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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주문제 이씨조선의 위치와 광역(6)  
hanbark33  l  2019-07-21 조회 : 58    

제52주문제 이씨조선의 위치와 광역(6)

현재 한국에 있는 삼국사기와 이조실록은 중국사기인데 조선사편수회에서 한국사로 조작하고, 환단고기와 고려사기는 중국사기인데 일본으로 가져가서 한반도역사로 개조한 다음에 일본동경에서 발행한 책이므로 여러 말 할 필요조차도 없는데 한국인들은 우리역사라고 한다. 그래서 진실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일제가 조작한 조선사를 성락훈, 이병도 일행이 번역한 이씨조선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1989년 중판본)에 나타난 충격적인 기록들을 발견한 대로 모은 것이다. 이씨조선이 원래부터 한반도역사라면 이런기록이 있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 
이씨조선이 한반도역사라고 하는데 왜 이런 기록이 있을까? 이런 문제들에 대해 역사학계는 분명하게 답변할 수 있을 까?


21. 임진상초(壬辰狀草):
이순신이 선조 25년(1592년) 4월15일부터 61통의 일지를 썼는데 이충무공 전서권2, 권3, 권4에 수록되었다. 
왜란보고 및 군령을 청한 계달문을 기록한 등록으로서 1598년(선조31년)의 “이순신 저서”로 채택되어 난중일기, 초부서간첩(草附書簡帖)과 함께 국보 76호이다. 
전황, 경비상황, 식량조치, 적군동향 등을 상세히 기록하여 전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서 난중일기와 함께 1935년 조선사편수회에서 “조선사료총간 제6”으로 간행했다.

"들으니 임금이 서쪽으로 피난갔다.(聞西幸之奇)
낙양에 오랑캐가 쳐들어 왔다.(洛中胡差入城)
백성은 어육이 되는데 임금수레는 서쪽으로 옮겼다.(란輿西遷牛靈魚肉)“ 
(1971년 고려대민족문화연구소 출판부. 발행자. 朴晟義 ”한국도서 해제“에 설명     되어 있다.)   ※란여(란輿): 임금수레
(해설)
위 글에서 락(洛)자는 낙양과 낙주 두 곳이 있다. 
왜군이 침입한 경로가 산동성 황하를 통해서 오면 하남성 낙양이 되고, 양자강에서 호북성의 한수를 타고 오면 호북성 무한∼ 단강구∼낙주(洛州)로 올 수 있다. 낙주(洛州) 즉 지금의 상락(商洛)은 당시 조선의 도읍인 한양(咸陽)의 동남쪽 가까이 있으며, 낙양은 이씨조선의 동경이었으므로 두 곳 다 도성까지는 수일거리이니 선조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므로 서쪽으로 피난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호(湖)자는 원래 왜(倭)인데 일제 때 역사조작하면서 글자를 바꾼 것으로 추정된다. 이순신은 수군통제사가 되기 전에 동경인 낙양의 방위장수였기 때문에 중국 하남성 낙양에 대해 쓴 것이다.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중국 땅에 있었다는 증거다.
✪임진란을 
  한국은 “임진왜란”으로 쓰고, 
  중국은 “만력(萬曆)의 역(役)” 또는 “朝鮮의 역(役)”으로 쓰고,
일본은 “문경장(文慶長)의 난(亂)”으로 쓴다. 
                       (※萬曆: 明朝14대 神宗의 연호)
 ※모두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니고 내란으로 표현하고 있다. 당시 월남 하노이(동경)를 도읍으로 삼은 일본은 조선의 속령이었기 때문이다. 중국대륙의 조선 남쪽에 붙어있던 왜가 반란을 일으켜 북침(北侵)을 감행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21-1. 조선으로 출병한 명나라 이여송에 대한 기록

석문산(石門山):
“봉천 요양현 남쪽 40리에 있다. 옛날의 석문채가 있다. 명나라 만력 중에 이여송이 조선을 구원하러 출발한 도이다.(在奉天遼陽縣南四十里. 舊有石門寨. 明萬曆中李如松救朝鮮. 道出於此.)” (중국고금지명대사전 P. 266)
(해설)
봉천요양현은 감숙성에 3개소, 산서성 북쪽에 1개소, 신만주 요동반도에 1개소가 있는데 아시다(한반도) 북쪽의 신만주는 중화민국 때 일제가 조성한 땅이므로 신만주와 아시다(한반도)는 이씨조선의 역사광역이 아니고 중국의 역사를 신만주와 한반도로 이동 조작한 것이다. 
임진왜란 때  감숙성의 명나라 이여송의 명군(明軍)이 섬서성 조선의 한양(漢陽: 함양)으로 출발한 석문산은 봉천요양현 남쪽40리이고, 석문채는 창려동남 100리에 있다고 기록되었으므로 같은 지역이다.
요양은 명나라 요동군 총사령부가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요동요서의 요동이 중국감숙성의 명나라 땅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4대 선조 때의 임진왜란으로 한양(漢陽: 함양)의 궁성이 폐허가 되어 조선은 임진왜란 이후에  천도를 계획하여 22대 정조 때 화성(華城)으로 천도했다. 이씨조선 화성은 중국섬서성 대화산(大華山), 소화산(小華山) 서쪽에 있어서 화성(華城,)이라고 한 것이다. 일제 때는 경성(京城)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이씨조선이 중국대륙에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 중의 하나이다.
명, 청의 북경은 감숙성 창려다. 하북성의 북경과 강소성의 남경은 손문의 중화민국 때 만든 현대지명이다.  
전한의 요동군치소는 양평인데 고구려와 연나라의 요동성이며 후한의 창평이다. 
한국인들은 모두 일제의 조작된 역사에 놀아나고 있는 것은 역사의 진실을 검토한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패권시대의 역사는 패권자들의 입맛대로 조작된 것이므로 믿을 수가 없다.




(그림24)명군출발지는 감숙성 요양동남의 석문산이다.
                       (이상 유우찬저 “한국사의 실체”에서)
                                         
★환단고기부터 이조실록까지 전부 중국의 역사인데 일제가 신만주와 한반도로 이동 조작하여 “대일본제국의 대륙사”로 창조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한국사라고 하는 것은 일본의 臣民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독도만 일본의 영토라고 하지만 미래에는 한반도가 일본의 영토라고 주장할 것이다. 『일제 때부터 지금까지 한국은 “대일본제국사”를 배워온 것은 일본의 臣民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반도가 일본의 영토임을 증명한다.』고 주장하면서 앞으로 지구환경이 악화되면 침략의 구실로 삼을 것이다. 한국인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이다. 독립국가라면 자기나라 역사를 배우지 왜 일본제국의 역사를 배우는가? 일본이 한국을 점령하는 것을 중국과 일본은 이미 밀약했을 수도 있다. 한국은 거짓과 위선으로 세워졌고, 거짓과 위선으로 존재하는 나라다. 그러므로 한국인들이 장래를 염려하고 정신 차리려면 역사학과를 폐지해야 한다. 
                                         2019. 7.  22.
                                         한극상고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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