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통령.당태종의 통치철학을 담은 명저, [정관정요(貞觀政要)]를 탐독했다 했는데 어디 한구석 그 교훈을 실천하는 것 같지 않다. 결과는 탄핵이니 그 자신뿐 아니라 그 선친에게도 출호이자반호이(出呼爾者反呼爾者也)의 업보를 남겨주는 비극의 주인공이 됐다. 맹자는 부메랑의 법칙을 설파한 것이라고 할까. 박대통령은 배신자를 그렇게 찍어내려 안간힘을 쓰더니 그 자신 국민을 배신했다는 올가미를 쓰게 됐으니. '미운 놈에게 떡 하나 더 주라'는 우리네 서민의 지혜라도 새겨들었으면 그런 비극은 면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는 효에서 출발한다고 했는데 효는커녕 대불효로 귀착좼으니. 이제는 국민의 차례다.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촛불의 꽁무니나 따라다니고 무엇 하나 지혜를 발휘해서 선제적 대응을 하지 못하니 국민이 나라의 운명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됐다. 미리 말해 둘 것은 촛불의 불순한 동기를 말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나는 장엄한 촛불은 필요했다고 보는 측이다. 공심(公心)이 안 보여 공인(公人)으로서의 자격이 의심스러운 두 여인네가 기막힌 분탕질을 쳤으나 제도권에서는 막을 힘이 없고, 백성의 장엄한 힘이라야 가능했으니 촛불은 필요했다고 할밖에 없다.
사실 군중의 발동은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부정적인 영향도 많다. 구한말 분노한 군중은 자주 폭발했으나 나라를 살리는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그들은 개혁총리(金弘集)를 돌러 때려죽이기까지 했으나 나라는 망했다. 그밖에도 개혁파의 데모, 보부상들의 역데모…등 군중의 집단행동이 얼마나 많았는가. 원래 중구삭금(衆口鑠金)의 나라, 대중이 함께 소리지르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의식의 전통이 뿌리 깊은 나라라 그럴까.
그러나 양반의 착취가 극에 달해 농민(동학)들은 이판사판의 몸부림을 치지 않을 수 없었으나 그게 망국의 길을 재촉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해서 애국의 상징 앙중근은 동학도를 토벌하는 행동에 나섰으니 비극이다. 현재도 우리는, 민주주의의 영향인가, 데모의 나라 같이 돼 있다. 4.19나 6.29는 역사를 바로잡았으니 역사적 소명이 컸으나, 효순이 촛불은 애도의 범위를 넘어서며 '살인'과 '사고'도 구별 못하는 한국인 지성의 미약성을 드러냈고, 광우병촛불은 한국인이 미국인보다도 더 철저한 위생관념으로 사는 나라라는 평판을 주어야 마땅할 것이었으나 그렇게 인정하는 세계인은 없는 것 같았으니 광란의 소극이었다. 더군다나 그게 정보의 왜곡으로 촉발된 것이라 역시 한국인의 멘탈리티만 의심받게 됐다. 이 밖에도 이런 사례는 많다. 미국과의 FTA반대는 유불리를 따져볼 줄도 모르면서 부화뇌동했고.
이제 한국의 군중은 최고의 권세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문제는 이런 군중을 동원하는 조직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대중을 동원하고 조직하는 권능을 보인다. 말하자면 그들은 제4의 권부를 구성하고 있음인데 그들의 정체는 오리무중이다. 언론은 두 여인의 행적은 미주알고주알 다 까발려도 그들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함구, 오히려 놀아난다. 정체불명의 그들은 막강한 조직력 자금력을 가지고 명실상부하게 최고의 권부가 된 것이다. 정당들도 그 앞에서는 머리를 조아리고, 정부도 그 비밀자금은 캐지를 못하는 것 같다.
그래도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번 촛불은 필요했다고 본다. 이제 문제는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길던 짧던 이 기간을 안전하게 그리고 최소한의 리스크로 건너는 것이다. 기분이 나쁘다고 무정부상태로 만들자 해서도 안 되고, 화가 난다고 해서 모두 때려부수자고 해서도 안 될 것이다. 우리는 하루살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세상일은 판단하기 참 어렵다. 나는 정치개혁을 위해 운동권당을 먼저 깨고 웰빙당도 깼으면 했는데, 저들의 하는 꼴을 보면 누가 먼저 깨지거나 그게 그거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촛불의 뜻을 제도권에서 흡수하여 해결해야 하지만 저들은 그런 능력이 취약하니 촛불을 거두고 원모(遠謀) 심려(深慮)의 치열한 담론으로 저들을 이끌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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