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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주문제 고려의 위치와 공역(5)  
hanbark33  l  2019-04-08 조회 : 27    

36주문제 고려의 위치와 광역(5)

 

현재 한국에 있는 삼국사기와 이조실록은 중국사기인데 조선사 편수회에서 한국사로 조작하고, 환단고기와 고려사기는 중국사기인데 일본으로 가져가서 한반도역사로 개조한 다음에 일본동경에서 발행한 책이므로 여러 말 할 필요조차도 없는데 한국인들은 우리역사라고 한다. 그래서 진실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한국사는 요동요서와 한4의 위치만 정확하게 찾으면 더 이상 왈가왈부 할 필요조차도 없이 명확한데 한국의 역사학자 누구도 정확한 것을 아는 사람이 없다, 이것이 현실이다.

 

4. 현토 땅(1)

고려는 원래 고구려다. (고구려는)우공이 나눈 9주중의 기주에 속한 땅이다. 주나라 때는 기자국이고, 한나라 현토군 땅이다. 요동에 있으며 다 부여의 별종이다. 평양성이 국도이다. 한나라, 위나라 이래 항상 관직과 공물로 통상했는데 자주 변두리를 침구했다. --- 장흥 중에 권지국사 왕건(王建)이 고구려를 계승했는데 사신을 보내 조공했다. 이에 왕건을 현토주도독충대의군사로 세우고 고려국왕으로 봉했다. --- 아들 가 권지국사가 되었다. 주나라 광순원년 사신을 보내 조공했다. 이에 소를 특진시켜 검교태보사지절현토주도독대의군사고려국왕으로 했다. 현덕2년 또 사신이 조공하니 개부의동삼사검교태위를 더해주고 또 더하여 태사로 했다.(高麗 本曰高句麗. 禹別九州屬冀州之地. 周爲箕子之國. 漢之玄菟郡也. 在遼東蓋扶餘之別種也. 以平壤城爲國邑. ,魏以來常通職貢亦屢爲邊寇. --- 長興中權知國事王建. 承高氏之位. 遣使朝貢. 以建爲玄菟州都督充大義軍使 封高麗國王. --- 子昭權知國事. 周廣順元年. 遣使朝貢. 以昭爲特進 檢校太保使持節玄菟州都督大義軍使高麗國王. 顯德二年又遣使來貢. 加開府儀同三司檢校太尉. 又加太師.---”)

(송사권487. 열전346외국3. 중국고금지명대사전 참고)

(해설)

고려는 원래 고구려다.

고려는 고구려 땅을 계승했으므로 고구려 땅이 고려 땅이다. 그래서 장흥 중(5대후당 명종: 930-933).권지국사 왕건(王建)이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한 것이다.

 

기주(冀州),에 속한 땅이다. 주나라 때는 기자국(箕子國)이고, 한나라 현토군 땅이다. 요동에 있으며 다 부여의 별종이다. 평양성이 국도이다.“

기자족의 본거지는 현토군 땅이고 후에 기자국은 낙랑군 땅이다. 평양은 기자조선, 위만조선, 고구려의 고읍이지 고려의 도읍 개성의 남쪽에 있으므로 고려의 서경이 아니다.

고려가 거란의 침략을 피해 동쪽 경주(최초의개봉)으로 천도했을 때의 서경이다.

 

기주(冀州)와 평양” :

기주는 원래 감숙성이다. 그런데 기록상으로는 순임금 때부터 하남성북쪽의 남황하 이북의 산서성과 하북성이라고 조작 되어있다.

치소가 산서성남부 진양- 하남성 동북 안양- 하북성 남부 한단 등으로 이동돠었다.

기주는 요동의 위만조선 땅이므로 감숙성인데 고조선부터 전부 동쪽으로 이동 조작하여 기자조선도 산서성, 하북성인 것처럼 조작되었기 때문애 위만조선의 도읍을 북경일대의 창려로 보게 된 것이다.

고구려는 요수의 동쪽에 있었으며 기자의 땅, 위만조선의 땅, 한나라 현토군과 낙랑군 땅인데 고려의 도읍은 개성이고 개성남쪽에 있는 평양은 고구려 도읍이다.

고려의 서경이 평양이라는 것은 고려가 거란의 공격을 피해 동경인 감숙성 경양(요나라 때의 최초의 개봉)으로 피난한 후에 평양이 서남쪽이기 때문에 일컬어진 것이다. 이 개봉이 지금은 하남성 동북으로 이동 조작되어 있다.

순임금 때 우사공이 나눈 9주는 요수 서쪽의 청해성, 신강성인데 요동의 감숙성 고구려 땅으로 이동 조작했다가 다시 요, , 우의 도읍은 산서성 남부로 이동 조작한 것이다. 후에 또다시 고구려를 하북성지역으로 이동하고, 백제를 산동성지역으로 이동 조작했는데 이것을 일제가 한반도역사로 둔갑시킨 것이다.

기자국(箕子國), 위만조선, 한나라 현토군, 요동 땅, 평양은 감숙성 서황하 동부 땅을 떠날 수 없다.

송나라에서 고구려를 계승한 왕건에게 현토주도독을 봉작으로 주었으므로 고려의 건국지는 감숙성 고구려 요동 땅의 현토지역을 을 떠날 수 없다.

한국사는 요동요서와 한4군의 위치만 정확하게 찾으면 이런 잡다한 역사를 연구할 필요조차 없이 명명백백해 진다. 그러므로 현재 한국인들은 요동요서와 한4군의 위치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런데 요동요서와 한4군은 현존하는 조작된 역책으로는 진짜위치를 규명 할 수 없으므로 진짜위치를 추적해야만 하는데 한국에서는 이렇게 어려운 공부를 한 사람이 없어서 현재까지 정확한 위치를 아는 역사학자가 없다. 필자의 저서 요동요서와 한4을 참조하기 바란다. 요동요서를 알지 못한 채 역사를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 거짓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한국사와 중국사는 역사적 가치가 전혀 없는 소설도 못되는 공상만화다. 이런 것을 높이 받드는 것이 한국인들이니 한국인들의 의식구조가 철저한 식민사대주의라는 뜻이다.

기록상 고려의 건국은 918년으로서 중국의 510국 시대이다. 왕건의 건국지는 감숙성 고구려 요동 땅 - 당나라 땅 - 발해 땅(남경남해부) - 토번 땅 - 발해 땅(서경압록부)- 요나라 땅(907-1125)으로 바뀌었고 고려 땅으로 이어졌다. 이 중에서 하나의 나라 위치만 명확하게 찾으면 역사전체를 알 수 있다.

 

권지국사 왕건을 현토주도독충대의군사로 세우고 고려국왕으로 봉했다.“

고려시조 왕건(918-943)의 최초 직함은 권지국사이다. 고구려와 고려가 다 한나라 때의 현토군 땅에 있었음을 증명한다. “권지국사현토주도독의 봉작은 시조 왕건(918)부터 6대성종(981-997) 때까지 계속되었다.

5. 현토 땅(2)

개보5, 소가 죽었다. 그 아우 치가 지국사가 되었는데 9년 주가 (송나라에) 사신 조준례를 파견하여 토산물을 바치니 주에게 검교태보현토주도독대의군사태보의 작위를 내리고 고려국왕으로 봉했다. --- 태평흥국 7년 주가 죽었다. 사신 김전을 파견하여 금, --등을 바쳤다. ---치를 검교태보현토주도독충대순군사를 제수하고 고려국왕으로 봉했다.(開寶五年 昭卒, 其弟治知國事. 其子伷權領國事. 九年伷遣使趙遵禮奉土貢. 授伷檢校太保玄菟州都督大義軍使太保封高麗國王--- 太平興國 七年伷卒, 遣使金全奉金銀 --- 檢校太保玄菟州都督充大順軍使封高麗國王)“(: 투구, 맏아들)

(해설) 개보5년 송의 태종(976-984), 현토주도독: 시조왕건, (: 고려4대왕, 949-975)). (: 고려5대왕, 975-981) (: 고려6대왕, 981-997)

고려는 고구려 땅을 계승했는데 위에서 한나라 현토 땅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문장이 3개나 있다. 그런데 한반도와 동북 3성에는 한4군을 설치한 사실이 없으니 고려는 중국의 나라다.

 

6. 요국은 고려의 좌측

요나라는 고려의 죄측에서 웅비했고, (고려는)기자의 습속을 따랐는데 부여의 풍속이다. 주몽의 옛 민속을 아우른 것이다. --- 그해 9월 사신 시찬을 보내 조공했는데 바다를 건너다 태풍을 만나 배가 파괴되고 익사자가 70여인이나 되었다.(遼左推雄. 習箕子之餘風. 撫朱蒙之舊俗.---其年九月遣使時贊等來貢. 涉海. 値大風. 船破. 溺死者七十餘人. ---.)

(宋史卷四百八十七. 高麗)

(해설)

요나라는 고려의 죄측에서 웅비했고기자의 습속을 따랐다

남쪽에서 북쪽을 보고 표현한 문장이다. 대략으로는 맞으나 정밀하게 보면 좌측보다는 서북쪽이라고 해야 맞다.

기자의 습속을 따랐는데 부여의 풍속이다. 주몽의 옛 민속을 아우른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고려는 기자, 부여, 당나라, 고구려 주몽의 풍습을 따랐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고려를 한반도로 옮겼으므로 당나라풍습을 빼고 기록한 것이다.

바다를 건너(섭해: 涉海)”:

중국사기의 바다 해()자는 강과 호수로 해석한다. 고려는 감숙성 요동 땅이고 도읍은 평양북쪽 개성이며, 거란은 초기에 요서 땅(도읍 감숙성 무위: 장당경)에서 감숙성 창려지역으로 천도했다. 그러나 무위나 창려 두 곳 다 고려의 도읍인 개성에서 강을 타고 뱃길로 가는 것이 산 넘고 물 건너 육로로 가는 것보다 편하고 빠르므로 배를 많이 이용했는데 배가 가다가 태풍을 만나 파선된 것이다. 감숙성 고려도읍 개성에서 감숙성 북쪽 요나라 도읍 창려까지는 엣 날거리로 대략 600여리다.

                                                                                                                                         2019. 4. 8.

                                                                                                한국상고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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