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주문제, 만주 봉천성, 요녕성, 길림성
2). 요녕성
필자는 기존역사를 공부하다 한4군이 한반도가 아니라 북경지역이고, 환단고기, 고구려본기, 신라본기, 백제본기, 가락국기 등 한국의 역사책이 현대지명으로 써진 일제의 작품이란 것을 알게 되어 지난 17년 동안 역사의 진실을 추적했는데 그 결과 한, 중, 일 3국의 역사가 100% 조작된 가짜라는 것을 밝혀서 책으로 이미 발표했다.
한, 중의 역사책 중에서 진실을 추적할 수 있는 것은 이병도 일행이 번역한 이씨조선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중국의 마지막 지리지인 “중국고금지명대사전” 두 권 뿐이다. 이 책은 正史로서 일제 때 역사를 어떻게 조작했는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책이기 때문이다.
한국사는 중국과 일본이 역사조작을 끝마치고 펴냈으므로 한국사의 모든 설명이 신만주와 한반도로 직접 기록되어야 하는데 모두 중국한문단어로 중국 땅만 기록되어 있다. 한반도 평양, 공주, 부여, 경주에 대한 전거가 하나도 없다. 따라서 이렇게 분명한 증거들이 나옴으로서 필자가 “한국사는 중국사를 쪼개서 그 중에 하나를 일본제국의 대륙사로 만든 것”이라고 평가한 것을 확실하게 증명해주고 있다.
한국사는 많은 문제로 갑론을박 할 필요 없이 동북아 역사의 중심무대인 “요동요서와 한4군” 그리고 “신만주 발생시기” 만 규명하면 간단명료하게 해결된다.
그래서 만주탄생에 관한 두 번째 요녕성을 검토해 본다.
★요녕성에 대한 별도기록은 없으므로 18주문제의 봉천성 조항에서 요녕성 치소인 심양이 거론되었으므로 심양을 검토한다.
1. 심수(瀋水)(중국고금지명대산전):
“요녕 심양현 남쪽 4리에 있다. --- 요, 금나라 심주다. 원나라 심양로인데 명나라 심양중위(瀋陽中衛)로서 지금의 심양현이다.(在遼寧瀋陽縣南四里. 俗名五里河. 源出縣東下流入渾河. 舊名小瀋河. 遼金瀋州. 元瀋陽路. 明瀋陽中衛. 今瀋陽縣. 竝以此水爲名) ”
※“지금의 심양현이다.”
“지금”이란 1911년 이후 중화민국 때이다. “지금의 심양현“은 이동경로에 따라 원래위치는 감숙성, 1차 이동은 하북성 북부 승덕, 2차 이동은 신만주 요동반도 심양이다. 이 3개소가 다 중화민국 때인데 기록으로는 1907년부터 이동한 것으로 나타난다. 소급기록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요, 금, 원, 명나라의 도성은 중국 감숙성이고 하북성에 온 일이 없는데 역사조작으로 하북성지역에 존재한 것으로 이동 조작되었다.
2. 심양현(瀋陽縣):
“진나라 이전에는 숙신 땅이다. 한, 진 이후 당나라까지는 읍루국소속이다. 후위 때는 발해 심주 땅이다. 요나라, 금나라는 그대로다. 원나라 심양로 소속인데 명나라가 심양위를 설치했다. 청나라가 요양(동경)에서 천도했다는 것인데 성경이라고 했다. 입관후에 봉천부윤과 성경장군수비군을 함께 두었다. 강희3년(1665)에 승덕현과 부곽을 설치했다. 광서 31년(1907년) 다시부윤을 두고 봉천부지부를 설치했다. 선통2년(1911년) 다시 승덕현을 두었고 부를 직할로 했다. 중화민국 초에 다시 부를 두었다. 승덕현을 그대로 두었다가 후에 지금이름(심양)으로 고치고 봉천성의 치소로 했다. 요심도도 그대로 두었다. 18년(1928년) 국민정부가 요심도를 폐지하고 봉천성을 요녕성으로 고쳤다. 심양은 그대로 두고 성의 치소로 삼았다. 그 땅은 심하 의 남쪽에 있다. 북요녕, 요해, 남만주, 안동 등 요녕의 모든 철로가 만나는 곳이다. 상업이 번성했다. 청나라 광서 29년(1906년) 중국과 미국간의 통상조약, 중국과 일본간의 통상항해조약을 정정하여 무역항을 개설했다. (秦以前肅愼氏地. 漢晉迄唐屬挹婁國. 後魏渤海瀋州地. 遼金仍之. 元屬瀋陽路. 明置瀋陽衛. 淸自遼陽遷都於此. 稱曰盛京. 入關後. 疊置奉天府尹盛京將軍守之. 康熙三年設承德縣. 附郭. 光緖三十一年裁府尹. 設奉天府知府. 宣統二年裁承德縣. 以府直轄. 民國初裁府. 仍置承德縣.尋改今名. 爲奉天省治. 遼瀋道亦駐之. 十八年國民政府廢道. 改奉天省爲遼寧省. 仍以瀋陽爲省治. 地在瀋河之陽. 北寧遼海南滿安遼諸鐵道交會於此. 商務甚盛. 淸光緖二十九年. 中米通商條約, 中日通商航海條約. 均訂定改作商埠.)”
(해설)
“숙신 땅, 읍루국 땅, 발해심주 땅“
(해설)에맥국이며 중심은 감숙성 경양(慶陽)이다.
★숙신, 읍루, 고조선, 북부여, 고구려, 당나라, 발해, 요나라, 고려,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가 나오면 그 중심위치가 요동요서 땅, 한4군 땅인 감숙성이란 것을 자동적으로 알아야 한다. 이것이 진실역사의 지식이다.
★발해심주는 감숙성 경양이다.
(해설)단국과 고조선의 東京. 서라벌의 東京. 고구려 慶州, 鳳凰山, 鳳凰城. 당태종의 주필산. 당나라 두 번 째 안동도호부(최초의 안동). 발해瀋州. 고려의 慶州. 원나라 심양로, 명나라 심양위. 청나라 鳳城縣, 승덕현, 성경, 심양현, 봉황청, 수암청. 중화민국 保定道, 鳳凰縣, 鳳城 등의 이름을 가진 곳이다.
(해설)이렇게 한 곳에서 나온 지명을 동쪽으로 옮겼을 때는 하북성 북경 남쪽에 보정도, 북쪽에 승덕현으로 천리나 떨어져 있고, 신만주 요녕성에 심양, 심양에서 700여리나 떨어진 동남쪽에 안동(단동)을 옮겨놓았고, 안동서북에 봉성현을 옮겨놓았다. 마치 씨앗뿌리 듯이 살포해놓은 것이다. 이런 정황을 전혀 모르면서 역사책만 가지고 역사이야기를 하는 것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인지를 알 수 있다.
중국역사조작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감숙성 환도산 동남의 고구려 국내성일대의 중요지명들이 위, 진, 연, 수, 당나라 차지한 땅이고, 요, 금, 원, 명, 청나라의 도성이 있는 서북으로 이동했다가 산서성과 하북성 북쪽에 살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안주, 평주, 조양, 상곡 등이 서북으로 이동했다가 동북지방으로 이동 조작되었는데 동이족의 중심을 자기들의 중심으로 만들기 위한 조작이다. 또 원래 서북쪽에 있었던 계, 정주, 선화, 노룡, 창려, 창평, 북평, 북경, 경조, 직예 --- 등이 모두다 하북성 북부로 이동되었다. 반대로 서북에 있던 횡산, 안시현(안시성) 등의 지명이 동남으로 이동되었는데 당나라가 고구려 깊숙이 쳐들어왔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조작기록으로 본다.
“강희3년에 승덕현과 부곽을 설치했다.”
(해설)강희3년(1665)에 성경을 감숙성승덕현에 설치하고 부곽을 다른 곳에 설치했다고 하여 이미 1665년경에 하북성 승덕자리에 부곽을 설치한 것으로 소급 기록되어 있다. 강희제는 4대 성종으로서 건국60여년의 국가초기에 사천성과 신강성쪽으로 뻗어간 청나라는 몽고-신강성-사천성의 굉대한 영토경영도 바쁜데 동쪽인 요하라는 큰 강을 건너 신만주로 진입할 여력이 없었다고 본다.
“광서 31년(1907년) 다시부윤을 두고 봉천부지부를 설치했다.”
(해설)원래 감숙성 봉천부 치소인 승덕에 부윤을 두고, 1907년에 하북성 북쪽 승덕지방에 봉천부 지부를 설치했다는 뜻이다. 즉 봉천부를 감숙성에서 하북성 북쪽으로 이동시키는 작업이다.
“선통2년(1911년) 다시 승덕현을 두었고 부를 직할로 했다.”
(해설)1911년에 승덕현 부곽이던 하북성 승덕현자리에 정식으로 승덕현을 옮기고 봉천부 직할로 했다는 뜻이다.
“중화민국 초에 다시 부를 두었다. 승덕현을 그대로 두었다가 후에 지금이름(심양)으로 고치고 봉천성의 치소로 했다.”
중화민국 초에 봉천성봉천부 요심도와 승덕현을 요동반도로 옮겼다고 이해된다. 다만 初가 아니라 1911년∼1915년 사이의 初期라고 추정된다. “지금”이란 1911년 이후 중화민국 때이다.
“18년(1928년) 국민정부가 요심도를 폐지하고 봉천성을 요녕성으로 고쳤다. ”
중화민국 18년은 1928년 장개석의 국민정부 1년인데 봉천성요심도를 폐지하고 봉천성을 요녕성으로 고쳤다는 뜻이다. 동북3성 설치시기가 중화민국 17년과 18년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길림성, 요녕성, 흑룍강성의 설치시기가 각기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필자는 최초설치시기를 17년으로 통일하여 쓰겠다.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은 중화민국 마지막 해인 1927년에 최초로 설치되었는데 당초에는 요녕성이 몽고국경까지 닿아있고, 길림성은 백두산 북쪽에 설치되었다.(그림참조)
이것을 구만주의 요녕성, 길림성의 위치와 비숫하게 현재의 동북 3성으로 다시 조정한 것이 1928년 장개석의 국민정부이다. 심양은 지금까지 요녕성의 치소다.
3. 중화민국 17년(1927년)의 행정구역 조정근거
★중화민국 17년(1927년)에 중국전체의 행정편제를 바꾸면서 동북 3성도 설치했다는 근거들을 보면 아래와 같다.
①청해성(靑海省):
“동쪽과 북쪽이 모두 감숙성이다.---17년(1927년)국민정부가 성으로 했다.(東與北皆甘肅.---十七年國民政府置爲省)
②열하성(熱河省):
“동쪽과 동북쪽의 경계는 봉천성이다. 중화민국 3년(1913년) 열하특별구역을 설치하고 승덕을 치소로 했다. 17년(1927년) 국민정부에서 열하성으로 했다.(東與東北界奉天. 民國三年置熱河特別區域. 治承德縣. ---十七年國民政府改爲熱河省.)
③찰합이성(察哈爾省):
“중화민국 3년(1913년)에 찰합이특별구역을 설치했다.(民國三年置察哈爾特別區域.” (그 이후 성으로 승격)
④북경(北京):
하북성 북경설치에 대한 직접기록은 없다. 그래서 대흥현을 검토한다.
④-1. 대흥현(大興縣):
“(周, 秦) 薊國, (燕)國都. (遼)析津, (金)大興今河北大興縣西南. (元)北平 (明)北平府治. 後順天府治. 淸因之. 民國初京兆尹治. 17년 京兆尹廢置北平市屬河北省)“
(해설)
이 문장은 청나라까지는 감숙성인데 “(金)大興.在今河北大興縣西南.”구절은 가짜이다. 주, 진, 연, 요, 금, 원, 명, 청나라는 모두 서쪽 나라였기 때문에 하북성에 온 일이 없다.
북경조 기록은 “명나라 태조가 하남성 商丘를 남경으로 삼아 도읍하고, 開封을 북경으로 했다. 3대성조 때 북경(개봉)을 북평으로 하고 천도했는데 상구를 남경으로 했다. 그런데 세상에서 그렇게 말하니 이를 따른다. 지금까지 고치지 않았다(世俗相沿 至今未改)” 고 하여 하북성 북경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명나라의 북경은 감숙성 창려이며 압록강 이동은 이씨조선인데 이씨조선을 한반도로 이동시키고 중국전체를 명, 청나라 땅으로 만든 조작기록이다.
“중화민국 초(1911년) 경조윤 치소다. 중화민국 17년(1927년) 경조윤을 폐하고 북평시로 했는데 하북성 소속이다.(民國初京兆尹治. 17년 京兆尹廢置北平市屬河北省”
중화민국 초에 감숙성 북경을 경조윤 치소로 썼다가 중화민국 기간에 하북성 북경자리로 옮겼다가 1927년에 북평시로 고쳤닥. 그러므로 1927년까지 하북성에서 북경이란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아마도 1927년 후반기인 장개석의 국민정부에서 북경이라고 했을 수 있다. 따라서 청나라 멸망이후에 새로 설치한 하북성 북경은 명, 청의 도읍이 될 수 없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이씨조선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 경도상편”에 명나라 동월이 쓴 “조선부(朝鮮賦)”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는데 한반도 압록강에서 평양을 거쳐 한양으로 오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일제 때 명나라 북경을 하북성 북경으로, 요동을 신만주로, 이씨조선한양을 한반도로 이동 조작한 가짜 책들인데 하북성 북경을 명, 청의 도읍으로 알고 있고, 한반도를 이씨조선으로 알고 있는 한국인들의 역사지식이 얼마나 황당한지를 알 수 있다. 이씨조선은 동서4첨천여리, 남북 6천여리의 제국이었다. 한반도는 이씨조선 8도중에서 1개 道에 불과하므로 8분의 1 크기일 뿐이다. 이렇게 한국인들은 도대체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일제가 조작한 엉터리 기록들로 세뇌되어 있다.
--------------- 주장역사하지 말고 학문역사하자 ! ----------------
2018. 11. 19
한국상고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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