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주문제 이씨조선의 위치와 광역
현재 한국에 있는 삼국사기와 이조실록은 중국사기인데 조선사 편수회에서 한국사로 조작하고, 환단고기와 고려사기는 중국사기인데 일본으로 가져가서 한반도역사로 개조한 다음에 일본동경에서 발행한 책이므로 여러 말 할 필요조차도 없는데 한국인들은 우리역사라고 한다. 그래서 진실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일제가 조작한 조선사를 성락훈, 이병도 일행이 번역한 이씨조선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1989년 중판본)에 나타난 충격적인 기록들을 발견한 대로 모은 것이다. 이씨조선이 원래부터 한반도역사라면 이런 기록이 있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
이씨조선이 한반도역사라고 하는데 왜 이런 기록이 있을까? 이런 문제들에 대해 역사학계는 분명하게 답변할 수 있을까?
7. 조선8도
"사방의 복판에 처한 것을 경기라 하고, 서남은 충청, 동남은 경상, 남쪽에 치우친 것은 전라, 정동은 강원, 정서는 황해, 동북은 영안, 서북은 평안이라 하였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1권 서문 P.21--28 노사신, 강희맹, 서거정 등이 씀)
(해설)
위 본문에서 “正東은 강원, 正西는 황해“라고 했는데 중국은 서쪽이 커서 황해도를 둘 수 있지만 아시다(한반도)는 서울의 서쪽에 황해도를 둘만한 땅이 없어서 서북쪽에 두었다. 또 초기에는 ”동북은 영안,”이라고 했는데 후에 “함경도”로 바뀌었다.
※ 이씨조선 때는 광동성, 광서성이 없는 것은 삼국시대 때무터 수많은 섬들로 된 땅이기 때문에 복건성과 전라도에서 관할하지만 道밖의 별지 또는 외지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려(사천성남부), 안남(광서성지역), 점성(占城: 광동성, 왜국 등지)지역이라고도 했다.
※아시다(한반도) 전체는 대륙조선 8도의 1개 도(道)의 크기만 하기 때문에 간단히 말하면 원래 조선의 8분의 1에 불과하므로 조선8도를 논할 가치조차 없다
8. “동서이경(東西二京)”
"경(京)이 둘이요 부(府)가 넷, 대도호부가 넷, 목(牧)이 20, 도호부가44, 군이 83, 현이 173이다---양경(兩京) 8도 50권을 편찬하여 바치나이다."
(노사신, 강희맹, 서거정 등이 쓴 신증동국여지승람 1권 동국여지승람 서문)“
(해설)
①양경(兩京)
즉 “동서이경(東西二京)“이 나오는데 이씨조선의 지리지에서는 말살하고 엉뚱하게 조선의 교과서인 천자문에는 “동서이경(東西二京)”에 대한 설명문이 다음과 같이 나온다.
"도읍은 화산과 하나라 옛 땅에 있고, 동서에 두개의 서울이 있으며, (동경은)뒤에는 북망산이요 남쪽은 낙수이고, (서경은)위수를 끼고 경수에 의지해 있는데 궁전은 울창한 나무가 있는 반석위에 있다.(都邑華夏東西二京 背邱面洛 浮渭據涇 宮殿盤鬱)"
②동경은 하남성 낙양이고, 서경은 “위수를 끼고 경수에 의지해 있는” 곳인 섬서성 함양(咸陽: 漢陽)이다. 그래서 동서 2경이다.
북망산은 낙양성 북문 밖 10리 하에 있다. 그래서 한국의 성주풀이에서 "낙양성 10리 하에 많고 많은 저 무덤아---"라는노래가 한국의 전통문화라고 한다. 그야말로 웃기는 소리다.
③한양(漢陽)
이씨조선 초기에는 한양(漢陽)이 도읍으로서 지금의 중국 함양(咸陽)이다. 함양은 비류백제의 북한성(北漢城)이며, 고구려 두 번째 장안성평양이다. 일제 때 조선과 한양을 아시다(한반도)로 이동조작하고 한양을 함양으로 고친 것으로 추정된다.
④서경(西京)
조선의 서경은 비류백제의 남한성(南漢城)이며, 조선후기 1796년에 축조하고 정조 때 한강건너 남쪽 화성(華城)으로 천도했다. 지금의 서안성(西安城)이다.
⑤동경(東京)
하남성낙양이 동경(東京)으로서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수군통제사가 되기 전에 있었던 곳이다.
그래서 서안과 낙양이 동서 2경인데 아시다(한반도)는 서울의 동쪽이 아니라 동남쪽 멀리 있는 경주는 동서2경이 될 수 없으므로 이씨조선이 아니다.
⑤후한의 도읍:
周, 秦, 漢, 唐나라는 청해성의 나라였으므로 전한(前漢)의 장안은 청해성에 있어야 맞다. 왜냐면 후한이 동쪽으로 천도한 곳이 중국지리지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의 기록에는 기자조선성이 있었던 지금 감숙성 天水서남쪽의 무산(武山: 최초한양)지역이다.
한나라의 최초장안은 청해성으로 추정되고 고구려 최초장안은 낙랑군 평양이고 두 번째 장안이 섬서성 함양으로 추정된다.
⑥낙읍(樂邑 : 落邑: 洛邑)
동쪽의 낙읍은 감숙성 대방 땅 서쪽의 원래의 가락국 도읍인 낙읍(樂邑: 樂音洛:전한서6- 28. 洛邑)으로 추정된다. 이것을 후세에 하남성 낙읍(낙양서남쪽 추정)으로 이동 조작하여 역사를 조작했는데 지금은 낙양으로 변한 것이다.
⑦중국의 역사조작
삼국시대 이전에는 지금의 西安서쪽이 대호수로 막혀서 화살모양의 중국의 東海였고 호수남쪽은 지금의 태백산맥이 막고 있어서 한나라, 수나라, 당나라는 대 호수와 습지로 된 땅을 건너 동쪽의 섬서성, 하남성쪽으로 온 일이 없다. 그래서 상고시대부터 부족들의 이동은 주로 태백산맥 남쪽의 東漢水를 따라 이동했다.
백제는 서안 서쪽의 대호수 서쪽에 붙어있었던 대방 땅에서 동북 기산지역으로 이동하여 섬서성 함양지역과 산서성 서남부를 차지하고 있다가 고구려에게 밀려 한강남쪽으로 이동한 바로 비류백제의 西海인데 세월이 흘러 이씨조선 때는 물이 줄어들어 西湖라고 했다. 한반도 서울 서쪽 10리되는 곳에는 수십리의 큰 호수가 없고 한강뿐이다.
⑧관경
약 사방 4천 여리의 통일신라를 고려가 계승했고, 고려는 이씨조선이 계승했으므로 통일신라 ∼고려∼ 이씨조선은 같은 땅이다. 한반도는 동서900리, 남북 3천리이니 5분의 일 밖에 되지 않아서 사방4천 여리의 원래 이씨조선과는 비교조차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도읍지, 광역, 西湖라는 지리적 조건으로 보면 이씨조선이 한반도로 이동 조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씨조선은 한반도의 나라가 아니다.
(유우찬의 “한국사의 실체”, “삼국사기검토서 개정판”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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