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댓글 내용을 남겨주세요. 최대 글자수를 초과하였습니다. 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권한이 없습니다.
제40주문제 고려의 위치와 강역(9)
  • 작성자 : hanbark33
  • 작성일 : 2019.05.07
  • 조회수 : 1250

제40주문제 고려의 위치와 광역(9)

현재 한국에 있는 삼국사기와 이조실록은 중국사기인데 조선사 편수회에서 한국사로 조작하고, 환단고기와 고려사기는 중국사기인데 일본으로 가져가서 한반도역사로 개조한 다음에 일본동경에서 발행한 책이므로 여러 말 할 필요조차도 없는데 한국인들은 우리역사라고 한다. 그래서 진실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13. 고려 서북지방의 6성지역, 개성, 라주(경주, 개봉)지역



14. “고려의 광역 기록 1”
 『대중상부 8년(宋, 眞宗, 1016년--- 고려8대 현종 7년),  
조서를 내려 등주에 객사를 설치하여 바다(강)로 나가는 사자들을 대기할 수 있게 했다. 또 어사 민관시랑 곽원을 파견했는데 (송나라에)와서 조공했다.
곽원이 말하기를, 우리나라는 성이 없고 토담뿐이다. 부는 개성이며 6현을 관할한다. 백성은 3만5천 이하이며 주에 군병이 있는데 백여명이다. 십로를 설치하고 돌아가면서 통사가 다스린다. 각 주마다 5-6개 현을 관할한다. 작은 것은 3-4개현이다. 각 현의 호수는 3-4백이고, 국경은 남북이 1500리, 동서가 2천리다. 군인과 민간이 섞여 산다. 풍속은 중국과 거의 닮았고, 양, 토끼가 없고, 낙타, 물소, 나귀 등이다. 소한기후인데 온도차이가 많다. 중(불교)만 있고 도사(도교)는 없다. 백성들의 그릇은 뚜껑이 있으며 모두 청동이다. 두 가지 음악이 있는데 당악과 향악이다. 3년에 한번 시험으로 사람을 뽑는데  진사, 제과, 산학이 있다. 각 시험마다 백여 명씩 응시하지만 합격자는 불과 10-20명이다. 정월1일과 5월5일마다 조상의 사당과 묘에 제사 지낸다. 또 정월7일은 집에서 왕모상을 모신다. 2월에는 승속으로 연등을 하는데 중국(당, 송) 상원절과 같다. ---. (大中詳府八年.  詔登州置館於海次待使者. 其年, 又遣御使民官侍郞郭元來貢. 元自言. 本國城無壇牆. 府曰開城. 管六縣. 民不下三五千. 有州軍百餘. 置十路轉運司統之. 每州管縣五六. 小者亦三四. 每縣戶三四百. 國境南北千五百里. 東西二千里. 軍民雜處---風俗頗類中國. 無洋兎. 橐駝, 水牛, 로(나귀). 氣候小寒. 暑差多. 有僧無道士. 民家器皿. 悉銅爲之. 樂有二品曰唐樂, 鄕樂. 三歲一試擧人. 有進士, 諸科, 算學. 每試百餘人. 等第者不過一二十. 每正月一日, 五月五日祭祖禰廟. 又正月七日家爲王母像載之. 二月望, 僧俗燃燈如中國上元節---)』(宋史卷四百八十七. 高麗)


(해설)
“우리나라는 성이 없고 토담뿐이다. 부는 개성이며 6현을 관할한다.“
성아 없다는 것은 일종의 속임수나 겸손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강감찬의 건의로 개성주변에 만든 둘레가 자그만치 20KM나 되는 거대한 토성울타리(라성) 안에 개성궁궐이 있다. 개성부에서 6현을 통치했으므로 개성궁은 1개 현에 불과하고 300여리의 동쪽 동경인 경주(라주)까지 개성부 관할이다. 서라벌(徐羅伐)의 도성은 원래 평양인데 평양의 이름이 많이 바뀌어 고려 때는 고조선, 서라벌, 고구려, 고려의 동경인 지금의 감숙성 경성(慶城)을 일명 라주(羅州)라고 한 것이다. 이씨조선의 라주는 호북성(전라북도) 의성(宜城)지역에서 호남성(전라남도)으로 이동되어 3-4개소로 이동했는데 일제가 한반도 전라남도로 이동 조작했다.

“남북이 1500리, 동서가 2천리”
고려는 대략 사방 4천 여리의 통일신라 땅을 승계했으므로 고려의 광역도 사방 4천 여리다. 그런데 고려를 한반도로 이동 조작했으므로 광역을 축소한 것이다. 그림에서 고려의 남쪽은 운남성 곤명호 이북까지 이므로 옛날 거리로 대략 4000여리가 된다. 한반도는 동서가 통상 900리 내지 1천 여리이므로 동서 2천 여리의 반절뿐이다. 그러므로 “남북이 1500리, 동서가 2천리”는 중국에서나 한반도에서나 아무 곳에도 해당되지 않는 엉터리다. 고려는 절대로 한반도의 나라가 될 수 없다.

“당나라 음악으로서 중국의 소리”
두건풍습과 음악을 다 당나라 전통을 사용한 것이 증명된다. 고려가 아시다(한반도)라면 7000여리나 떨어진 머나먼 청해성의 풍습을 가져다 쓸 아무런 이유가 없다. 따라서 고려는 우리역사가 아니다.

15. “대장경”

『먼저, 치가 중 여가를 보내 표를 가지고 와서 임금을 뵈옵고 “대장경”을 청하여 이에 하사한바 있다.“--- (先是, 治遣僧如可齊表來覲. 請“大藏經”. 至是賜之.---)』
『“(순화)2년 사신 한언공을 파견하여 조공했는데 언공이 표를 올려 임금께서 불경을 구한다는 뜻을 말했다. ”장경“인데 더불어 송나라임금이 만든 ”비장전“, ”소요영”, “연화심륜” 등을 하사했다.(淳化)二年 遣使韓彦恭來貢. 彦恭表述治意. 求印佛經. 詔以“藏經” 幷御製“秘藏詮”, “逍遙詠”, “蓮華心輪”賜之)』(宋史卷四百八十七. 高麗)
치(治):고랴6대 성종 981-997년.
순화(淳化): 북송2대 태종 992년---고려6대 성종11년


★이 문장은 고려위치와 관련이 없지만 대장경의 연원을 알기 위해 소개한 것이다.
고려의 대장경은 원래 불교국가인 당나라 후신인 북송에서 그 근본을 얻어다가 만든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2019. 5. 7.
                                                       한국상고사연구회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