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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가짜증명서 이씨조선
  • 작성자 : hanbark33
  • 작성일 : 2016.04.06
  • 조회수 : 11131

 
               한국사의 가짜증명서 (4)이씨조선
1922년 조선사 편수회를 만들어 역사책들을 모조리 한반도에 맞게 개작했는데 조선의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1989년 중판

 

본)은 조선사편수회 소속이었던 이병도, 성락훈 등의 주도로 해석되어 민족문화추진회(저작권자)에서 발행한 4000여 페이지의 장

 

서인데  이 책에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있다. 이것들은 농촌에서 벼 베기를 한 후 논바닥에 떨어진 이삭과 같은 것이지만 이씨조선

 

이 한반도의 역사가 아니고 중국의 국가임을 증명하는 충격적인 내용들이다.

 

①중국에서는 기호학파(畿湖學派), 기호지방(畿湖地方)이란 말을 썼다.

이 말은 중국 서안을 중심으로 한 경기도와 호북성, 호남성이 연이어 붙어있었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그런데 한반도는 경기도와 호

 

남 사이에 충청도가 끼어 있어서 해당되지 않는다. 호남과 호북이란 거대한 양자강과 동정호가 호남성과 호북성 사이에 있어서 구

 

분 한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에는 호남은 있는데 호북이 없다. 전북과 전남 사이에 거대한 호수가 없다. 거대한 호수인 충주호는 충

 

청북도와 경상도 쪽에 있다.
 
②중국은 서안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관문이 있어서 4관(四關)이란 말이 있다.

한반도에는 역사적으로 사관이 없으므로 관동이나 관서란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반도에서 관동팔경, 관동별곡 등의 말

 

은 허구이다.
 
 ③이씨조선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 제1권 서문에(P.21--28)

"사방의 복판에 처한 것을 경기라 하고, 서남은 충청, 동남은 경상, 남쪽에 치우친 것은 전라, 정동은 강원, 정서는 황해, 동북은 영

 

안, 서북은 평안이라 하였습니다. 경(京)이 둘이요 부(府)가 넷, 대도호부가 넷, 목(牧)이 20, 도호부가44, 군이 83, 현이 173이다---

 

양경(兩京) 8도 50권을 편찬하여 바치나이다."(노사신, 강희맹, 서거정 등이 쓴 동국여지승람 서문)

※③-1. 위 본문에서 “정서는 황해, 동북은 영안,“라고 했는데 중국은 서쪽이 커서 황해도를 둘 수 있지만 한반도는 서울의 서쪽에

 

황해도를 둘만한 땅이 없어서 서북쪽에 두었다. 또 동북은 한반도 함경도가 아니고 중국의 영안도이다.

 

③-2. 또 양경(兩京) 즉 “동서이경(東西二京)“이 나오는데 이씨조선의 교과서인 천자문에는 “동서이경(東西二京)”에 대한 설명문이

 

다음과 같이 나온다.

"도읍은 화산과 하나라 옛 땅에 있고, 동서에 두개의 서울이 있으며, (동경은)뒤에는 북망산이요 남쪽은 낙수이고, (서경은)위수를

 

끼고 경수에 의지해 있는데 궁전은 울창한 나무가 있는 반석위에 있다.(都邑華夏東西二京 背邱面洛 浮渭據涇 宮殿盤鬱)"

 

※동경은 낙양 즉 경주이고 서경은 함양(咸陽)이다.

화(華)는 순임금의 이름 중화(重華)를 따서 순임금 이후부터 중화(重華)라고 했고, 하(夏)는 하나라 땅(시조 우(禹): 본명 文命, 별칭

 

하후씨)인데 순임금으로부터 받은 봉지가 지금의 하남성 숭산 남쪽 우주(禹州)인 하(夏) 땅이어서 우임금을 하후(夏后)라고도 한

 

다.

함양과 낙양을 중심으로 한 1개 성(省)정도의 지역을 순임금 이후부터 중화(重華)라고 하다가 하나라 이후에는 화하(華夏)라고 했

 

는데 후에는 구궁(九宮)의 중심 즉 천하의 중심이란 뜻의 중화(中華)로 바뀌고 또 후에는 중원(中原)이라고도 했다. 당나라 때는 경

 

기(京畿)라고 했으며 이씨조선 때 경기도(京畿道) 즉 황제직할지가 바로 중국이다. 문헌상으로는 이씨조선 세종 때 중국(中國: 훈민

 

정음 반포문)이란 단어가 보인다.

 

④신증동국여지승람 제1권 경도(京都)上 P.25, 경도下. 동국여지비고 1권: P.161.

“서울은 북으로 화산(華山)을 진산(鎭山)으로 삼고 동과 서는 용이 서리고 범이 쭈그리고 앉은 형세요, 남쪽은 한강으로 금대(襟帶)

 

를 삼았으며, 멀리 왼쪽으로는 대관령을 당기고 오른쪽에는 발해를 둘렀다.”

※북쪽으로 화산을 지고 함양 서쪽에 용산이 있고, 동쪽에 호산이이 있으며 남쪽의 위수가 이씨조선 때는 한강으로 불러졌음을 알

 

수 있다. 한반도 서울 북산은 북악산, 북한산이라고 하며 화산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중국 함양에서 본 방향이다. 남쪽에 한강(渭水)가 있으니 서안이 아니라 함양이다. 한반도에서는 오른쪽이 대관령이며, 왼쪽이 발

 

해로 정 반대다.

 

⑤신증동국여지승람 제3권 한성부. 형승 조(P.253)

“북쪽으로 화산(華山)을 의지하고 남쪽으로 한강에 임하였다”

 

⑥신증동국여지승람 경도하 비고편: 국도(P.162)

"한양(우리나라)은 서북쪽이 높고 동남쪽이 낮으므로 장자(長子)가 가볍게 되고, 지자(支子)가 중하게 되는 땅이다.“

※중국은 西高東低, 한반도는 반대로 동고서저(東高西低)이다.

 

⑦신증동국여지승람 제3권 한성부편, 궁실(P.287)

"온 누리 모든 제도는 주(周)나라 법칙, 강역은 옛 한(漢)나라 봉역(封域)이네"

※한반도는 한나라 땅이 된 일이 없다.

 

⑧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권 한성부 산천편의 삼각산.

(三角山: 華山: 負兒岳: 비류, 온조가 한산 부아악에 올라 살만한 곳을 찾은 산이라고도 한다.)

고려 이존오의 시에(P.255)

“세 송이의 기이한 봉우리 하늘에 닿았는데

 아득한 대기에 구름연기 쌓였네

쳐다보니 날카로운 모습 장검(長劍)이 꽂혔는데 ---“

※서울 북한산의 삼각산에는 멀리서도 크게 보이는 커다란 장검모양의 바위가 없다.

 

⑧-1. 고려 이색의 시에(P.255)

“세 봉우리 깎아내린 것 아득한 태고적이라.

신선의 손바닥이 하늘 가르치는 그 모습 천하에 드물리 ---“

※서울의 삼각산에는 신선의 손바닥처럼 멀리서도 크게 보이는 큰 바위가 없다.

 

⑧-2.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권 한성부 제영 편(P.341)

강희맹의 시;

“종남산 푸른 기운 구름위에 높은데

서울장안 24개다리 굽어본다. --- “

※종남산은 중국 서북의 감숙성에서 발원하여- 서안 서쪽- 남쪽- 서안동쪽까지 이어진 태일산맥, 종남산맥, 남산산맥, 진령(秦嶺)

 

산맥이며 근세의 태백산맥이라고 조작한 산이다. 그 종남산위의 구름보다 더 높이 있는 푸른 기운이 서울장안 24개다리를 내려다

 

본다는 표현이다.

서안 남쪽에 있는 종남산맥의 오대산(五臺山: 오봉산)은 민비를 최초로 장사지낸 곳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민비를 최초로 장사지낸

 

곳이 중국이다 또는 한반도다 하는 두 가지 설이 있으나 아직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으나 한반도 남양주의 고종무덤에 합장된 민비

 

무덤은 후세에 이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⑨신증동국여지승람 제3권 한성부 산천편(P.255)-서호(西湖):

서호는 도성에서 10리도 못되는데 호수남쪽에 끊어진 언덕이 있는데 형상이 큰 자라머리 같으며 혹은 잠두(蠶頭)라고 한다. 언덕뿌

 

리가 호수가운데 뾰족하게 바늘처럼 나왔는데 형세가 높아서 호수 가운데의 형승을 모두 볼 수 있다.

※서울 서쪽에는 수십리나 되는 호수가 없다.

 

⑩감숙성 동남의 봉성(鳳城)이 섬서성(조선 경기도)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 한성부편 “누정”의 양화도 망원정(望遠亭)을 을픈 김종직(金宗直)의 시에 “---. 지경이 봉성(鳳城)에 연접하였

 

는데---”⌟라고 하여 현재의 위치를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다.

 

⑪변계량의 화산별곡(卞季良 華山別曲)에 "화산은 남쪽이요 한수는 북쪽인데 조선의 명승지다.(華山南漢水北朝鮮勝地)"

 

⑫이중환의 택리지 팔도총론(李重煥擇里志八道總論):

 "녕변부(寧邊府) 서쪽은 위원(渭源)지역인데 명나라 이성량의 조상무덤이 있다“

※조선의 녕변부 서쪽지역에 위원지역이 있다는 뜻인데 감숙성 녕현(寧縣, 寧州)에서 서쪽으로 천여리 되는 곳에 위원이 있다.  지

 

금 감숙성 평량 동쪽에 녕현(寧縣)이 있는데 한나라 때 니양현(泥陽縣), 서위의 녕주(寧州), 금나라와 원나라 때 안정(安定), 청나라

 

경양부 소속 현이고, 중화민국 때 감숙성 경원도 소속현이다.

 

⑬신증동국여지승람경도상 성곽조.(P.43), 경도하. 성곽조(P.166)

“경성(京城)은 태조 5년에 돌로 쌓았으며 세종 4년에 수리했다. 높이가 40자 2치(약 12미터)이다.”

궁성(宮城)은 경성 복판에 있고 둘레는 1813보(약 1269m), 높이 21척(약 6m)(겅도상. 성곽: P.44)

※함양성은 외성의 높이가 12미터, 내성의 높이가 6미터이니 단장만 있는 한반도 청와대가 아니다. 따라서 한반도는 이성계 조성의

 

도읍지가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이다.

 

⑭신증동국여지승람 제52권 평안도영유현, 사원조(P.480).

“선조 계묘년에 건축하여 현종 무신년에 와룡(臥龍)이라 사액했는데 영종(영조: 1724∼1776) 경오년에 삼충사(三忠祠: 제갈량의 시

 

호 忠武侯)로 고쳤다”

※제갈량의 촉나라는 중국 사천성이니 한반도에서 무려 7000여리나 떨어진 나라가. 이씨조선이 한반도의 나라라면 사천성의 제갈

 

량과는 전혀 무관한 나라이므로 제갈량의 사당을 지어서 관리해야할 암런 이유가 없다. 따라서 이 기록은 1750년 전후시대까지 이

 

씨조선이 중국에 있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필자는 1750년 이후에 한반도로 이동했거나,  일본의 조선총독부가 한반도

 

로 이주할 때 중국에 있던 이씨조선의 백성을 이주시키고 고종과 조선왕실을 이식시킨 두가지중의 하나로 본다. 한국인은 일본의

 

이식나무(移植木)인가? 그래서 철저하게 일본의 식민사상을 지켜온 것인가?

 

⑮원래의 백두산(태백산, 장백산), 길림, 만주, 발해, 봉천, 압록강, 두만강은 중국 본토의 구만주에 있던 것을 일제가 한반도 북쪽에

 

새로운 신만주를 만들어 옮긴 것으로서 단군조선과 삼국의 역사무대가 신만주와 한반도라고 역사를 조작한 것이다. 

 

⑯남마드(한반도)에서 이씨조선의 문화라는 것들이 모두 중국의 것뿐이다.

판소리의 중국적벽대전노래인 "적벽가", 성주풀이에서 중국 낙양성을 노래한 "낙양성 십리하에--.“ 시조에서 중국 청상리를 묘사한

 

"황진이의 청산리".  시조에서 중국 산동성 태산을 묘사한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기타 "아리랑",  "족보" “북망

 

산”--등등 모두 중국 것들뿐이다.

아리랑의 아리, 아라리 --등의 말은 모두 중앙아시아 말들이다. 한반도의 토속어가 아니다.

 

⑰40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조선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일제 때 한반도에 맞춰서 지명이나 거리 등 중요부분들을 모두 고쳤

 

다, 그런데 본문이 아닌 엄청나게 많은 시문이나 유람기 같은 것에서 한반도 토착의 역사, 문화, 인물, 신화, 전설을 언급한 것이 하

 

나도 없고 모두 중국 것만 나온다.

한반도에서 제주도의 1만년 된 토기와 옥귀걸이, 8000년 전의 부산 인골과 옥제품, 창녕의 배, 화순의 고인돌, 울산 반구대암각화,

 

6000년 전의 한반도 토기들, 4000년 전 이후의 청동검과 세형동검 등등 무수한 역사유물들은 중국 문화와는 완전히 다르다. 이렇게

 

분명한 증거물들이 있는데 어째서 이씨조선의 기록에서 한반도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하나도 없는가?

역사, 사상, 문화, 조상 까지 모두 일본이 한반도 영구지배를 위해 만든 것인데 지금 우리는 일본이 만들어 준대로 하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인가?  한국의 지식인은 모두 죽었는가?

만약 한국인들이 “요동요서와 한 4군”만 정확하게 알아도 가짜 책으로 역사를 하지 않을 텐데 ---.

※저작권 주의
이 자료들은  유우찬 저
1. 한국사 검토서 1. “한국사는 일제의 가공소설”
2. 한국사 검토서 2.  “당, 고 전쟁 위치연구”
3. 한국사 검토서 3.  “한국사의 실체“
에서 옮긴 것이니 출처를 밝히지 않은 모든 인터넷과 저작물의 전재나 복사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2016. 3. 2.
                                        바른나라운동본부
                                        한국상고사연구회
                                          회장 유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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