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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주문제 신라역사(2)
  • 작성자 : hanbark33
  • 작성일 : 2019.01.28
  • 조회수 : 1170

제27주문제 신라역사(2)

1). 신라기록 소개

3. 구당서
『“신라국은 본래 변한의 묘족 후에다. 그 나라는 한나라 때 낙랑 땅에 있었다. 동쪽과 남쪽은 바다이고, 서쪽은 백제와 접했으며 북쪽은 고구려와 인접했다. 동서 천리, 남북 2천리다. 성읍과 촌락이 있는데 왕이 있는 곳은 금성이다.--- 그 왕 김진평은 수나라 문제 때 ”상개부낙랑군공신라왕“을 제수받았다. 무덕4년에 사신을 보내 조공했다. --- 풍속, 형법, 의복은 고구려, 백제와 비슷하다. 조복은 백색을 숭상했다. 나라에는 김씨와 박씨가 많았는데 다른 성씨와는 혼인하지 않았다. 정월초하루응 경사날로 정하고 잔치를 베풀었다. 매년 초하루에 달신을 경배했다. --- 부인들은 머리털로 머리를 둘러감싸고, 비단과 구슬로 장식했으며, 머리털이 길고 아름다웠다.---”(新羅國本弁韓之苗裔也. 其國在漢時樂浪之地. 東及南方俱限大海. 西接百濟. 北隣高麗. 東西千里. 南北二千里. 有城邑村落. 王之所居曰金城. ---其王金眞平隋文帝時授上開府樂浪郡公新羅王.  武德四年遣使朝貢. ---其風俗, 刑法, 衣服與高麗百濟略同. 以朝服尙白. 國人多金, 朴兩姓. 異姓不爲婚. 重元日. 相慶賀燕饗.  每以其日拜月神---婦人髮繞頭. 以綵及珠爲飾. 髮甚長美.---』
(해설)
①“신라국은 본래 변한의 묘족 후에다.”
국호가 “신라”로 굳어져서 일반적으로 신라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삼국시대의 신라란 없었다고 추정된다. 사로, 서나벌, 계림 등으로 언급했어야 적정하다.
감숙성의 낙랑 땅은 서나벌 땅이고, 사로는 서나벌 서쪽에 붙어있는 나라다.
낙랑서나벌은 단군의 동이족과 색부루조선의 흉노족이 어우러져 사는 땅이다. 사로는 전통적으로 치우의 묘족 땅이며 사로의 인구 중 가장 많은 중심민족이 묘족이다.
그러므로 한반도 경상도를 신라로 주장한다면 조상을 묘족으로 바꾸는 환부역조의 역적들이 된다는 것도 모른 채 경주가 신라의 서울이라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는 노릇이다.

②“한나라 때 낙랑 땅”
한나라 최초의 낙랑은 감숙성 서황하 동부 전체이다. 후에 현토군을 낙랑 땅 북부로 이동하면서 여러 개로 쪼개진 후의 낙랑은 감숙성 환도산 남쪽 경수(涇水)∼위수(渭水) 사이다. 단군 때는 번한(番韓) 땅, 색부루조선 때는 번조선(番朝鮮) 땅, 기자조선 땅, 위만조선 땅, 한나라 낙랑군 땅, 고구려 땅이다.
①②번은 사로와 서나벌의 원래위치를 썼다. 그런데 다음③번의 위치설명은 중국 동부로 이동 조작한 것을 쓴 것이다.

③“동쪽과 남쪽은 바다이고, 서쪽은 백제와 접했으며 북쪽은 고구려와 인접했다. 동서 천리, 남북 2천리다.”
이 문장은 한반도라고 인식시키기 위한 문장이다.
원래위치인 감숙성에서는 사로의 남쪽에 가락국이 있고 가락국 동쪽에 대방백제가 있으므로 사로의 동남쪽이며, 계림일 때는 남쪽이라고도 할 수 있는 위치다.
사로에서는 고구려가 동북쪽이라고 해야 적정하며, 계림일 때는 북쪽에 고구려와 접해 있다. 사로가 남쪽의 가락국을 점령했으므로 동서천리, 남북 1800리 또는 2천리라고 할 수 있다.
이 역사무대를 중국 동쪽
하남성-인휘성지역으로 옮긴 것이다.  2천년 전에는 하남성, 안휘성 동쪽 경계가 바다와 호수였으므로 동쪽과 남쪽(양자강)이 바다라고 한 것이다. 일제가 여기의 지리적 상황을 한반도로 이동 조작한 것이 현재의 경상도 신라이다. 그런데 신라 땅에는 경주가 없고 금성과 월성이 도성이다. 1500년전 이전의 금성과 월성은 섬으로 되어있는 강소성 지금의 남경일대의 지역에 있으므로 이것 또한 맞지 않다. 하남성- 안휘성으로 이동조작했을 때도 남북 1800리나 2천 여리 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신라는 한반도로 오기 이전에 벌써 이동 조작된 가짜역사다. 또 한반도 경상도 신라의 도성이 경주란 것은 조작된 가짜다.
동쪽으로 이동 조작된 신라에서는 당연히 서쪽인 섬서성에 비류백제이고 북쪽보다는 서북쪽에 고구려와 인접했다. 이런 지리적 상황을 그대로 한반도로 이동 조작한 것인데 부산에서 평양까지가 신라란 뜻이 되니 한반도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또 한반도 한4군 설에서는 평양지역이 낙랑군이라고 했으므로 신라가 평양지역에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일이 없으므로 엉터리란 것을 알 수 있다.

④김진평은 수나라 문제 때 ”상개부낙랑군공신라왕“을 제수받았다.
26대 진평왕 때도 사로는 감숙성의 낙랑 땅에 있었다는 증거이다.
그런데 낙랑군을 1차로 하남성 동북부로 이동조 작했다가 다시 2차로 하북성 북경이남으로 이동 조작했다가, 또다시 한반도 평양지역으로 3차이동 조작하여 고구려역사를 이동 조작한 것이다. 그래서 낙랑군은 4개소에 있다.

⑤“풍속, 형법, 의복은 고구려, 백제와 비슷하다.”
과일, 물산 등 토산물은 묘족의 터전이므로 중국 즉 토곡혼, 수나라, 당나라와 비슷하지만, 사로 사람들은 동이족과 서이족이 섞여 있으나 주인이 동이족이므로 풍속, 의복 등은 고구려, 백제와 비숫하다는 기록은 믿을 만 하다.

⑥“매년 초하루에 달신을 경배했다. --- 부인들은 머리털로 머리를 둘러감싸고,”
달신을 경배하고, 부인들이 머리털로 머리를 감싸둘렀다는 특이한 문화는 지난주에 신라가 중국 동부의 역사도 될 수 없고 더구나 한반도역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했다


    

⑦당나라가 신라왕에게 내린 봉작
『26대 진평왕: 주국. 樂浪郡王. 신라왕
 27대 선덕여왕: 주국. 樂浪郡王. 신라왕
 28대 진덕여와: 주국. 樂浪郡王. 신라왕
 29대 무열왕(金春秋): 개부의동삼사. 樂浪郡王. 신라왕
 30대 문무왕(金法敏): 개부의동삼사. 상주국. 樂浪郡王. 신라왕.
   당나라가 국호를 계림주도독부로 고치고 문무왕을 鷄林州都督府鷄林州都督     으로 봉했다.
32대 효소왕(金理洪): 보국대장군행표도위대장군 鷄林州都督 신라왕
37대 선덕여왕: 검교태위 도독鷄林州刺史 녕해군사 신라왕
41대 진덕여왕: 개부의동삼사. 지절대도독鷄林州제군사. 녕해군사. 상주국. 신라                 왕
42대 흥덕왕: 개부의동삼사. 검교태위.사지절. 도독鷄林州제군사. 충녕해군사.                신라왕』
(해설)
26대 진평왕(579-632년)부터 30대 문무왕(654-681년) 까지는 “낙랑군왕“이었다가 문무왕 때 신라의 국호를 ”계림”으로 바꾸고 계림주도독으로 했다.
32대 효소왕부터 42대 흥덕왕까지 즉 692년부터 836년까지는 계림주도독이다.
★낙랑군이 고구려에 점령되어 고구려 땅이 되었고, 낙랑군과 대방군 일부사람들이 사로에 귀부하여 합병헀으므로 이때부터 사로의 국호는 “鷄林”이다. 그래서 문무왕 때부터 계림이란 국호가 나타난다.
그런데 낙랑군, 사로, 계림 땅은 감숙성이며 서쪽 청해성의 수나라, 당나라와 서황하를 사이에 두고 붙어있는 땅이다. 그러므로 신라가 중국동부인 하남성과 안휘성 땅에 있었다고 한 것은 조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4. 신당서
※신당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를 한반도나라로 조작하기 위해 조작된 책이다. 그래서 당나라가 책봉한 작위기록이 “法敏襲王以其國爲鷄林州大都督府授法敏都督”외에는 구체기록이 없다. 중국의 당나라가 머나먼 바다건너 한반도의 신라왕에게 작위를 주었다고 하면 의혹스러우므로 삭제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는 변한묘족의 후에다. 한나라 낙랑 땅에 있었다. 횡천리, 종삼천리이다. 동쪽으로는 멀리 키큰 사람들이 있고, 동남쪽은 일본이다. 서쪽에 백제, 북쪽은 고구려다. 왕은 금성에 사는데 둘레가 8리이고 위병 3000명이 지킨다. 성을 침모라라고 한다. 조복은 힌색을 숭상하고, 산신에 제사지내는 것을 좋아한다.--- 왕의 성씨는 김이고, 귀인의 성씨는 박이다. 백성은 성씨가 없고 이름만 있다. --- 정월 초하루를 경축일로 하는데 그날은 달신을 경배하는 날이다. ---아름다운 머리는 머리통을 둘러싸고, 구슬과 비단으로 장식한다. ---.” (新羅, 弁韓苗裔也. 居漢樂浪地, 橫千里, 縱三千里, 東拒長人, 東南日本, 西百濟, 北高麗, 以王居金城, 環八里所. 衛兵三千人, 謂城爲侵牟羅. 朝服尙白, 好祠山神. --- 王姓金, 貴人姓朴, 民無氏有名. ---元日相慶, 是曰拜曰月神. --率美髮以繞首, 以珠綵飾.---)』
(해설)
①“횡1000리, 종3000리이다.
“동서 1000리, 남북 3000리“는 원래의 위치인 감숙성 사로-가락, 남쪽의 안남신라, 한반도 신라 어느 곳도 아니고, 오직 산동성남부-하남성-안휘성-절강성북부까지의 기록이다. 즉 이씨조선의 경상도 땅 전체이다.
이 땅은 중국이 제노오월(濟魯吳越)의 땅으로 만들었으니 한반도 경상도에 신라가 있다면 한반도에 신라 이전에 제노오월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왜 없는가?

②동쪽으로는 멀리 키큰 사라들이 있고, 동남쪽은 일본이다. 서쪽에 백제, 북쪽은 고구려다. “
신당서는 이 구절을 확정하기위해 조작한 사서다. 바로 신라가 한반도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남북이 3000리이니 경상도 신라가 아니다.

③정월 초하룻날 달신을 경배하고, 머리를 감싼다는 것은 앞에서 이미 해석했다.

5. 구오대사(舊五代史)
『"신라는 풍속에 99절을 경축일로 했는데 그 때마다 달을 경배하는 날이며 달을 신으로 받들었다. 부인은 머리를 감싸둘렀고 비단과 구슬로 장식했는데 머리털이 많고 아름다웠다." (新羅 其國俗重九日相慶賀. 每以時月拜日 月之神. 婦人繞髮頭. 用綵及珠爲飾. 髮甚鬒美.)』
①“99절을 경축일로”
모든 기록은 重元日 즉 1월1일을 경축일로 했는데 여기는 99절로 되어있다.

6. 신오대사(新五代史)
『“신라는 변한의 후예다. 대족은 김씨, 박씨다. 당고조 때 김진평이 낙락군왕으로 봉해졌다. 동광원년 신라국왕 김박영이 사신을 보내 조공했다. 장흥4년(후당933년) 권지국사 김부(경순왕)가 사신을 보냈다. 사록을 모두 잃어버렸는데 진나라(후진: 936-946년) 이후에 지금까지 복구되지 못했다.”(新羅弁韓之遺種也. 其大族曰金氏, 朴氏. 自唐高祖時封金眞爲樂浪郡王. 同光元年 新羅國王金朴英遣使者來朝貢. 長興四年, 權知國事金溥遣使來. 史皆失紀. 自晉已後不復至.)』
(해설)
“사록을 모두 잃어버렸는데 진나라(후진: 936-946년) 이후에 지금까지 복구되지 못했다.”
중국에서는 역사기록을 모조리 잃어버렸다고 했는데 삼국사기 신라본기가 한반도에 있으니 한국은 중국의 역사기록을 훔쳐다가 우리역사라고 주장하는 사기꾼의 나라가 되었다. 독자여러분, 어떻게 생각합니까?
                                          2019. 1. 28
                                          한국상고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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