 은천(銀川)이다.  그런데 후세의 은천은 녕하회족자치구 북부인 현재의 은쳔으로 약 2천리나 이동시켜 놓았다.
                                                       2019. 4. 1.
                                                      한국상고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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