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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주문제 고려의 풍속(11)
  • 작성자 : hanbark33
  • 작성일 : 2019.05.20
  • 조회수 : 825

제42주문제 고려의 풍속(11)

★고려는 고구려와 통일신라 땅을 계승했고, 이씨조선은 고려 땅을 계승했으며, 대한제국은 이씨조선 땅이다.  이 역사무대가 아시다(한반도)인가? 아닌가?를 검토하는 것이다.

17. “고려의 풍속“
『“대관 중(宋, 徽宗:1107-1110년 ---고려16대 예종 때),
머리에 목침을 사용하지 않아서 머리통 뒤가 편편하다. 남자는 머리띠 있는 두건을 쓰는데 당나라 복장과 같다. 부인들은 머리를 한쪽으로 삐딱하게 묶어서 오른쪽 어깨에 늘어뜨리고 나머지 머리카락은 땋아 내렸는데 마치 강라(絳羅: 진홍색비단)처럼 매끄럽고 이쁘다. 비녀를 꽂는다.
치마(旋裙)는 겹으로 돌려 입는데 포개진 것이 아름답다(多爲勝). 여름철에 하나의 냇물에서 목욕을 하는데 부인, 승려, 비구니들이 다 남자에게 절을 한다. 음악소리가 매우 조용한데 쇠나 돌로 된 소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주어진 음악은 좌우 2부로 나뉘는데 좌는 당나라 음악으로서 중국의 소리이고, 우는 향악으로서 전통민속이다. ---.“
(大觀中),
人首無枕骨背扁側. 男子巾幘如唐裝. 婦人鬌髺垂右肩. 餘髮被下 約以絳羅. 貫之簪. 旋裙重疊. 以多爲勝. 夏月同川而浴, 婦人, 僧 尼皆男子拜. 樂聲甚下. 無金石之音. 旣賜樂乃分爲左右二部. 左曰唐樂中國之音也. 右曰鄕樂其故習也 ---)“』(宋史卷四百八十七. 高麗)
(건巾: 두건, 머리쓰게. 책幘: 머리 띠. 참簪: 비녀)
(해설)
1). “남자는 머리띠 있는 두건을 쓰는데 당나라 복장과 같다.”
띠 있는 두건이란  머리에 벙거지를 쓰고 띠로 움직이지 않게 이마를 둘러 묶는 것인데 두건이란 머리통을 감싸고도 여유가 있는 큰 머리쓰게를 말한다.
청해성의 당나라 동쪽인 고려는 고구려 땅을 계승했는데 당나라 관습을 많이 사용한 것은 왕건이 당나라 황제의 자식이므로 왕건으로서는 조국의 관습을 나라의 생활예법과 풍속에 많이 사용하게 된 것이다.
당나라가 큰 두건을 쓴 것은 청해성은 당나라시대에 상당히 사막화가 진행되는 시대여서 바람에 먼지가 날리는 경우가 많아서 바람과 먼지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또 서쪽 신강성으로부터 먼지폭풍이 밀려오면 머리뿐 아니라 얼굴까지 가려야 하는 기후조건 때문이다. 사막지역에서 뒤집어쓰는 머리포를 항상 휴대하는 것과 같다.
중국동부지역이나 한반도에서는 이런 풍습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고려는 아시다(한반도)역사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된다.


2). “부인들은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삐딱하게 묶어서 반절은 오른쪽 어깨에 늘어뜨리고 나머지는 땋아 내렸는데 마치 강라(絳羅: 진홍색비단)처럼 매끄럽고 이쁘다. 비녀를 꽂는다.
아시다(한반도)풍습은 쪽머리에 비녀를 꽂으니 고려는 한반도 풍습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3). 머리풍속
①아시다(한반도)는 남자는 갓(God: 갓, 것, 굿)을 쓰기 때문에 머리를 치켜올려 작은 상투형이고 여자는 뒤에서 쪽을 지어 비녀를 꽂는다. 고조선부터 대한제국은 중국의 역사인데 일제가 한반도역사로 이동 조작한 것이다. 현재 한국사학계는 이러한 진실을 아는 학자가 없기 때문에 이씨조선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씨조선의 역사와 문화로 표현되는 것이다. 상투와 갓의 시초는 안정된 농업문화인 마드(엣한반도)인데 중간에 몽고로 이동하여 목축이 주생활인 대륙에서는 점차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나라의 위치와 민족에 따라 머리모양이 다르다.                     

---------그림샐략r--------


※1900년 전후시대 아시다(한반도) 남자상투와 여자쪽머리(여지궁술대회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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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중국감숙성 이동의 소위 동이족은 남녀모두 위로 치켜올린 모양인데 남자는 상투형이다. 여자는 올리고 꼭지에 비녀를 꽃는다.


그림 올리기가 어려워 그림생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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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5. 20. 
                                       한국상고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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