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위치연구 제3강 요점(한국사판정문).
1). 환단고기 출현의 문제점:
고조선의 역사는 첫 머리에 단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두 번째나 세 번째에는 반드시 관경에 대한기록이 있어야 하는데 환단고기에는 없다. 단기고사나 규원사화에 있는 관경에 대한 기록은 환단고기에도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것은 일제가 한국의 상고사로 둔갑시키기 위해 내용을 지우고, 변조하면서 없앴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환단고기 원본이 진짜던 가짜던 상관없이 일제시대에 단군교(대종교) 계열에서 나와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동경에서 발행한 후에 일본학자가 먼저 해석한 책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성경에 이스라엘 역사가 있듯이 단군교 경전에 있는 역사를 따로 분리해서 환단고기로 출현시킨 것으로 본다. 단군교의 교세확장에 큰 도움이 되고, 일제는 역사조작의 목적을 이룰 수 있으므로 양쪽의 목적이 잘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일제가 민족주의자들 몰래 술수를 부려 환단고기를 출현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임승국교수가 이것을 가져다가 해석하여 한국의 상고사라고 주장한지 불과 30여 년 만에 우리역사로 자리 잡은 것이다. 문제는 오늘날 한국의 모든 민족종교에서는 단군을 숭상하고 환단고기가 한국의 상고사라고 주장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재야학자들 일부는 민족종교 출신이거나 그 아류라는 것이다. 이들에게서 영향받은 일반들이 가세한 것이 오늘날의 상황이다. 그래서 민족종교에 일제의 마수가 뻗쳐있다는 의심을 떨쳐낼 수가 없다. 검토해보면 절대로 우리역사가 될 수 없는 머나먼 나라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결국 삼국사기에 대한 정당성을 확립시키려는 음모이다. 반면에 삼국유사에서 단군을 신화로 조작한 것은 환단고기가 일제와는 상관없는 정사라고 인식시키기 위한 일제의 고도책략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고차원의 수법에 고스란히 넘어가서 바보 멍텅구리가 된 것이 바로 한국인들이다. 그러니 이제 환단고기는 다시 제자리인 대종교 경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정론이라고 생각한다.
2). 단국(속칭고조선)의 위치기록문
1. 대야발의 단기고사
“국경은 동쪽이 창해(滄海), 서쪽은 요서(遼西), 남쪽은 남해(南海), 북쪽은 서비로(西非路)에 이르러 큰 민족이 9부, 작은 민족이 14부였다.”(제1편 전단군조선 2세 부루 조)
2. 규원사화
“북으로는 대황(大荒)에 이르고, 서로는 알류(猰貐)를 거느리고, 남으로는 해대(海岱)에 이르며, 동으로는 창해(蒼海)에 이르렀다”
※이상의 두 가지 기록에서 중요한 것은 동쪽의 창해다.
그래서 시간관게상 고조선 동쪽경계인 창해만 검토해보기로 한다.
3. 창해군((滄海郡)(중국고금지명대사전 P.1033):
“한서에 팽오가 예맥과 조선(예맥조선)을 뚫어 창해군을 설치했다. 사기에는 창해군을 후에 진번군으로 했다. 지금 봉천 압록강, 동가강 및 흥경 부근이라고 했다. 혹은 창해군은 당시에 지금의 조선남부라고도 한다(漢書彭吳穿穢貊. 朝鮮置滄海郡. 史記作滄海郡後爲眞番郡. 今奉天鴨綠佟佳兩江及興京附近之地. 惑謂滄海郡當在今朝鮮南部.)”
※요수와 요동요서는 한국사나 고조선의 동쪽경계인 창해를 결정하는 데에 다른 근거가 필요 없을 정도의 절대의 원칙이고, 기본조건이다. 아래 요동요서 참고.
3). 환단고기의 맹점
환단고기는 지리서가 없다. 최초 원본기록에는 있었겠지만 어찌된 일인지 없다.
지리서가 없으면 "역사서"가 아니라 후세의 학자들이 주석을 달아주는 대로 동서남북 어디에 갖다 놓아도 되는 이야기책일 뿐이다. 예를 들면 창해를 알타이산 서남의 카스피해나 발하시 호로 보면 고조선은 서아시아에 있게 되는데 북쪽이 서비로라는 위치기록에 정획하게 일치한다.또 창해를 바이칼 호로 보면 시베리아 나라가 된다.
또 창해를 백두산 동쪽의 동해바다로 보면 만주의 나라가 되고, 창해를 발해만으로 보면 중국 본토에 고조선이 있게 된다. 이렇게 권위 있고 유명한 학자가 주장하는 대로 동서남북으로 왔다 갔다 할 수 있고 아시아 대륙의 어디에라도 다 존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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