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주문제 고려의 위치와 광역(8)
현재 한국에 있는 삼국사기와 이조실록은 중국사기인데 조선사 편수회에서 한국사로 조작하고, 환단고기와 고려사기는 중국사기인데 일본으로 가져가서 한반도역사로 개조한 다음에 일본동경에서 발행한 책이므로 여러 말 할 필요조차도 없는데 한국인들은 우리역사라고 한다. 그래서 진실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12. “고려 6성”(중국감숙성: 제38주문제 그림참조))
『함평 6년(송나라 眞宗, 1003년-- 고려7대 목종6년),
고려7대 목종(弟誦)이 호부시랑 이선길을 파견했는데 (거란에)와서 조정에 감사를 드렸다. 또 “후진 땅을 나누어 연과 계를 거란소속으로 했다. 그래서 길이 현토에 다다르게 되어 곧바로 침입했으나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 (고려)왕은 군사들을 경계상에 주둔시켜 견제했다.”고 말했다. 조서에 좋은 방안이 제시되어 있다. 목종(誦)이 죽으니 8대현종(弟詢)이 권지국사가 되었다. 앞서 거란이 이미 고려를 기습했다. 그래서 6성을 쌓았는데 흥주, 철주, 통주, 용주, 귀주, 곽주에 성들을 국경에 두었다. 거란이 두성을 차지하고 사신을 보내 6성을 달라고 했다. 현종이 불허하니 병사를 일으켜 성 아래에 주둔하더니 궁실을 분탕질하고 빠르게 주민들을 겁박했다. 현종은 거처를 라주로 옮기고 피난했다. 거란병이 물러간 후에 사신을 파견하여 화친을 청했다. 거란은 완고하게 6성을 내놓으라고 했다. 그래서 병사를 조정하여 6성을 수비했다.
대중상부 3년(宋, 眞宗, 1011년---고려8대 현종 2년),
(거란이) 대거 침입했다. 현종은 여진과 함께 공격하여 거란병을 죽이니 거란은 기진맥진했다. 현종은 또 압록강 동쪽에 성을 쌓았는데 래원성과 마주보이는 곳이다. 강을 건너기 위해 다리를 놓고 잠수병으로 신성을 견고히 지켰다.(咸平6년 誦遣使戶部郞中李宣吉來朝謝恩. 且言 “晉割燕薊以屬契丹. 遂有路趣玄菟. 屢來攻伐. 求取不已. 乞王師屯境上爲牽制.” 詔書優答之. 誦卒. 弟詢權知國事. 先是. 契丹旣襲高麗. 遂築六城曰 興州, 鐵州, 通州, 龍州, 龜州, 郭州 于境上. 契丹以爲貳己. 遣使來求六城. 詢不許. 遂擧兵. 奄至城下. 焚蕩宮室. 剽劫居人. 詢徙居昇羅州以避之. 兵退. 乃遣使請和. 契丹堅以六城爲辭. 自是調兵守六城.
大中詳府三年. 大擧來伐. 詢與女眞設奇격擊. 殺契丹 殆盡. 詢又于鴨綠江東築城. 與來遠城相望. 跨江爲橋. 潛兵以固新城.--- )』(宋史卷四百八十七. 高麗)
해설 :
고려서북쪽 국경지역의 6성지역 일대에 유주, 계주, 해주 등이 다 있는데 현재의 중국 감숙성 븍부이다. 6성은 고려의 서북쪽이고 압록강의 서쪽이다. 백제의 사비성, 이씨조선의 진해, 울진, 晉州城,등이 모두 송나라 땅 안에 있다. 이렇게 역사는 역사적조건(사실기록), 지리적조건, 주변환경조건 의 3대원칙에 맞아야 진짜다, 따라서 송나라는 청해성의 당나라 후신인데 동부로 이동조작된 것이니 가짜이다.
①燕과 薊
“연과 계를 거란소속으로 했다. 그래서 길이 현토에 다다르게 되어 곧바로 침입했으나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
“연(燕)“은 연주(燕州: 燕京)로서 전연의 도읍인 창려(북경)이고, 계(薊)는 창려 서쪽에 붙어있는 계주다. 해주 북쪽에 있는 강태자하 이북은 거란 땅이다. 북쪽에서 연과 계를 거쳐 현토까지 길을 냈는데 그 길로 거란이 침입한 것이다. 이에 고려가 국경지역에 6성을 건축했는데 후에까지 6성을 두고 서로 다투게 된 것이다.
연과 계의 이북에서 두만강까지는 고구려가 정벌하여 고구려 땅인데 후에 연나라에게 빼앗겼고, 수나라 땅이 되었다가 당나라 땅이 되었다가 발해가 점령했는데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키고 차지한 땅이다. 또 후에는 금나라가 차지했다가 원, 명, 청나라 때는 도성지역이다. 명-청나라 때는 압록수∼ 패수를 서쪽은 모두 명, 청의 땅이 되었다. 그래서 연과 계는 전통적으로 중국(주로 서이족나라)의 땅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38주문제 중에서 “유주(幽州), 게주(薊州)는 중국의 강토로서 진, 한이 다 걱정거리였다“고 한 것이다. 이 유주, 계주를 하북성 북경지역으로 옮겨서 고구려와 고려가 한반도에 있는 나라로 조작했는데 이것이 현재의 한국사다.
고려는 고구려의 땅을 승계 했는데 서북쪽에는 거란이, 북쪽에는 여진(금)이 있다. 그러므로 6성은 고려의 서북쪽인 거란과의 접경지역 감숙성 북부지역에 있으면 정확하다.
흥주(興州):
요나라 때 흥주중흥군으로 철령현 남쪽 60리인데 최초의 철령은 치우의 도성지역인 감숙성 노룡지역이다.
최초의 철주(鐵州):
치우가 철을 캐서 무기를 만들었다는 청구, 청산지역으로서 치우도성인 감숙성 노룡지역이다. 후세에는 동남쪽인 경양의 북쪽으로 약 500리 이동되었다. 이곳이 개성북쪽에 있는 고려의 철원이다.
북통주(通州):
한나라 로현(潞縣)으로 유주(幽州: 감숙성 노룡) 동쪽 60리에 있다. 수, 당나라 로현의 치소였는데 거란 땅이고, 지금의 京兆通縣 동쪽8리에 있다. 명-청나라 때 순천부 소속이니 역시 감숙성 창려(북경, 경조) 서쪽지역이고, 계주남쪽으로 추정된다. 993년 거란의 1차침입 때 소손녕의 겨란군에게 고려의 강조장군이 대패하고 죽은 곳이다. 거란군이 개경까지 진군하니 왕이 동쪽으롤 300여리 되는 라주(羅州:경주, 개봉))로 피난갔다.(전라남도 라주가 아니다.)
남통주는 고구려 국내성지역인 開原지역이다.
용주(龍州): 남통주인 “開原縣” 지역으로 기록되어있으나 黃龍, 龍城 등의 이름이 있는 국경지역인 북통주지역 즉 창려(북경)근처다.
귀주(龜州):
강감찬의 대첩지역인데 고려를 한반도역사로 둔갑시켰기 때문에 근거기록을 말살했다. 감숙성 환도산에서 북쪽 국경지역 사이에 있다.
곽주(郭州):
“원나라 때 조선평양 서북쪽에 있다“고 했으므로 흥주, 철주, 통주 등과 근거리지역이다.
②라주(羅州):
『이씨조선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1권 개성부 성곽편 羅城條”
“고려현종(顯宗 8대: 1009-1031년) 때 강감찬이 경도(京都:개성)에 라성(羅城) 쌓기를 청하니 왕이 이가도에 명하여 토성을 만들게 했는데 21년만에 끝났다. 주위29700보(약 20Km), 라각(羅閣)13000칸, 송인, 선기, 보정(保定), 광덕, 덕산, 회빈, 선계, ---안정 등 22개문이 있는데 지금은 모두 무너졌다."』
※강감찬 부친의 원래고향은 은천(銀川)인데 최초의 은천은 지금의 감숙성 란주 서쪽으로서 당나라사람일 가능성이 있다. 고려왕건도 당나라사람이니 둘의 고국이 같다. 당나라든, 고려든 모두 중국사람인데 한국의 서울에 강감찬의 동상을 세워놓고 기리고 있으니 할 말이 없다.
여기에 나오는 보정이 바로 감숙성 경천이고 그 서북쪽에 평양이 있고 동북쪽에 경주(경양)가 있다. 여기의 라주는 개성에서 동쪽으로 약 300여리에 있는 고려의 동경인 경주(요나라 때 開封, 감숙성 慶城)로 추정되며 開城府 안에 평양, 개성, 개성을 둘러싼 라성, 라주(경주)도 다 있다는 뜻이다. 왕이 개성에서 300여리 동북쪽에 있는 송화강을 건너 라주로 피난한 것이다.
③압록강(鴨綠江):
고구려와 고려의 압록강은 감숙성 환도산에서 나와 서북으로 흘러 두만강으로 합류하는 상건하, 무정하 청천강(중국명 청수하), 살수, 난하 등 많은 이름을 가진 강이다.
그런데 한반도에는 상건하, 무정하, 난하가 없고, 청천강, 살수, 압록강이 각기 떨어져 있다.
④래원성(來遠城)
은 요나라가 설치한 감숙성 “조선평양서북쪽“으로서 요양동쪽 60리에 있는 고구려 백암성지역으로 추정된다. 압록강의 서쪽에 있는 거란 성이인데 압록강 동쪽에 고려가 쌓은 성과 마주보이는 성이다.
⑤신성(新城):
여기의 신성은 감숙성 해성과 압록강 사이의 삼차구지역의 고구려 북신성지역으로서, 청나라 때의 신성으로 추정된다.
(결론):
고려와 거란의 경계선은 감숙성 해성북쪽 강인 태자하이다. 고구려와 당나라의 국경과 같다. 여기에 나오는 지명들은 남쪽 개성에서 서북쪽 거란의 경계까지에 있는 지명들이다. 그런데 거란 이전에 쓰던 고구려, 수, 당나라 때의 지명들이 아닌 다른 이름들이다. 그런데 위치를 추적해보면 거의 옛날 지명자리이거나, 붙어있거나, 그 사이에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 이것들은 아시다(한반도)에 있다는 기록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고려는 아시다의 역사가 아니다.
중국감숙성에 있는 압록강 서쪽의 6성은 요동 땅의 서북쪽이며 거란과의 국경지역이어서 전쟁을 많이 한 곳이다. 고조선 때 魏, 晉, 漢- 魏- 晉- 北齊- 北周- 隋- 唐 - 渤海- 遼- 宋- 金- 元- 明-淸나라 땅이었고 遼- 金- 元- 明- 淸나라 때는 도읍지였다.
고려의 서북경계로서 여진족인 金나라가 거란을 멸한 후에는 금나라(여진족)와의 경계이인데 압록강 서쪽이니 강서6성이다. 압록강 동쪽도 고려북쪽에 여진(금나라)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니 강동6성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한국사에서는 강동 6성이 나오는데 필자는 한반도 역사로 조작했기 때문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본다.
필자는 한반도역사냐? 아니냐?를 분별하는 역사를 하므로 더 구체적인 것은 대륙사전공자들이 해주기 바란다.
2019. 4. 29
한국상고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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