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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주문제 고려위치와 광역(6)  
hanbark33  l  2019-04-14 조회 : 18    

제37주문제 고려의 위치와 광역(6)

현재 한국에 있는 삼국사기와 이조실록은 중국사기인데 조선사 편수회에서 한국사로 조작하고, 환단고기와 고려사기는 중국사기인데 일본으로 가져가서 한반도역사로 개조한 다음에 일본동경에서 발행한 책이므로 여러 말 할 필요조차도 없는데 한국인들은 우리역사라고 한다. 그래서 진실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逆天者亡 順天者興)

7. 고려의 남경 :
“고려가 백제를 금주금마군(金州金馬郡)으로 삼아 남경(南京)이라고 불렀다.”
                                      (宋史卷四百八十七. 高麗, 通考)
※“백제를 금주금마군(金州金馬郡)으로“
이전의 통일신라의 백제 땅을 당나라가 점령하여 “금주백제군(추정)”을 설치했는데 고려가 금주금마군(金州金馬郡)으로 고쳤다는 뜻이다. 그런데 역사조작으로 모두 말살하여 금주나 금마의 위치에 대한 직접기록은 없다. 따라서 진실추적법 즉 조각기록들을 모아 모자이크를 해보면 알 수 있다.
금주는 여러 곳에 있는데 당나라 땅인 사천성 성도(成都)와 관련된 것은 명, 청나라의 흥안(興安)이 동진(東晋)과 수(隋)나라 때는 사천성 광원현(廣元縣)이고, 남송 때는 사천성 성도부(成都府) 치소였다.
사천성 성도를 중심으로 금(金)자가 들어간 지명이 무려 20여개나 나온다.
결정적인 것이 세 가지인데, 
첫째는 금마하(金馬河)가 성도서쪽에 있는데 지금은 대금강(大金江)이다.
둘째는 당나라가 설치한 금당현(金堂縣)이 5대진(晉) 때는 한성(漢城)이고, 명-청나라 때는 성도부(成都府)이다.
셋째는 당나라 남경이 곧 고려의 남경인 성도다.
역사조작으로 백제를 한반도로 이동조작한 후에 원래지명을 말살했지만 사천성 성도를 “금마”로 부르다가 통일신라 멸망(935년) 직후인 5대 진(晉: 936∼946년)나라로 둔갑시켰는데 금마백제 때부터 사용한 한성(漢城)이 나오고, 그 위치가 명나라, 청나라(이씨조선) 때 사천성 성도라고 기록되어있다. 
그런데 사기의 기록은 907년 당나라멸망 -5대 북량(後粱)- 5대후당- 5대 후진(936∼946년)으로 이어진 것으로 조작되어 있다. 왕건은 877년에 태어나 891년 14세까지 당나라 땅인 사천성 성도에서 살았고 918년에 고려를 건국했다. 그러므로 당나라말기인 877년부터 후진멸망인 946년까지 사천성 일대는 왕건의 활동무대와 같은 장소다. 따라서 고려를 한반도로 넘겨치기하고 왕건의 무대를 말살하기 위해 5대(五代)의 나라들을 창조하여 조작했다는 결론이 된다.
사천성 성도는 단군이 비왕 때 다스리던 대읍(大邑) 지역이고, 주나라 때 추읍(鄒邑)인데 온조가 “아미산”과 “추읍”을 결합하여 “미추홀”로 바꾸었으며, 온조의 금마백제 도읍이 한성(漢城)이고, 당나라 南京이며, 왕건고려의 南京이며, 명나라의 南京이다.
한반도 충청도-전라도를 백제라고 한다. 그런데 백제 땅 서쪽일부를 당나라가 점령하여 당나라의 남경을 설치했는데 전라북도 익산금마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조건이 성립되지 않으므로 100% 조작된 가짜다.
전라북도 익산금마 왕궁리 미륵사는 사천성에서 일제가 옮겨다 놓은 것으로 우리와는 전혀 관계도 없는 유물인데 수백억원을 들여서 보수하고, 우리 것이라고 가르치고 배워고 주장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골수 친일파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며, 정신 빠진 허수아비 민족이라고 비난받을 수 있는 사안이다.
고려는 고구려, 신라, 백제 즉 통일신라 땅을 계승했다. 그래서 “원나라의 고려광역도에는 산동성, 산서성, 하북성, 동북 3성은 없다.”
산동성, 산서성, 하북성, 동북 3성은 삼국시대  어느 나라 땅도 아니었으므로 당연히 고려 땅이 될 수가 없다. 이씨조선 때  우리 땅인 산동성과 산서성만 넘어간 것으로 추정되며 하북성은 중화민국 때 넘어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렇게 구리땅을 중국 땅으로 고정ㅎ호ㅓ\k 시키기 위ㅏ해 주은래거 “장성이북비아방”증 북경북쪽 장성 북쪽은 중국 땅이 아니라고 했으므로 산동성, 하북성을 꿀꺽 집어삼킨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들  속도없이 좋아라고 했다.
그러므로 고려를 한반도까지 연장시키는 학자는 조작된 중국사기로 연구했거나 기존의 가짜 식민사학을 옹호하려는 작전으로 추정된다.

8. 安南新羅는 고려에 점령되었다.
안남신라란 서울대 박창범교수가 천문학으로 찾은 중국 남쪽 광서성의 신라다.

“용삭원년(661년) 춘추가 죽으니 법민(문무왕)을 개부의동삼사상주국낙랑군왕신라왕(開府儀同三司上柱國樂浪郡王新羅王)으로 삼고 3년(663년)에 조서를 내려 그 나라를 계림도독부로 삼고 법민을 계림주도독(鷄林州都督)으로 삼았다.”(원문동이전 구당서 신라조)고 했는데 흠정만주원류고의 해석에는,
“요(遼), 송(宋)이후 항상 계림으로서 고려를 일컬었는데 금(金), 원(元) 때도 역시 계림군공으로 고려의 봉호로 삼았다. 대개 신라왕의 자리를 잇는 자가 도독을 세습한 뒤에는 결국 계림이 신라의 통칭이 되었다. 발해에 이르러 나라가 왕성한데 신라는 안남(安南) 경내에 지우쳐 있다가 고려에 병탄되었기 때문에 고려 때도 계림이란 칭호를 사용한 것이다”(흠정만주원류고 권4 부록4 신라조 唐書 찹고)
고 하여 여기서 안남 땅에 있는 안남신라가 나타난다.
(해설)계림은 서라벌 서부와 사로가 합병한 국호이다. 그런데 서라벌은 낙랑 땅이었고, 사로 땅은 최초에 한나라 낙랑군소속이었으므로 신라왕을 낙랑군왕이라고 한 것은 정확하다고 본다. 감숙성의 계림을 하남성-안휘성의 안라국(후에 신라국)으로 이동 조작하여 1000년역사로 둔갑시켰다가 다시 계림을 안라(신라)와 함께 광서성으로 이동 조작하여 안남 땅에 신라(진한)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안남신라가 바로 서울대 박창범교수가 천문학으로 찾아낸 신라이다. 이 4가지역사를 축소하고 하나로 편집하여 한반도 경상도신라로 이동 조작한 것이다.

9. 고려도경(高麗圖經)
“고려가 신라를 병탄한 뒤에는 동북쪽이 조금 넓어지고, 그 서북쪽이 거란과 닿게 되었다. 옛날에는 요나라와 경계를 이루었다가 나중에 침략을 당하자 압록강으로 물러나 지키면서 요충지로 삼았다.”(흠정만주웜류고 권4 부록4 신라조)
※ 고려와 거란의 서북경계는 감숙성 해성북쪽의 강(태자하)이다.
거란(황룡부)은 감숙성 요동의 서북부에 있었으므로 고려의 서북쪽에 있다. 왕건의 고려가 중국에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다. 단지 이 문장에서 압록강을 1911년∼1927년 사이에 설치 된  한반도압록강으로 착각해서는 아니되며 고려와 신라의 역사무대를 한반도로 이동조작 한 기록으로 착각하지 않기를 바란다그림은 제2\32주문제 6성지역참고)
                                                                                                          2019년 4월 15일
                                                                                                         한국상고사언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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