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주문제 신라역사(4) 新羅史에 대한 유우찬의 견해 :
1). 서라벌 소고(小考)
서라벌은 우리말 또는 산스크리트어로 “설벌(薛伐)”이다. 설벌은 한문으로 설국(薛國)이다. 주나라가 은나라를 멸망시키니 은나라 황족인 기자는 주나라 신하될 마음이 없어서 3년 뒤(BC.1119년) 조선으로 옮겨갔다. 조선은 기자를 압록강서쪽 수미산 지역에 살도록 했는데 40여세를 지나 북부여 시조 해모수(BC.239년)가 서란(舒蘭: 평양)에 성을 건설하고 북부여를 건국할 때 수유후 기비(箕丕)가 협력하여 1등공신이 되었다.
고조선 말기인 BC.341년 주나라 제후국인 연나라 배도가 평양일대를 공격하니 수유(須臾)사람 기후(箕詡)가 자식과 제자들 5000명을 이끌고 싸움을 도와 공을 세웠다. 18년 후인 BC.323년 계속되는 연나라 공격으로 나라가 어려울 때 수유의 읍차(城의 부성주, 소국의 부왕)였던 기후가 병력을 장악하여 평양에 입성한 후 번조선왕을 자칭하면서 윤허를 요청하니 이를 윤허하고 연나라에 대비하도록 했다. 해모수가 평양에서 6-7년간 머무르다가 조선의 공화정을 회유하여 도읍인 장당경(감숙성 무위)을 접수하여 천도하였으므로 평양과 북부여 도읍지는 2천 여리나 떨어져서 도읍지에 사람을 보내 윤허를 구한 것이다.
평양은 단군의 단국 때는 번한의 도읍지인 번한성(番韓城)이고, 색부루조선 때는 번조선의 도읍인데 역시 번한성(番韓城)이라고 했다.
서라벌에 대한 연원은 두 가지로 추정되는데,
1. 기자(箕子)란 옛날부터 전해오던 5작위 즉 백작(伯爵), 공작(公爵), 후작(侯爵), 남작(男爵), 자작(子爵) 중에서 자작(子爵)을 말하며 이름이 아니고 봉작이다. 그러므로 기자의 실제 성씨는 설씨(薛氏)로 추정된다. 따라서 기자 즉 설씨((薛氏))가 평양의 주인이 되었으므로 단국의 번한 땅, 조선의 번조선 땅, 기자조선 땅, 위만조선 땅, 한나라 낙랑군 땅은 일명 설씨나라인 설벌(薛伐: 薛國)이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대체로 받침있는 말 “설”의 발음을 못하므로 “서라, 서로” 등으로 분리된 발음으로 하여 “서라벌”이 된 것이다. 이것은 또 발음이 변했던가 또는 의도적인 변조를 했던가 하여 “사로, 사라” 등으로 된 것이다. 역사조작을 위해 기자의 원래위치를 숨기고 이동조작하기 위해 감숙성의 기(箕)를 祁, 祈, 冀 등 많은 글자로 변조하여 산서성과 하북성으로 이동 조작했다.
감숙성 서라벌의 도읍인 평양은 원효대사와 그 아들 설총의 고향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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