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댓글 내용을 남겨주세요. 최대 글자수를 초과하였습니다. 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권한이 없습니다.
사라진 준법정신, 국가 존립 걱정된다
  • 작성자 : 최종찬
  • 작성일 : 2024.06.18
  • 조회수 : 525
    가수 김호중 음주 뺑소니 사건은 우리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본인은 물론 소속 회사까지 나서서 사건을 은폐하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한 사실이 드러나 더 큰 충격을 안겨 줬다. 그뿐만 아니라 사건 이후에도 예정된 음악회를 그대로 강행했고, 음악회 일정을 이유로 구속영장 적부심 연기를 요청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됐다. 사건 후에 거행된 음악회는 열성 팬들로 만원이었다고 한다. 예전 같으면 이런 일이 발생하면 자숙하는 의미에서라도 모든 행사를 중단하고 조용히 지내는 게 상례였다.

  이번 일은 한 개인의 일탈로 볼 수도 있겠으나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에 법 경시 풍조가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사건 이후 김호중 팬카페에 올라온 글 중에는 “정치인들은 유죄 판결을 받고도 국회의원이 되어 큰소리치고 있다. 김호중은 단순한 음주 사고이고 다친 사람이 없는데도 무슨 큰 죄가 되는가?”라며 상대적 억울함을 주장하는 내용이 많았다고 한다. 정치인들 이름을 직접 언급하진 않았으나 누구를 지목한 것인지 다 아는 내용이어서 양측의 강성 지지자들 사이에 온라인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최근 들어 법을 우습게 아는 사례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조국 전 법무장관은 고등법원에서 2년 징역형을 선고받고도 정당을 창당한 뒤 1심에서 역시 유죄 판결(징역 3년)을 받은 황운하 의원을 본인과 함께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했다. 더욱 놀라운 일은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인지 국민이 이런 사람들을 당선시켰다는 사실이다. 많은 국민이 이들을 기소한 검찰이나 유죄 판결을 내린 법원 모두 엉터리라고 판단했다는 얘기다.

  송철호 전 울산시장은 선거 개입 혐의가 유죄로 판결 났으나 수사와 재판 지연으로 임기 4년을 모두 채웠다. 윤미향 전 의원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후원금 횡령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재판 지연 등으로 4년 임기를 마쳤다. 범법 행위를 저지르고도 사실상 처벌을 받지 않은 셈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를 유죄로 판결한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 사건 등과 관련해 검사와 법관 탄핵, 법왜곡죄 입법 등 사법기관을 겁박하는 대책들을 무더기로 쏟아 내고 있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은 얼마 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의사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판사에게 “이 여자 제정신인가?”라고 비난했다.

  정치인이든 의사든 이른바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이렇게 공공연히 법률을 우습게 알고 사법기관을 겁주는데 국민이 법을 제대로 지키겠는가? 법률은 공동체 사회에서 구성원들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덕이고 약속이다. 국민이 법을 지키지 않으면 동물의 세계처럼 약육강식이 판치게 될 것이다. 법령이 지켜지지 않으면 예측 가능성도 없고 재산권 보호도 안 된다. 불법 행위가 성행하면 기업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각종 사회적 갈등은 무슨 기준으로 해결할 것인가?

  준법정신이 확고히 정착되려면 첫째, ‘법 앞에 평등’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힘없는 사람에게만 법률이 적용된다면 누가 법을 지키겠는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각종 범죄 혐의, 김건희 여사 명품 백 의혹 등이 공정하게 처리돼야 한다. 둘째, 법률 위반 행위는 신속하고 엄격히 처벌해야 한다. 근년 들어 정치인 등 유력 인사 관련 사건은 유난히 수사나 재판을 질질 끄는 경향이 짙다. 특히 김명수 전 대법원장 시절에 재판 지연이 심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조국 의원 아들에게 허위 인턴증명서를 발급해 유죄 판결을 받은 최강욱 전 의원 같은 단순 사건도 대법원 판결까지 6년이나 걸렸다. 사면도 신중히 단행해야 한다. 세월이 조금 지나면 누구나 사면된다면 누가 열심히 법을 지키겠는가.

  최근 법률 경시 풍조가 확산되는 배경에는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수사 당국과 법원의 책임이 매우 크다. 이번 국회에도 법치주의를 흔들려는 사람들이 다수 진출해 심히 걱정스럽다. 수사와 재판을 조속히 진행하고, 검판사 인사권을 대통령이 전횡하지 못하게 하는 근본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아울러 법률 위반이 없는데도 지역 주민의 ‘떼법’으로 행정기관이 개인이나 기업의 자유로운 행위를 제한하는 탈법도 없어져야 한다. 국가가 법대로 행동한 사람을 보호해야 하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셋째, 법률은 대다수 국민이 납득할 수 있고 현실적으로 지킬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5·18 민주화운동특별법은 명예로운 유공자들의 명단을 왜 공개하지 못하는가? 국민이 이런 법률을 납득할까? 중대재해법도 안전을 강화하려는 취지는 이해되나 현실적으로 많은 기업이 열악한 여건 때문에 법률 준수에 애로를 겪고 있다. 현실을 무시한 이상적 법률은 제대로 지켜지기 어렵다. 재수 없으면 처벌받는 경우만 생기고 공무원 부패의 원인이 될 뿐이다. 현실적으로 준수율이 낮은 법률은 당장 개선해야 한다. 지켜지지 않는 법률이 많을수록 준법정신은 약화되기 마련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도로, 항만 등 물적 인프라는 세계적 수준으로 확충됐으나 신뢰, 준법정신 등 보이지 않는 사회적 자본은 많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우리나라가 또다시 도약하기 위해서는 준법정신 정착이라는 사회적 자본의 대폭 확충이 절실하다.


필자소개

   최종찬 (jcchoijy@hanmail.net)

    사단법인 선진사회만들기연대 이사장
    
(전)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원장
    (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초빙교수
    (전) 건설교통부 장관, 대통령 정책기획 수석비서관
    (전)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장, 조달청 차장, 기획예산처 차관  
 
  저  서

    최종찬의 신국가개조론, 매일경제신문사, 2008. 6
    아래를 덥혀야 따뜻해집니다, 나무한그루, 2011. 12

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