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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주문제 누가 고조선을 우리역사라고 하는가?
  • 작성자 : hanbark33
  • 작성일 : 2020.04.06
  • 조회수 : 546

제66주문제 누가 고조선을 우리역사라고 하는가?(6)

한국사의 실체:
1. 만주는 원래의 구만주와 신만주가 있는데 신만주(동북3성)는 1905년부터 1932년까지 중국의 지명을 옮겨서 구만주의 역사를 통째로 이동 조작했다. 아시다(한반도)는 일제가 중국의 지명을 옮겨서 역사를 통째로 이동하여 조작했다.
일제시대의 신만주와 아시다(한반도)는 일본의 점령지 즉 일제의 영토다. 그러므로 이전의 토착역사를 말살하고 새로운 역사를 조작했으므로 한국사는 일본제국의 대륙사다. 식민지인 우리역사가 아니다. 이것을 전쟁에 패하여 버리고 간 쓰레기인데 미국 군정청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이승만 정부에 넘겨주었는데 진위여부에 대한 검토 없이 그대로 수용하여 세뇌시킨 것이 현재의 한국사다. 이것을 한국인들은 진짜역사라고 한다. 그러므로 한국은 영토만 독립했고 역사문화정신은 지금도 일제의 식민 그대로 살고 있다. 만약 기존의 역사를 고집한다면 한국 국민들은 아침저녁으로 천황만세를 외치며 존경해야 된다.

2. 중국 땅의 지명에는 주나라 때부터의 과거연혁이 다 나오는데 신만주와 한반도가 한나라 때부터 중국 땅이라고 했는데도 지명에는 과거연혁이 전혀 없이 일제 때 이동된 지명만 있다. 그래서 현재 한국의 모든 역사책이 조작되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3. 이제 정리해야 될 때가 되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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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절 43세 물리선군

“36년(BC.426년), 융안의 사냥꾼 우화충이 장군을 자칭하며 무리 수만명을 모아 서북 36군을 함락시켰다. ----백민성(白民城)의 욕살 구물(丘勿)이 어명으로 군대를 일으켜 장당경을 점령하니 구지(九地)의 군사들이 이에 따라서 동서의 압록(鴨綠) 18성이 모두 병력을 보내 원조하였다.”

1). 서북 36군:
①“21세 소태단군 47년(BC.1291년) 은나라 왕 무정이 귀방(鬼方)을 쳐 이기더니 색도(索度)와 령지(令支)의 나라를 침공하였으나 우리에게 대패하여 화해를 청하며 조공을 바쳤다.”(단군세기)

②“21세 소태단군 49년(BC.1289년) 개사원의 욕살 고등이 귀방을 습격하여 멸망시키니 일군국과 양운국이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쳤다.“(단군세기)

③“43세 물리선군36년(BC.426년), 융안의 사냥꾼 우화충이 장군을 자칭하며 무리 수만명을 모아 서북 36군을 함락시켰다.”(단군세기)

※“귀방(鬼方)“이란 한문을 어떤 글자를 쓰든지 간에 산스크리트어로 ”고조선의 귀퉁이에 있는 일대의 땅“이란 뜻이다. 그것이 서북쪽 귀퉁이에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36군에 해당되는 넓은 땅이란 뜻이며 약수(弱水) 지역의 북부에 해당하는 백인흉노족의 근거지다. 융안지방이라고도 한다.
서북36군에 해당하는 귀방은 청해성의 은나라가 점령했는데 고조선의 고등이 습격하여 빼앗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흉노족 색부루를 고등의 사위 또는 손녀사위로 맞이했는데 고등의 말년에 색부루가 득세하여 고씨나라인 단국(檀國)을 멸하고 색씨조선(索氏朝鮮: 古朝鮮)을 건국했다. 그러므로 고조선을 우리역사라고 하는 사람들은 조상을 백인흉노족으로 바꾸는 환부역조라는 것을 모르는 무식한 사람들이다. 후세에 이 땅에서 우화충이 반란했다는 뜻이다.

④ “한나라가 BC.104년 대완(大宛)을 점령했다.
                            (사마천의 사기 본기 권12 효무본기 제12)
※대완은 청해성의 나라인 한나라의 서북쪽 즉 귀방을 넘어 알타인산 서남의 발하시호 지역이다. 대완을 점령하려면 흉노지역인 귀방을 점령하고, 누란(樓蘭)과 오손(烏孫)을 점령한 후에야 대완을 점령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漢)나라도 융안지방, 귀방, 서북36군이라고 부르는 땅을 점령한 사실이 있다.


서북36군과 장당경의 위치:


그림삽입이 어렵습니다. 쉽게 넣을 수 있게 개편좀 하면 좋겠어요







2). 장당경(藏唐京)
장당경에 대한 지리지 기록은 없다. 따라서 역사를 수십 년 동안 연구하다보면 그 지역적인 평가와 판단을 할 수 있는데 필자는 장당경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1. 단국도성의 서북쪽 즉 융안36군지역에 가까이 있다.
2. 원래 요임금의 도성은 감숙성의 평양(平陽)인데 태원(太原) 땅이고 당읍(唐     邑)이므로 당(唐) 땅, 당산(唐山) 등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요임금     이 檀君에게 쫒기어 1차로 천도한 곳으로 감숙성 무위(武威)로 추정한다.      그래서 감숙성 무위가 제2의 당 땅, 태원이 된 것이다. 그래서 “장당경이란     요임금의 도읍인 당경(唐京)을 숨긴 곳이란 뜻이다.“ 훗날 당나라의 발원지     로서 국호를 “당(唐)“으로 정한 바로 그 땅이다. 그런데 중국의 모든 서책     은 요임금의 도성이 산서성 남부로 되어 있는데 조작된 가짜다.
3. 단군이 감숙성의 요임금 땅을 빼앗은 후에 다시 요임금을 공격하여 요임금     을 돈황지역으로 쫓아내고 장당경에 아들 부여를 보내 부여국을 건설하니     부여국의 도읍지다.
4. 색부루가 조선을 건국하고 제위에 오른 곳이 장당경 근처에 부여의 신궁     을 짓고 등극했다.(BC.1286년)
5. 구물선군이 BC.425년에 장당경에서 즉위하고 국호를 대부여(大扶餘)로 고     쳤다. 감숙성 해성을 평양으로 고치고 이궁(離宮)을 지어 동경(東京)으로 삼     았다.
6. 북부여 해모수가 대부여 5가들을 회유하여 공화(共和)를 철폐한 후에 도성     으로 삼은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7. 한나라가 흉노 혼야왕(混耶王)으로부터 항복을 받고 진번군(眞番郡)의 치소     진번성(眞番城)으로 삼은 곳이다.
8. 요(遼: 거란)나라가 상경임황부(上京臨湟府)로 삼은 곳이다.

★환단고기는 일제 때 새로 쓴 책으로서 우리국사가 아니라 인류사다. 삼국사기도 우리역사가 아니다. 그런데 사대주의와 식민주의에 길들여져서 이 진실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없다.
역사는 역사적조건, 지리적조건, 환경적조건 등으로 검토하여 결정한다. 단순히 책만 가지고 이러 쿵 저러 쿵 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학문으로서 진실을 외면한 사상적 몰이 배들에게 휩쓸리기 쉽다.
                                -----한국상고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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