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야드 박람회서 세계 문자 선포식 열자
지난해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전에서 부산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119:29로 참패했습니다. 일본은 이미 1970년과 2005년 각각 오사카와 나고야에서 엑스포를 열었고, 내년에는 오사카·간사이에서 또 개최합니다. 중국도 2010년 상하이 엑스포를 유치했습니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 차례가 충분히 무르익었겠지만, 이번에는 너무 늦게 경쟁에 뛰어든 탓으로 준비가 많이 부족했다는 게 중론입니다. 1993년 대전 엑스포와 2012년 여수 엑스포는 5년마다 개최되는 ‘등록 엑스포’가 아니고 그 사이에 특정 주제로 국한해서 열리는 ‘인정 엑스포’였습니다.
올림픽,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국제 행사로 꼽히는 엑스포는 유일하게 운동 경기와 무관한 ‘문화 올림픽’입니다. 세계 각국 정부와 공공기관, 기업체, 시민단체 등이 신제품과 신기술, 지구 환경을 위한 노력과 경험, 문화재를 비롯한 지적 재산 등을 전시하고 교류합니다. 관람객이 통상 2,000만 명을 넘고 역대 최다인 상하이 엑스포는 7,540만 명에 이를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이고 행사 기간도 6개월이나 되기 때문에 새로운 문물을 세계에 소개하고 과시하는 자리로는 그만입니다. 다시 말해 인류가 만든 최고의 글자인 한글의 세계화 작업을 본격 추진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입니다. 2030년 리야드 엑스포에서 ‘한글 세계화 선포식’을 열 것을 강력히 제안합니다. 성패는 그때까지 남은 6년여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최근 대한민국의 국위는 단군 이래 최고에 달했고, 한류 역시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온 세계가 부러움과 호기심 속에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부존자원도 없이 침략과 전쟁의 폐허를 딛고 단시일에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에 오른 대한민국의 국가 발전 모형을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으며, 저절로 빠져들게 만드는 한류의 근원이 무엇인지 찾아내고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대한민국의 방위산업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수주액 기준)에 올랐고, 각국의 군사력(핵무기 제외)을 측정하는 글로벌 파이어파워(GFP)가 올해 한국을 미국·러시아·중국·인도에 이은 세계 5위로 평가한 사실에도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국위가 치솟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한글 세계화에 나설 절호의 시기입니다.
앞으로 의견을 널리 수렴하고 전문적 토의를 거쳐 세부 실행 계획을 짜야겠지만, 리야드 박람회에 한글관을 별도로 설치해 한글을 소개하고 관람객들이 한글 쓰기와 읽기를 체험하는 장소로 활용하는 방안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우선 우리 문화와 과학기술이 크게 발전한 데에는 한글의 역할이 지대했다는 사실부터 알리고, 한글의 창제 목적이 특정 언어의 표기에 그치지 않고 전 인류가 쓸 수 있는 소리글을 만드는 것이었음을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연재의 11번째 글에서 소개한 ‘말소리연주기’처럼 한글만이 개발할 수 있는 제품들을 소개하고, 현장에서 한글을 배워 직접 써 보는 자리를 만들어 주면 한글 세계화 사업이 자연스럽게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박람회 현장에서 한글학교를 운영하고 ‘온누리 노래자랑’을 개최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합니다. 가령 ‘하루 한글학교’에서 한글의 창제 배경과 자모의 원리를 배운 후 한글20으로 자신의 이름을 써 보는 체험을 하게 합니다. 한글의 표음 기능을 좀 더 활용해 참가자들이 본인의 애창곡 가사를 한글로 적게 하고, 다른 참가자들의 애창곡을 서로 불러 보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확대한 온누리 노래자랑은 한글 세계화를 촉진시킬 효과적인 방안의 하나로 기대됩니다. 온누리 노래자랑은 말 그대로 세계 각국 시민이 모여 애창곡을 원어로 부르는 경연으로, 미국과 한국에서 각각 자기 이름을 내건 토크 쇼로 크게 인기를 끌었던 고(故) 자니 윤(본명 윤종승)의 일화에서 얻은 아이디어입니다.
미국 최고의 심야 대담 프로그램 NBC ‘투나잇 쇼’에 동양인 최초로 초대된 자니 윤은 어머니가 자장가로 불러 주던 ‘오 솔레 미오’를 17개국 언어로 부를 수 있다고 큰소리쳤고, 실제로 쇼 진행자 자니 카슨이 임의로 지명한 나라들의 언어로 노래를 불러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카슨이 “그렇게 많은 나라의 언어를 어떻게 익혔냐?”고 묻자 자니 윤은 “뜻은 모르고 발음만 한글로 적어 외웠다”고 실토했습니다. 외국 노래의 가사는 이해하지 못한 채 발음을 한글로 적어 부른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한글을 배운 사람이라면 어떤 나라의 노래든 한글로 쓰인 가사를 부를 수 있습니다. 여러 나라의 노래가 원어로 불리는 노래자랑은 엑스포의 특별한 흥밋거리로 등장할 것입니다.
각국 또는 온라인에서 진행되는 1차 예선은 자국어로 부르고, 박람회장에서 열리는 2차 예선은 지정곡 중에서 2곡을 무작위로 선택해 원어로 부르게 합니다. 각 지정곡은 원어 가사에 한글20으로 토를 달아 사전에 공개하면 해당 언어를 모르는 참가자도 한글을 배워서 연습할 수 있습니다. 최종 본선은 예술성을 살리기 위해 언어에 상관없이 자신이 제일 잘 부를 수 있는 노래로 경연합니다. 모르는 언어의 가사를 한글로 익히게 하자는 취지입니다만 강요는 아닙니다. 참가자가 원어 가사를 알아도 괜찮고, 로마자표기법으로 적어 연습해도 무방합니다. 다만 원어 발음의 정확도는 평가받아야겠지요. 이렇게 하면 참가자들은 한글 표기가 얼마나 배우기 쉽고 정확한지를 실감할 것입니다. 우승자를 비롯한 입상자에 대한 푸짐한 시상은 당연합니다.
온누리 노래자랑이 리야드에서 성공하면 국제박람회기구(BIE)와 협의해 엑스포의 고정 행사로 추진하는 것도 일책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한글 세계화에 더없이 좋은 마당이 펼쳐지는 셈입니다.
필자소개
신부용 (shinbuyong@kaist.ac.kr)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 운영이사
필자는 서울공대 토목공학과를 나와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서 교통공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유치과학자로 귀국하여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교통연구부를 창설하고 이를 교통개발연구원으로 발전시켜 부원장과 원장직을 역임하면 기틀을 잡았습니다.
퇴임후에는 (주)교통환경연구원을 설립하여 운영하였고 KAIST에서 교통공학을 강의하는 한편 한글공학분야를 개척하여 IT 융합연구소 겸직교수로서 한글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저서로는 우리나라 교통정책, 지방자치단체의 교통정책, 도로위의 과학, 신도시 이렇게 만들자, 대안없는 대안 원자력 발전, 중국인보다 빨리 배우는 신한위 학습법 등 여럿이 있습니다.
COMMENT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등 유해한 댓글은 관리자에 의해 삭제 될 수 있습니다.
( / 2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