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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주문제 누가 고조선을 우리역사라고 하는가?(7)
  • 작성자 : hanbark33
  • 작성일 : 2020.04.20
  • 조회수 : 532

제67주문제 누가 고조선을 우리역사라고 하는가?(7)

한국사의 실체:
1. 만주는 원래의 구만주와 신만주가 있는데 신만주(동북3성)는 1905년부터 1932년까지 중국의 지명을 옮겨서 구만주의 역사를 통째로 이동 조작했다. 아시다(한반도)는 일제가 중국의 지명을 옮겨서 역사를 통째로 이동하여 조작했다.
일제시대의 신만주와 아시다(한반도)는 일본의 점령지 즉 일제의 영토다. 그러므로 이전의 토착역사를 말살하고 새로운 역사를 조작했으므로 한국사는 일본제국의 대륙사다. 식민지인 우리역사가 아니다. 이것을 전쟁에 패하여 버리고 간 쓰레기인데 미국 군정청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이승만 정부에 넘겨주었는데 진위여부에 대한 검토 없이 그대로 수용하여 세뇌시킨 것이 현재의 한국사다. 이것을 한국인들은 진짜역사라고 한다. 그러므로 한국은 영토만 독립했고 역사문화정신은 지금도 일제의 식민 그대로 살고 있다. 만약 기존의 역사를 고집한다면 한국 국민들은 아침저녁으로 천황만세를 외치며 존경해야 된다.

2. 중국 땅의 지명에는 주나라 때부터의 과거연혁이 다 나오는데 신만주와 한반도가 한나라 때부터 중국 땅이라고 했는데도 지명에는 과거연혁이 전혀 없이 일제 때 이동된 지명만 있다. 그래서 현재 한국의 모든 역사책이 조작되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3. 이제 정리해야 될 때가 되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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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절 47세 고열가선군

2. “58년(BC.238년) 이보다 앞서(BC.239년) 종실 대해모수는 몰래 수유와 약속하고 옛 서울 백악산을 습격하여 점령하고 천왕랑(天王郞)이라 칭했다. 수유후 기비(箕丕)를 권하여 번조선왕(番朝鮮王)으로 삼고 상하의 운장(雲障)을 지키게 했다.

①수유후 기비(須臾侯箕丕)
수유국은 태호복희족의 나라로서 고구려 환도산 북쪽 90리에 있는 선교와 불교의 중심지인 수미산(須彌山: 묘향산)의 나라다. 최치원이 천부경을 새겼다는 바로 그 산이다. 은나라 기자((箕子)가 처음 조선에 와서 정착한 마을이다. 단국(檀國) 22세 색부루가 고씨(高氏)나라인 단군의 단국(檀國)을 멸하고 색씨조선(索氏朝鮮)을 건국했는데 바로 고조선(古朝鮮)이다.
기자는 단국 21세 소태단군 때의 기수(奇首: 奇子:  徐于餘: 徐餘), 상장서여(上將西余), 은나라의 기자(箕子: 胥餘) 등 3인이 나타난다.
고조선의 번조선 시조왕(BC.1285년 5월)은 기자(奇子)인 서여(徐餘: 徐于餘)다. 기자(奇子)는 단국의 상장(上將) 서여(西余)라고도 전한다.(단기고사 奇子朝鮮편)
고조선의 번조선 시조가 기자(奇子)이므로 일명 기자조선(奇子朝鮮)이라고도 한다.
“은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건국한지 3년(BC.1131년)에 은나라 기자가 망명하여오니 임금께서 가련하게 여기고 요서(遼西: 압록강서쪽)의 한 모퉁이에 거주하게 했는데”(마한세가 하 참고) 이곳이 태호복희로부터 선교의 성지인 수유국(須臾國)이다. 은나라 기자((箕子)로부터 38여세를 지나 기자의 후손 기후(箕詡)가 번조선왕으로 득세하였는데 이것이 곧 기자조선(箕子朝鮮)이다. 고조선의 번조선전기는 기자조선(奇子朝鮮)인데 산스크리트어로 서라벌이다., 번조선 후기가 기자조선(箕子朝鮮)이다.
“46세보을선군 19년(BC.323년) 읍차 기후(箕詡)가 병력을 이끌고 입궁하여 자칭 번조선왕이라 칭하고 사람을 보내 윤허를 구하니 이를 허락하고 연나라 에 굳게 대비토록 했다.“(환단고기 단군세기)
“47세고열가선군 57년(BC.239년) 북부여시조 해모수가 웅심산(熊心山: 崆峒山)을 내려와 군대를 일으켰다.--- 해모수는 몰래 수유(須臾)와 약속하고 옛 서울 백악산을 습격하여 점령하고 천왕랑(天王郞)이라 칭했다. 수유후(須臾侯) 기비((箕丕)를 번조선왕으로 삼았다“(환단고기 단군세기)
고조선의 번조선왕은 기후(箕詡)이고, 북부여 때는 기비((箕丕)이고, 위만에게 망한 때는 기준((箕準))이다.
기자조선(奇子朝鮮)의 기자(奇子)와  기자조선(箕子朝鮮)의 기자(箕子)는 작위이므로 그 작위를 칭하여 일명 기자조선(奇子朝鮮), 기자조선(箕子朝鮮)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기후(箕詡), 기비(箕丕), 기준(箕準)은 성씨와 이름이 아니고 기자조선의 후왕(詡王), 비왕(丕王), 준왕(準王)이란 뜻이고 성씨는 은나라 기자(箕子)의 이름은 서여(胥餘)다.
번조선은 기자(奇子)인 “서여(徐餘: 徐于餘)의 나라, 서씨(徐氏)의 나라, 서국(徐國)”이므로 산스크리트어로 일명 “서라벌(徐羅伐) 또는 “서나벌(徐那伐)”이라고 했다. 진(晉)나라가 일시점령한 때는 진양설씨(晉羊舌氏)가 제후로서 일명 설국(舌國, 薛國)이다. 그래서 서라벌은 원효대사와 아들 설총(薛聰)의 고향이다. 
『설가둔(薛家屯)(중국고금지명대사전 P.1296): 在吉林舒蘭縣東』
※최초의 길림성은 구만주인 중국 감숙성이다.
서라벌, 사로, 신라는 각기 다른 나라인데 삼국사기에는 신라로 통일하여 통합조작되어 있다. 
원래 번조선의 기자조선(奇子朝鮮) 치소는 서주(徐州, 舒州), 서현(徐縣)인데 요임금 때는 평양(平陽)이고,  단국 때는 번한(番韓)의 치소이고, 고조선 때는 번조선의 치소이며, 한나라 때는 낙랑군 치소이고, 고구려 때는 3평양 중에서 제1평양이다. 지금의 감숙성 평량(平涼)이다. 감숙성의 서주(舒州, 徐州)를 신라 땅인 산동성 서남부 패현(沛縣)지역으로 이동했다가 지금은 또다시 남쪽으로 500리나 이동하여 강소성 북부에 이동되어 있다.
이렇게 진실을 추적해보면 현재 한, 중, 일의 역사책들은 100% 조작된 가짜만 있고 진서는 모두 말살되었다. 그러므로 현존하는 역사책대로 하면 100년을 연구해도 진실을 찾을 수 없다.
조작된 책이지만  진실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중국고금지명대사전"과 한국의 이씨조선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 두 가지뿐인데 상당량의 진실기록이 있고 또 진실을 추적할 수 있는 내용들이 있기 때문이다.

②운장(雲障)
운장은 번조선(기자조선)과 위만의 이야기에 등장하는데 감숙성 천수 서쪽이다.


                                 수유국과 운장의 위치



                                                                    (유우찬저 “환단고기단군세기검토서” 그림)


★환단고기는 일제 때 새로 쓴 책으로서 우리국사가 아니라 인류사다. 삼국사기도 우리역사가 아니다. 그런데 사대주의와 식민주의에 길들여져서 이 진실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없다.
신만주(동북3성)와 아시다(한반도)에서는 수유국과 운장이 없다. 단군세기에 나오는 모든 지명들도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고조선은 우리역사가 아니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은 고조선이 우리역사라고 한다. 이것은 역사의 원칙을 무시한 일방적이 주장에 불과하고 국민에게 거짓을 강요하는 폭력이다.
역사는 역사학의 원칙인 역사적조건, 지리적조건, 환경적조건 등으로 검토하여 결정한다. 단순히 책만 가지고 이러 쿵 저러 쿵 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학문으로서 진실을 외면한 사상적 몰이 배들에게 휩쓸리기 쉽다.
                                        -----한국상고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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