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이 좋다. 지하철이 운행되는 곳은 다 그렇겠지만 수도권은 어디든지 한 시간 반 이내에 시간 맞춰 편하게 갈 수 있다. 승객 중에는 아주 연로하신 분들도 간혹 계시지만, 80세 전후가 최고령인 것 같다. 옆에서 다리를 많이 벌리거나 꼬고 앉아서 신경 쓰일 때도 있지만, 뭐 견딜 만한 수준이다.
가슴 뿌듯한 장면도 있다. 어르신을 보고 벌떡 일어나는 젊은이를 보는 것도 기특하지만, 경로석에서 노인들끼리 자리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콩나물시루 버스나 전차에서 가방 들어 주고 자리 양보하던 세대의 관성일까?
퇴근시간대에 꾸벅꾸벅 졸고 있는 중년을 보면 애처로운 생각이 들고, 한가한 시간대에 마치 자기집 응접실처럼 두 다리 쭉 뻗고 길게 앉아 핸드폰 두드리는 젊은이를 보면 민망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모두 우리들의 자화상이고 든든한 미래다.
문제는 가끔 보는 중국 젊은이들이다. 비어 있는 경로석에 털썩 앉아 시끄럽게 떠든다. 교통약자석 표시(픽토그램)를 가리키면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어로 말하고, 중국인이냐고 물으면 영어도 잘하지 못하면서 “Do you speak English?”라고 한다. 무례한 태도와 표정이 뻔뻔스럽고 역겹다.
중국은 1978년 등소평의 개혁·개방 선언 직후인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대외 교류에 나섰고, 한국과는 1992년의 수교로 6·25 참전 이후 주적이었던 대(對)중국 관계가 다시 우방으로 바뀌게 됐다. 한중 관계는 한일 관계만큼이나 미묘하고 가변적이라 할 수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화교는 거의 숨어 살다시피 했다. 꾀죄죄하고 음흉하며 돈만 밝히지 않았던가? 명·청 시대와 달리 하인 취급받던 그들이 한일과 서방 세계의 도움으로 국격이 상승하면서 태도가 돌변한 것이다. 훨씬 더 잘 사는 일본인들과 비교된다.
공항 분실물 신고가 30년 동안 한 건도 없는 나라, 기차시간이 50년 동안 1분 이상 틀린 적 없는 나라라는 일본은 열 살 이전에는 시험이 없고 예절 인성 교육만 한다. 스스로 겸손하고 질서를 지키며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는 가히 세계 1등이다.
미국과 유럽에 이어 일본의 지하철이 좋다고 하던 시대가 가고, 지금은 한국의 지하철이 세계 제일이다. 깨끗한 환경, 저렴한 요금, 편리한 환승 경로 등이 일등공신이지만, 무엇보다 안전사고를 100% 예방할 수 있는 스크린 도어가 압권이다. 전동차의 진출입과 관계없이 승강장에서 남녀노소 안심하고 걸어 다닐 수 있지 않은가.
한 가지 지적한다면, 냉난방 조절이다. 겨울에는 영하의 온도에 견딜 수 있는 두꺼운 옷을 입고 타는데 지하철 내부 온도는 25℃에 맞추고, 여름에는 얇게 입는데 18℃도에 맞추면 어떻게 되겠는가? 밖에서 들어오고 나가는 만큼 외부와의 온도 차이도 늘 생각해야 한다. 지하철 내부는 가정이 아니라 공공장소라나 점도 전제해야 할 것이다. 몇 사람의 항의 때문에, 사람마다 다르다는 이유로, 또는 기관사나 철도청의 감정으로 고집할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국민 건강에 직결된 문제요, 에너지 관리 문제다.
한 가지 더 추가한다면, 위치 안내다. 요즈음 지하철 타고 좌석에 앉으면 십중팔구는 휴대전화를 보거나 잔다. 갑자기 내릴 때가 된 것 같아 고개 들고 안내를 찾지만 좋은 자리가 아니면 현재 위치가 어디인지, 다음 정류장은 어디인지를 금방 알 수가 없다. ‘그러기에 각자 정신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 할 말 없지만, 수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이란 점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이 점점 자랑스러워진다. 숨기고 싶은 부분보다 보여 주고 싶은 것이 많아지고 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누군가 우리 곁에 놓고 간 선물 보따리 같다. 그 엄청난 시련을 이겨낸 대가일까? 받아도 되나? 감히 누려도 괜찮은 것일까? 우리 후손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래, 모두 너희들 것이니 맘껏 누리거라!

필자소개
이 용 근 (drgn1108@hanmail.net)
삼성제일모직 밀라노 지사장
한국폴리텍 섬유패션대학 학장
파주문화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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