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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주문제 신만주 탄생과 한국사
  • 작성자 : hanbark33
  • 작성일 : 2018.11.27
  • 조회수 : 2399

제20주문제, 신만주 탄생과 한국사

길림성은 내용이 길어서 간단하게 요점만 쓰겠다. 해석은 진짜기록과 필요부분인 밑줄 친 부분만 하겠다.

(1). 길림성(吉林省.)
(원문)
『1. 신만주기록:
(在北京東北二千三百里. 東以烏蘇里江. 宋阿察河. 興凱湖. 大瑚布圖河界俄屬東海濱省. 東南以圖們江界日領朝鮮. 南與西界奉天成省. 北以松花江界黑龍江省. 又以黑龍江之一部界俄屬阿穆爾省. 廣二千四百里. 長千五百里..
2. 진짜기록:
古肅愼地. 漢晉爲挹婁地. 後魏勿吉, 隋靺鞨, 唐渤海地, 宋爲契丹, 女眞地. 元置軍民萬戶府伍. 明初屬建州毛憐等衛. 其後滿洲崛興於此. 順治十年設寧古塔昻邦章京. 康熙元年改鎭守寧古塔等處將軍. 十五年將軍移駐吉林. 留副都統鎭守寧古塔. 其後增設副都統. 防城四. 曰琿春. 曰三姓, 曰阿勒楚喀, 曰伯都訥.
3. 신만주기록:
光緖以後. 始陸續增設府廳州. (擁正間增於吉林寧古塔. 伯都訥.等處設立州縣. 至乾隆間皆廢)』迄三十年. 栽將軍副都統等官. 改設吉林巡撫. 復分設各道. 行省規模於焉大備. 領道四. 縣三十九. 設治局二. 治吉林縣.
4. 신만주기록: 해석생략
地勢 長白山脈及其相續之完達山脈自西南綿互於東北. 爲一大高原. 中多森林. 惟松花江下遊. 兩岸平疇沃衍. 宜牧宜耕. 中東鐵路自黑龍江渝松花江入境. 東達俄境之海參崴. 南達長春. 以接於南滿鐵路. 自省治西達長春. 東南達敦化者. 有吉長吉敦兩鐵路. 氣候純係大陸性. 動物多虎豹熊鹿. 松花江之鰱魚.烏蘇里江之鰉魚甚饒. 農産略同遼寧. 森林尤多. 金鑛亦旺. 惜多未開採)“
★중국사기의 기록을 읽고 가짜 중에서 즉시 진짜구절을 골라내는 것과 진짜기록에서 가짜구절을 즉시 골라내는 것은 100년을 역사공부한 사람도 불가능하고, 역사 전반을 알아야 하며, 진실추구를 10년 이상 한 사람만이 가능하다.

(해석)
2. 진짜 기록:
(해석)옛 숙신 땅이다. 한, 진때는 읍루 땅이다. 후위 때는 물길이다. 당나라 때는 발해 땅이다. 송나라 때는 거란과 여진 땅이다. 원나라가 군민만호부 5개를 설치했다. 명나라 초에는 건주 모련 등 위의 소속이다. 그 후 만주족이 흥기했다. 청나라 순치 10년에 녕고탑을 건설하고 나라를 받드는 문장을 높혀 설치했다. 강희원년에 수비진지를 고쳐 녕고탑 등 여러 곳에 장군을 설치했다. 15년에 장군을 길림으로 이주시키고 부도통을 두어 녕고탑을 수비했다. 그 후 부도통을 증설했는데 4개의 城인데 혼춘, 삼성, 아륵초객, 백도눌이다.※순치: 1644-1661년, 강희: 1662-1722년. 15년: 1677년. 옹정: 1723-1735년.
  광서: 1875-1908년

(해설)
숙신, 읍루, 물길, 거란, 명나라, 청나라가 나오면 무조건 그 역사중심이 중국 감숙성인데 일제 때 신만주로 이동 조작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각국의 중심위치나 도읍지가 감숙성이란 것을 알 때까지 공부한 사람이니 상당한 공부실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면 가짜 역사지식으로 명예를 유지하는 가짜학자다.
“청나라 순치 10년에 녕고탑을 건설”, “강희원년에 여러 곳에 장군을 설치”, “15년에 장군을 길림으로 이주시키고 부도통을 두어 녕고탑을 수비했다. 그 후 부도통을 증설했는데 4개의 城인데 혼춘, 삼성, 아륵초객, 백도눌이다.”
※청나라 순치(3대세조) 때 감숙성 창려(명나라 북경)로 천도하고 10년(1654년)에 수도방위진지인 녕고탑을 건설했다는 뜻이다. 4대 강희원년(1662년)에 여러 수도방위소(녕고탑)에 장군들을 배치했다는 뜻이다. 강희15년(1677년)에 청나라 북쪽 땅에 장군을 이동시키고 녕고탑은 부도통들이 관할하게 했다는 뜻이다. 그 후 훈춘, 삼성, 아륵초객, 백도눌 등 4개의 성(城)에 부도통을 증설하여 수도방위를 강화했다는 뜻이다. 신만주 탄생시기를 모르는 한국인들은 모두 신만주를 한국사의 무대로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 4개성의 위치를 검토해보자. 
1. “혼춘(琿春)”: 기록없음.
※감숙성 북쪽경계 산해관동남쪽 두만강 서북쪽의 중위(中威)에 예맥의 상춘을 장춘으로 고쳐서 이동시켰는데 후에 태녕으로 고치고 장춘은 신만주 길림성 서쪽에 옮겼으며,태녕을 훈춘으로 고쳤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훈춘은 다시 두만강과 함께 백두산 북쪽으로 이동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중위(中威)로 바꾸어 놓았다.
2. “삼성(三姓)”:
※감숙성 중위의 동쪽, 압록강 하류인 中寧인데 토박이 발음으로 의란객라성((依蘭喀羅城)이다. 3성씨가 청나라에 복속하고 건국을 도와서 이름이 된 것이다.
3. “아륵초객(阿勒楚喀,)”:
※“길림빈주부소속 아성현(阿城縣) 치소이다. 금나라 상경회녕부인데 중동철로가 지나간다. 토속인은 白城이라고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백성은 지금의 감숙성靖遠西쪽 白銀으로 추정된다.
“직예성” 조에서 “금나라 정원원년 연경으로 천도했는데 고쳐서 中都路 라고 했다. 또 분할하여 대명부로를 설치했다. 원나라는 대도로를 설치했다. --(金貞元元年遷都燕京改爲中都路, 又分置 大名府路. 元初置大都路 -.-)”고 하여 前燕의 도성 연경 즉 감숙성 창려가 금나라 도성인데 중도로, 대명부로, 대도로 등의 이름으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원나라 대도로가 하북성 북경이 아니라 감숙성 북경이다. 하북성은 중화민국 때 설치된 새로운 성(省)이다.
그런데 발해, 요나라, 금나라 역사무대를 고조선, 봉천성, 길림성, 요녕성의 1차 이동위치인 현재 동북의 열하성-찰합이성 자리에 이동조작하고(지도참고), 금나라 白城을 현재 신만주 길림성 서북 끝에 옮겨서 그곳이 금나라의 발생지로 조작 기록되어 있다.
이 동북의 역사를 일제가 다시 신만주로 몽땅 이동 조작하여 일본제국의 역사로 만들었다. 그래서 지금 “동북3성”이라고 하는 것이다. 한국의 역사가 아니다.
4. “백도눌(伯都訥)”:
※길림부여현(扶餘縣)으로서 감숙성 해성동북 70리 압록강변이며 고구려 박작성, 서안평지역이다.





3. 신만주기록: 
(해석)광서이후(1908년이후) 대륙에 접속된 땅에 부, 청, 주를 증설하기 시작했다. (옹정간에 길림녕고탑을 증설했다. 백도눌 등 여러 곳에 주와 현을 설치했다. 건륭간에 이르러 모두 폐했다.). 30년(1906년)에 이르러 다시 장군과 부도통 등의 관리를 두고 길림순무를 설치하고 다시 나누어 각 도를 설치했는데 행성규모를 대비하여 도4개, 현39개, 국2개를 설치했으며 치소는 길림현이다.
(해설)
1908년 광서제 이후에 중국대륙에 접속된 땅에 부, 청, 주를 증설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옹정간(1723년∼1735년)에 설치한 것들은 건륭간(1736-1795년)에 모두 폐했다.“는 구절을 넣어 신만주 연고권을 엣 날부터 가지고 있었다고 조작한 것으로 추정한다.
“옹정간(1723년∼1735년)에 설치한 것들은 건륭간(1736-1795년)에 모두 폐했다.“는데 약 180년이 진난 1906년에 ”앞으로 성(省)들을 설치하기 위해 도4개, 현39개, 국2개를 설치했다“고 하였고 2년 후인 1908년에 다시 증설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길림성외에 요녕성을 다시설치하려고 준비하는 것이다.


★청나라는 고조선, 고구려, 발해(926년 멸망) 땅 일부를 차지하고 건국했는데 청나라가 신만주에 1700년대에 처음 들어 온 것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전의 역사인 고조선, 고구려, 발해는 신만주에 존재할 수 없다.

 

(2). 길림현(吉林縣) :
(원문)(唐渤海涑州地. 遼金爲寧江州旁境. 明爲烏拉衛土門河衛地. 後屬扈倫族之烏拉部. 淸康熙間移寧古塔將軍於此. 雍正間置永吉州. 乾隆間改設理事同知. 光緖間升爲吉林府. 爲吉林省治. 民國改爲縣. 今又改爲永吉縣. 土名船廠. 地當長白山西北. 南瀕松花江. 爲吉長吉敦兩鐵路之起點. 沿江貨物以此爲集散地. 光緖三十一年中日協約訂正改作商埠)“

1. 원래위치 기록:
(해석)“당나라 때 발해속주 땅이다. 요나라, 금나라의 녕강주와 경계지역이다. 명나라 오랍위와 토문하위의 땅이다. 후에 호륜족(읍륜족)오랍부 소속이다. 청나라 강희 간에 녕고탑장군으로 옮겼다.”
옹정 간에 영길주를 설치했다. 건륭 간에 이사동지를 다시 설치했다.
광서 간에 길림부로 승격하고 길림성 치소로 했다. 중화민국은 현으로 고쳤다. “
 
(해설)“속주지(涑州地)“
”요녕부, 요녕성일 때 심주의 발음이 와전된 것이다(遼寧時深州之訛)"
속주, 속말은 예맥족과 그 터전을 말한다. 에맥족의 중심은 감숙성 고구려의 경주, 발해의 심주, 청나라 승덕, 심양, 중화민국의 경양이다. 
길림현이 처음에는 감숙성 평량(고구려 평양) 또는 경천이었다가 서북의 녕고탑으로 이동했다는 뜻이다.

“광서 간에 길림부로 승격하고 길림성 치소로 했다. 중화민국은 현으로 고쳤다. ”
(해설)광서간에 신만주로 옮긴 후 길림부로 했다가 후에 길림성을 설치했는데 치소를 중화민국 때 길림현으로 했다는 뜻이다.


2. 신만주 길림현
(해석)“지금은 또 영길현으로 고쳤다. 토착명이 선창이다. 당시에는 장백산 서북에 있었는데 남쪽은 송화강에 임했다. 길장철로와 길돈철로의 출발점이다. 강을 따라 화물의 집산지로 되어있다. 광서31년(1907년) 중일협약을 고쳐서 무역항으로 고쳤다.”
(해설)이 문장은 최초가 아니라 두 번째인 현재의 길림현을 설명했다.


★결론:
중국기록에는 장백산인데 한국은 백두산이라고 한다.
한반도 북쪽 만주의 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은 1900년 이후에 탄생했고, 중요한 역사지명인 심양, 환인, 집안, 한반도 평양도 일제 때 중국의 지명을 이동 조작한 것이므로 환단고기, 산국사기의 역사무대가 아니다.
                                                       2018. 11. 26.
                                                   한국상고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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