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댓글 내용을 남겨주세요. 최대 글자수를 초과하였습니다. 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권한이 없습니다.
미중 패권 경쟁의 숨은 병기, 언어
  • 작성자 : 신부용
  • 작성일 : 2025.12.30
  • 조회수 : 274

미중 패권 경쟁은 오래전부터 진행돼 왔다. 경제와 첨단기술, 군사 장비 분야의 경쟁은 이미 익숙한 이야기다. 그러나 최근 들어 눈에 잘 띄지 않는 방향으로 갈등이 확장되고 있다. 미국의 공자학원 추방과 중국인 유학생에 대한 규제,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수출 금지, 국제무대에서의 데이터 사용을 둘러싼 암투 등이 그것이다. 미국은 이들 문제를 안보 차원에서 다루는 반면 중국은 주권과 내정 불간섭으로 대응하고 있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설명과 주장이 전혀 다르다. 이런 차이는 단순하지 않다. 무엇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한 나라의 행동은 ‘위협’이 되기도 하고 ‘정당한 방어’가 되기도 한다. 오늘날의 패권 경쟁은 무력 충돌 이전에 정보의 해석과 전달을 둘러싼 문화적 싸움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손자병법은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 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어떤 전쟁에서도 위태로워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정보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정보전의 중심에는 언어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 표현의 수단을 넘어 정보의 흐름을 규정하고, 피아를 인식하는 틀을 형성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중 경쟁은 이미 ‘언어전쟁’의 양상을 띠고 있다고 할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전쟁에서 미국은 구조적 제약을 안고 있다. 중국어, 특히 한자라는 문자 체계의 높은 진입 장벽이 정보의 흐름을 비대칭적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한자의 난해성과 비효율성을 근거로 중국이 로마자 중심의 현대 문명사회에서 경쟁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중국은 이 예상을 깨고 AI와 우주과학을 비롯한 첨단기술 분야에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1950년대 초에 도입된 병음(Pinyin) 체계가 있다. 이를 통해 중국은 한자를 유지하되 발음 표기와 정보 입력을 로마자 기반으로 정비해 서방 문명에 빠르게 적응했다. 내부적으로는 한자의 장벽을 유지하면서도 외부의 기술과 정보는 효율적으로 흡수하는 이중 구조를 형성한다. 그 결과, 외부 세계의 정보는 비교적 쉽게 흡수하는 반면 중국 내부의 언어적·문화적 맥락은 상당 부분 보호되는 구조가 구축됐다. 마치 중국이 강의 상류 고지에 진을 친 격이다.​


한자의 특성은 인적 자원의 분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어와 중국어를 함께 구사하는 이중 언어 능력자의 상당수가 중국계이며, 이들은 전 세계 곳곳에 분포해 있다. 이들은 정보의 생산과 해석, 전달 과정에서 중국에 유리한 흐름을 만들어 낼 것이 분명하다. 세계 각지에 설립된 공자학원 역시 언어를 매개로 한 장기적 국가 전략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반면 미국의 언어·문화 기관은 중국어권에서 이에 상응하는 영향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언어를 둘러싼 패권 경쟁은 반복돼 왔다. 중세 지중해 세계에서는 라틴어와 아랍어가 맞섰고, 근대에는 프랑스어와 영어가 외교와 문화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했다. 금세기의 미중 언어전쟁은 국지적 영역 다툼이나 학술적·문화적 주도권 다툼이 아니라 세계 질서의 향방을 가를 핵심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서 가히 ‘세계언어대전’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그리고 이 거대한 전쟁의 한가운데에 우리가 운명적으로 개재돼 있다.​

  

한국은 미국의 우방이면서도 동시에 중국 문화와 언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특수한 성격의 국가다. 다수의 국민이 영어에 익숙하지만, 많은 한자 어휘를 가용하고 있으며, 중국어 배경의 문화도 갖추고 있다. 게다가 한국의 문자 체계인 한글은 음소 문자로서 영어와 구조적 친연성을 지닌다. 이로 인해 한국어와 한글은 영어와 중국어의 사이를 잇는 매개체로 기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이는 단순한 학습상의 편의성을 넘어, 정보의 해석과 전환이라는 전략적 역할로 확장될 수 있는 막강한 자산이다. 한글을 ‘세계문자’로 발전시키자는 필자의 주장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현재 세계 경제와 국제 질서를 재편하고 있는 AI 역시 미국과 중국 주도로 발전하고 있다. 영어에 이미 익숙한 우리가 중국어 역량까지 갖춘다면, 세계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가능성은 획기적으로 넓어질 것이다. 차제에 한글과 한국어는 중국어에 접근하는 가장 효율적인 언어 체계임을 인식하고, 이를 단순한 민족 정체성의 상징으로만 다룰 것이 아니라 AI 시대의 전략 언어로 재정의하고 확실하게 발전시키도록 하자. 세계언어대전의 한복판에서, 이는 기회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운명이 걸린 생존의 문제이며 국가 발전의 원동력을 구축하는 길이다.

 




필자소개

 신부용(shinbuyong@kaist.ac.kr)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 공동대표

  필자는 서울공대 토목공학과를 나와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서 교통공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유치과학자로 귀국하여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교통연구부를 창설하고 이를
  교통개발 연구원으로 발전시켜 부원장과 원장직을 역임하며 기틀을 잡았습니다.


  퇴임후에는 (주)교통환경연구원을 설립하여 운영하였고 KAIST에서 교통공학을 강의하는 한편
  한글공학분야를 개척하여 IT 융합연구소 겸직교수로서 한글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저서로는 우리나라 교통정책, 지방자치단체의 교통정책, 도로위의 과학, 신도시 이렇게 만들자,
  대안없는 대안 원자력 발전,중국인보다 빨리 배우는 신한위 학습법 등 여럿이 있습니다.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