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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가짜증명서 3.
  • 작성자 : hanbark33
  • 작성일 : 2016.03.27
  • 조회수 : 10987

                                   한국사의 가짜증명서 (3)
1). 개요

1. 일본은 중국에 있던 조선왕실을 한반도로 옮긴 후 만주와 한반도에 있는 토착역사책들을 모조리 거두어(약 20만권) 불태워서 토착역사를 완전히 말살하고 조선의 전신인 삼국사기를 이 땅에 깔아놓고 삼국의 전신인 한단고기를 내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한단고기와 삼국사기는 흉악한 역사침략도서이다. 따라서 고구려, 백제, 신라는 한반도 토착사가 아니며 한반도는 기록역사가 없다. 중국사기와 삼국사기를 합쳐보면 고구려 5∼6개, 백제 5∼6개, 신라 5∼6개나 나온다. 이것을 합치고 조작편집해서 삼국사기를 만든 것이다.

 

2. 원래의 태백산, 길림, 부여, 만주, 발해, 봉천, 두만강, 압록강은 중국 섬서성 북쪽 내몽고의 태백산주변지역이다. 현재의 신만주지역이 아니다.
현재의 신만주는 1900년 전후부터 중국의 인민들을 이주시켜서 조성되었는데 1932년에 일제가 “만주국”을 세운 후 원래의 구만주 역사를 통째로 옮겨놓은 신만주이다. 일제는 좋은국호가 얼마든지 있는데 구“만주”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것은 역사 이동조작의 계획에 따라 한 것이다. 1911년∼1931년까지 일제가 중국의 역사를 둘로 쪼개서 그중 하나를 신만주와 한반도에 깔아놓은 것이 한국사다. 한국인들은 이미 조작된 식민역사만 알고 또 깊이 세뇌되어 그 내막에 대해서는 연구한 사람이 없고 알지도 못한다. 그러니 한국의 지식인들은 돌대가리 바보냐? 일제의 친위대냐? 아니면 반민족 역적이냐? 이런 사람들이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고 지식인들이니 국가의 장래가 어둡다.

 

3. 영어를 공부하려면 영어사전은 필수이고, 한문을 공부하려면 한문사전이 필수다. 그러므로 역사지리를 연구하려면 지명사전은 절대적인 필수서적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사기와 지리서만 가지고 역사를 해서 터무니없는 조작역사만 한다.
중국지명대사전도 이미 변조된 것이지만 세계적인 지명백과서전이다. 여기에는 고구려 압록수가 산서성 상건하 즉 현재의 영정하이고 환도성은 산서성 대동(大同) 서남쪽에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산서성 북부의 통화현, 환인현, 집안현은 1908년 광서제 때 이름을 만들어 1928년 일제 때 처음으로 동북3성을 설치하고 옮겨놓은 것인데 한국은 집안이 무려 2천 년 전의 고구려 서울이라고 가르쳐 왔다. 그야말로 웃기는 소리다. 동북 3성은 중화민국에서 처음 설치했는데 1929년 장개석의 국민정부에서 다시 조정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고구려, 고조선의 지명들이 중국 서부에서 동부로 통째로 옮겨졌음을 발견했다. 동부로 옮겨놓은 조작된 역사를 일제가 다시 들어다가 신만주와 한반도에 깔아놓은 것이 바로 한국사다.

 

4. 사기, 지리서, 지명사전 등 중국의 역사책들은 고조선부터 청나라까지 중국서부, 중국동부, 만주와 한반도 이렇게 3개소에 동시에 존재한다. 이것이 현존하는 중국의 서적이다. 세상에 이런 역사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중국사기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거나 믿으면 그 즉시 바보 아니면 사기꾼이 되는 것이다. 이런 엉터리 기록들 속에서 진짜를 골라내는 일은 머리카락이 빠지고 머리통이 폭발할 정도로 어렵고  힘들다. 이것을 아는 학자가 한, 중, 일, 15억의 인구 중에서 필자가 처음으로 알게 되었으니 패권시대의 역사는 100% 가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제 누구든지 대학을 나왔다고, 역사 선생이라고, 교수라고, 박사라고 하면서 감히 역사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 말할 자격조차 없는 것이다.

 

5. 대체로 2500년 전후시대에 지구기후가 추워져서 시베리아 민족이 남하했는데 이때 색리족과 몽고의 북부여족이 한반도에 이동했으므로 만주와 한반도의 고구려 식 유물들은 북방족들의 공통적인 문화이며, 서로 교역을 통하여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라는 나라의 유물이 아니다. 고구려, 신라, 백제는 중국대륙에 있었던 나라이므로 그 당시에 남마드(한반도)의 나라 이름은 다른 것이어야 한다.
남마드(한반도)의 유물유적에 맞추고 변조해서 이루어진 삼국사기를 중심으로 고구려 유물이다, 백제유물이다, 신라유물이다, 고려 때의 유물이다, 이조 때의 유물이다 고 하는 학계의 주장이나 발표들은 모두 일제가 조작해준 역사에 맞추는 거짓이다.
 
6. 만주 집안이 1928년에 처음 생겼으므로 만주의 피라밋 등의 유물들은 고구려 시대보다 훨씬 오래된 것이며 고구려 태왕릉이 아니다.
집안의 광개토 비석은 삼국사기를 한반도 역사로 고착시키기 위해 일본이 중국에 있었던 비석을 옮겼거나 새로 만들어 세운 것이다. 그리고 신만주에서 처음 발견한 것처럼 술수를 부린 것이다. 이를 고착화시키기 위해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전신인 고조선을 끌어다 놓아야 했으므로 1910년에 한일합방이 되었는데 1911년에 한단고기가 슬며시 출현한 것도 모두 일본이 남북마드(만주와 한반도)에 고조선과 삼국이 있었다고 꾸미기 위한 음모이고 술수이다.
비석의 출현과 비석에 있는 지명들이 중국지명이던 한반도 지명이든 그것은 일본의 비밀기관만 아는 것인데 비석 자체에 대한 과학적 정밀분석 없이 고구려 유물이라고 단정한 것은 누구냐?
또 일본의 금서룡은 당시에 군대를 부릴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가졌다고 전해온다. 그러므로 광개토 비석을 새겨서 석회수에 담가놓으면 오래된 것처럼 변하다. 그런 후에 집안에 세울 수 있다. 다만 석회수에 담근 것과 자연적으로 오래된 것과는 과학적 검사로 밝힐 수 있다고 하는데 한국은 비석을 검증한일이 없이 무조건 한국사의 유물로 확정하여 왔다. 누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했는가?  과학시대에 살면서 이 얼마나 비과학적인 미개민족의 역사를 하는 것인가?
 
7. 경주에는 천년의 도읍지다운 유적이 하나도 없다. 경상도 경주가 신라 천년의 도읍지라면 중국 낙양정도의 유적들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경주왕릉이 진짜라고 믿는 사람들은 바보다. 이제 인공지능시대이니 머지않아 과학적으로 검중할 수 있는 기구들이 나와서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8. 중국역사상 산서성과 하북성 중부로부터 그 북쪽인 요서, 신만주, 한반도에서 “평양“이란 이름을 직접 사용한 사실이 없다. 그렇다면 한반도 평양은 언제 누가 만들었는가? 한강도 중국에는 3개나 있지만 한반도에 한강이 있다고 한 직접기록은 없다. 그러면 한반도 한강은 누가 언제 만들어 붙였는가? 모두 일제의 농간이다.
필지가 평생 공부했지만 5천년 역사에서 중국의 나라들이 신만주와 한반도를 통치한 나라는 없다. 그 반대로 한반도 민족들이 중국에 건너가 무려 4000여 년 동안이나  지배했고 우리의 언어와 문화가 전 세계에 퍼져있다. 언어, 고인돌, 피리밋, 토기 이렇게 4가지만 가지고도 세계문명의 뿌리라는 것을 증명할 수가 있지 않은가?

 

2). 한국사가 가짜라는 증거

 

1. 신만주의 고구려지명은 일제가 이동시킨 것.
①회인현(懷仁縣)(중국고금지명대사전P.1342):
“요나라가 설치했다. 아보기가 진왕 이극용과 동성에서 회합했다. 회상인이란 사람이 있다고 해서 현의 이름으로 택했다. 지금의 산서성 회인현 서쪽이다. 금나라 때 지금의 치소로 옮겼다. 명나라, 청나라 때는 다 산서성 대동부 소속이었다. 민국 초에는 산서성 안문도에 속했다" (중화민국 1911-1928년)

 

②환인현(桓仁縣)(중국고금지명대사전 P.715):
“원래 수암주 동쪽 변두리 땅이다. 청나라 광서황제 때 나누어서 회인현을 설치했고 치소가 육도하이며 봉천흥경부 소속이다. 민국 때 환인으로 개명해서 이름이 되었고 봉천동변도 소속이다.(原爲岫巖州東邊地. 淸光緖間析置懷仁縣. 治六道河. 屬奉天興京府. 民國改名桓仁. 以古爲渤海桓州. 故名. 屬奉天東邊道.)”
※ 청나라 광서 때(1875-1908), 중화민국(1911-1928)

 

③통화현(通化縣)(중국고금지명대사전P.854):
"수나라가 설치했는데 당나라가 폐했다. 5대시에 옮긴 곳이 소봉현인데 통화로 고쳤다. 명나라 초에는 성이다. 옛 치소가 사천성 리번현 동쪽에 있고 지금은 통화리다.
⦿청나라 수암주 동변 땅이다.  광서간에 나누어 통화현을 설치했다. 치소는 두도강이고 봉천 흥경부 소속이다.  중화민국 때는 봉천 동변도다. (✳광서간 1875-1908년)
“(隋置. 唐廢. 五代時移小封縣於此 . 仍改曰通化. 明初省. 故治在今四川理番縣東.
⦿淸岫巖州東邊地. 光緖間析置通化縣. 治頭道江. 屬奉天興京府. 民國屬奉天東邊道.)“
※수암주(중국고금지명사전 P.459): 한나라 때의 현토 땅.: 원래 위치는 감숙성 개평동북 일대
※흥경부(중국고금지명사전 P.1235):(한)원토 땅, (수)고구려 땅, (당)연주 땅, (발해, 요, 금) 심주 땅. (명)건주위 땅, 후에(중화민국 때) 만주로 간 땅이다.: 원래 위치는 수암주와 같다.

 

④집안현(輯安縣)(중국고금지명대사전 P.1244):
"한나라 말기에 고구려 환도현이다. 당나라 때 발해의 서경압록부다. 청나라가 통화, 회인 두 현을 설치한 땅이다.  광서간(1875-1908년)에 나누어서 집안현을 설치했다. 치소는 통구구이고 봉천성소속이다. 중화민국 초에는 봉천 동변도인데 지금의 요녕성이다.(漢末高麗丸都縣. 唐渤海西京鴨綠府. 淸爲通化懷仁兩縣地. 光緖間析置輯安縣. 治通溝口屬奉天興京府. 民國初屬奉天東邊道. 金屬遼寧省.) 
※"지금"이란 1911년∼1928년 사이를 말한다. 대체로 초기는 원래의 본토, 중기는 본토에서 동쪽 또는 북쪽으로 이동된 장소, 말기는 신만주로 보면 된다.
청나라가 설치한 산서성 북부의 통화, 회인 두 현의 땅을 나누어 집안현을 설치한 것은 청나라 광서제 때 즉 1875년∼1908년이다. 이것을 손문의 중화민국 때(1911-1928년)에 신만주에 설치한 봉천 동변도 소속으로 이동시켰다는 이야기이다. 1928년 이전에는 봉천성이고, 1928년에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의 3성을 설치할 때 요녕성으로 바뀐 것이다.

✳청나라가 산서성 서북부의 구 회인현 서쪽에 새로 회인현과 통화현을 설치했는데 청나라 광서제 때(1875-1908년) 집안현을 설치하고, 중화민국 때(1911-1928년)회인현을 환인현으로 바꾸었다가 후에 산서성에서 현재의 신만주로 이동 조작한 것은 1911년 이후 중화민국 때 즉 일제 때이다.
그런데 한국은 4300년 전부터 고조선이 있었고 집안이 2000년 전부터의 고구려 국내성이라고 가르쳐 왔다.

※중국사기의 기록들은 원래의 역사무대인 청해성, 감숙성, 그 북쪽의 길림 땅에서 동쪽으로, 동쪽의 이동시켰다. 이것을일제가 마지막으로 신만주와 한반도에 덮어놓은 것이 한국사다.
중국 감숙성 동부에서 요양성- 봉천선- 요녕성- 길림성을 차례로 만들어 리레이식으로 동쪽으로 이동하여 신만주 동북 3성을 설치한 것이다. 모든 지명이동이 이와 비슷하다.

 

2. 고구려 성들의 진짜위치 기록
①고구려 비사성(卑奢城, 사비성)(중국고금지명대사전P. 431): 감숙성 해원
“지금 봉천 해성현이다. 일명 비사성, 혹은 비사성이라고 한다. 수나라 래호아나 당나라 장량, 정명진이 항상 해도로 출격했는데 고구려에게 패했다.(在今奉天海城縣. 一作卑沙城, 卑奢城. 隋來護兒. 唐張亮, 程名振皆嘗出海道敗高麗於此)”

 

①-1. 해성현(海城縣)(P.725):
“ 주나라, 진나라 때 조선 땅이다. 한나라 현토소속인데 후에 낙랑에 소속되었다. 동한 때 도위를 옥저 땅에 봉했다. 위나라 평주소속이다. 진나라와 수나라 때는 고구려 소속이다. 당나라가 고구려를 평정하고 개주소속으로 했다. 발해의 남해부다. 요나라가 해주남해군을 설치했다. 금나라가 징주로 고쳤다. 원나라 요양로 소속이다. 명나라가 해주위를 설치했는데 요동도지휘사사 직할이다. 청나라 순치 간에 해성현을 설치하고 요양부 소속으로 했다. 후에 봉천부 소속으로 고쳤다. 중화민국은 그대로 했는데 봉천성 요심도 소속이다. 남만주 철로가 지나간다.
⊙청나라가 설치했는데 해원현조에 상세하다.(周秦屬朝鮮. 漢屬玄菟後改屬樂浪. 東漢置都尉以封沃沮魏屬平州, 晉及隋屬高句麗. 唐平高麗屬蓋州, 入渤海爲南海府. 遼置海州南海軍. 金改澄州. 元屬遼陽路, 明置海州衛. 隸遼東都指揮使司. 淸順治間置海城縣屬遼陽府. 尋改屬奉天府. 民國因之屬奉天遼瀋道. 南蠻鐵路經之. ⊙淸置. 詳海原縣條.)”
✳고구려 비사성을 당나라가 점령하여 개주소속으로 했고 청나라가 해성현으로 고쳤으며 후에 중화민국이 해원으로 고쳤는데 지금지도에서 감숙성 녕하회족자치구 해원이다.
명나라가 요동도지휘사사를 설치했으니 요동 땅임을 증명하며 명나라가 요동의 서쪽인 청해성의 나라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①-2. 해원현(海原縣)(P.723):
“청나라 평량부 염다동지가 있는 곳이다. 후에 다시 동지를 두었다. 다시 해성현을 설치했는데 고원 직할주 소속이다.  중화민국이 해원으로 고쳤는데 현에 해도원이 있어서 이름이 되었다. 감숙성 경원도 소속이다.(淸平涼府鹽茶同知所駐. 後栽同知. 改置海城縣屬固原直隸州. 民國改爲海原. 縣有海都原. 故名. 屬甘肅涇原道.)”
✳감숙성 고원직할주 소속 현인데 지금 고원의 서북쪽에 있다.
※고구려 비사성(사비성)은 감숙성 해원(해성)이다.

 

② 고구려 개모성(蓋牟城)(중국지명대사전 P.1128): 감숙성 개평
“본래 한나라 개마현인데 후에 고구려로 들어갔다.  금나라가 봉천부 개평현으로 했다. (요사지리지)에 ⌜당태종과 이세적이 만나 개모성을 공격하여 점령했다. 발해가 개주로 했다가 진주로 고쳤다.⌟ 통지에는 이적이 점령하고 나서 이를 개주로 했다.(本漢西蓋馬縣. 後入高句麗 金爲奉天蓋平縣. (遼史地理志)⌜唐太宗會李世勣攻破蓋牟城. 渤海改爲蓋州又改辰州⌟ 通志作李勣拔之以爲蓋州.)”
 
 ② -1. 개평현(蓋平縣)(P.1127):

“주나라 때 조선소속이다. 진나라 때 연나라 사람 위만이 점거한 곳이다. 한나라 현토소속, 당나라 개주, 요나라 진주, 금나라 개주봉국군, 원나라 개주로, 명나라 개주위인데 요동도지휘사사 소속이다. 청나라 개평현인데 봉천부 소속이다. 중화민국 때는 그대로 했다. 원래의 소속은 봉천 요심도다.(周屬朝鮮, 秦時爲燕人衛滿所據. 漢屬元菟. 魏屬平州. 晉隋屬高句麗. 爲蓋牟城地. 唐蓋州. 遼辰州. 金爲蓋州奉軍. 元蓋州路. 明蓋州衛. 屬遼東都指揮使司. 淸蓋平縣.屬奉天府. 民國因之. 原屬奉天遼瀋道.)”
 
②-2. 개주(蓋州):
"당나라가 기미주를 설치했다. 지금은 없는데 당시에는 감숙성 구녕하부 경계에 있었다.(唐置羈糜州. 今闕. 當在甘肅舊寧夏府境)"
  
③ 오골성(烏骨城)(중국지명대사전 P.732): 개모성 동쪽 강변
“수나라, 당나라 때 고구려의 중요한 지역이다. 당태종이 고구려를 정벌할 때 신하의 모의를 받아 이를 취하고 평양을 압박하기 위하여 장손무기에게 그곳을 맡기고 군사를 안시성으로 돌렸다. 안사고는 지금 봉천 개평현 동쪽 강변지방에 있다고 했다.(隋唐時高句麗重地. 唐太宗伐高麗. 臣下謀取之以迫平壤. 爲長孫無忌所阻. 乃征師安市. 按在今奉天蓋平縣東濱海地方.)”(조阻: 험하다, 멀다, 걱정하다.)
※개평현 동쪽에는 북쪽에서 함양으로 흐르는 빈수(邠水)라는 대강이 있는데 이것을 빈해(濱海)라고 하여 바다해자로 써서 위치를 모르거나 혼란스럽게 조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기록의 바다해(海)자는 중국 동해라고 표현한 것 외에는 전부 강(江)으로 해석해야 된다.

 

④고구려 건안성(建安城)(중국지명대사전 P.614): 감숙성 천수 서남쪽
“감숙성 성현북쪽에 있다. (수경주)에 ⌜건안수가 건안성 남쪽을 지나 간다⌟ 그 땅은 엣 서현의 역성이다. 후에 건안으로 고쳤다. (在甘肅成縣北. (水經注)⌜建安水經建安城南⌟其地故西縣之歷城也. 後改爲建安⌟)”
 
③-1. 한양군(漢陽郡)(P.1104):
“후한이 전한의 천수군 치소를 기 땅으로 옮겼다. 옛 성이 지금 감숙성 감곡현 남쪽에 있다. 후에 (천수)군을 한양(군)으로 고쳤다. 삼국시대 위나라가 다시 천수군으로 고쳤다.
삼국시대 촉나라가 설치했다. 한양현을 보라.
후위가 설치했는데 치소가 란창현이다. 서위가 군을 장도군으로 고쳤다. 현이름은 한양이다. 수나라가 군을 폐하고 현으로 했는데 장도이다. 옛 성이 지금 감숙성 례현 동남에 있다.
후위가 설치했는데 북주가 폐했다. 옛 성이 지금 감숙성 천수현 서남에 있다. 본명을 역성이라고도 하고 건안성이라고도 한다.  수나라가 한양군을 설치했는데 당나라가 폐했다. 옛 성이 지금 감숙성 성현 북쪽에 있다.
   (後漢移前漢天水郡治冀. 故城在今甘肅甘谷縣南. 尋改郡爲漢陽. 三國魏復曰天水.
三國蜀置. 見漢陽縣條. 後魏置. 治蘭倉縣. 西魏改郡曰長道. 縣曰漢陽. 隋罷郡改縣曰長道. 故城在今甘肅禮縣東南.
後魏置. 北周廢. 故城在今甘肅天水縣西南. 本名歷城. 又名建安城. 隋置漢陽郡. 唐廢. 故城在今甘肅成縣北)“
✳한양군 치소를 후한의 천수군 서남의 기 땅일 때 감곡현 남쪽이고 성현북쪽이다. 한양군 치소를 서위가 성현으로 옮겼을 때가 례현 동남이다.
✳ 건안성은 감숙성 천수서남 冀, 冀城, 歷城, 漢陽郡 소속으로서 주황산(朱皇山)지역이다.
이상의 비사성, 개모성, 오골성, 건안성이 중국 감숙성에 있는데  다른 성들도 모두 주변지역에 있는 감숙성이다.

 

 

 ④ 경원도(涇原道.)(P.728):
“감숙성 치소 동쪽에 있다. 청나라 평량, 경양 2부와 경주, 고원 2주 및 화평천청의 땅이다. 민국이 경원도를 설치했는데 감숙성 소속이다. 치소는 평량현이다. 분할해서 평량, 화정, 정녕, 융덕, 장랑, 경양, 녕, 정녕, 합수, 환, 경주, 숭신, 진원, 령대, 고원, 해원, 화평 17현이다.(在甘肅省治東. 淸平涼慶陽二府. 涇州固原二州. 及化平川廳地. 民國置涇原道. 屬甘肅省. 治平涼縣. 轄平涼. 華亭. 靜寧. 隆德. 莊浪. 慶陽. 寧. 正寧. 合水. 環.  涇州. 崇信. 鎭原. 靈臺. 固原. 海原. 化平 十七縣.)”
✳해원(해주, 해성: 비사성), 고원(고평: 환도성), 개원(개주, 개평, 개성: 개모성)이 서로 인접지역이고 개원은 고원의 동남에 있다.(지도참조). 청나라의 해성, 고평, 개평이란 지명이 중화민국 (1911년-) 초까지 중국의 감숙성에 있었는데 해원, 고원, 개원으로 고친 다음에 일제 때 이동시켰다는 증명기록이다.
천수는 패수(위수) 상류이고 천수서남쪽에 건안성이 있으므로 청해성의 수나라, 당나라가 침략한 고구려와의 전쟁터는 감숙성 동부 즉 요동 땅임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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