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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주문제 누가 고구려를 우리역사라고 하는가?(1)
  • 작성자 : hanbark33
  • 작성일 : 2020.05.04
  • 조회수 : 579

제69주문제 누가 고구려를 우리역사라고 하는가?(1)

한국사의 실체:
1. 만주는 원래의 구만주와 신만주가 있는데 신만주(동북3성)는 1905년부터 1932년까지 중국의 지명을 옮겨서 구만주의 역사를 통째로 이동 조작했다. 아시다(한반도)는 일제가 중국의 지명을 옮겨서 역사를 통째로 이동하여 조작했다.
일제시대의 신만주와 아시다(한반도)는 일본의 점령지 즉 일제의 영토다. 그러므로 이전의 토착역사를 말살하고 새로운 역사를 조작했으므로 한국사는 일본제국의 대륙사다. 식민지인 우리역사가 아니다. 이것을 전쟁에 패하여 버리고 간 쓰레기인데 미국 군정청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이승만 정부에 넘겨주었는데 진위여부에 대한 검토 없이 그대로 수용하여 세뇌시킨 것이 현재의 한국사다. 이것을 한국인들은 진짜역사라고 한다. 그러므로 한국은 영토만 독립했고 역사문화정신은 지금도 일제의 식민 그대로 살고 있다. 만약 기존의 역사를 고집한다면 한국 국민들은 아침저녁으로 천황만세를 외치며 존경해야 된다.

2. 중국 땅의 지명에는 주나라 때부터의 과거연혁이 다 나오는데 신만주와 한반도가 한나라 때부터 중국 땅이라고 했는데도 지명에는 과거연혁이 전혀 없이 일제 때 이동된 지명만 있다. 그래서 현재 한국의 모든 역사책이 조작되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3. 환단고기와 삼국사기는 중국사기인데 일제가 한반도역사로 둔갑시키기 위해 새로 쓴 책으로서 실제로는 우리국사가 아니다. 그래서 일제시대에 약 400만명(추정)의 대한제국민을 한반도로 이민시켰는데 이들이 가지고온 책들 즉 현재 우리역사라고 하는 것들이 한반도역사가 아니고 중국의 역사라는 것이 들통날까봐 일제는 모든 역사서를 수거하여 불태우고 일부는 가져갔다. 그런데 사대주의와 식민주의에 길들여져서 이 진실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없다.

4. 이제 정리해야 될 때가 되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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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구려 집안의 위치기록

※신만주 요녕성에 있는 집안, 환인, 통구는 일제 때 중국 산서성에서 이동 조작된 현대지명이다. 현대지명으로 고대사를 썼으므로 일제가 새로쓴 것이 틀림없다.
舊滿州인 중국감숙성 원래의 집안을 국내성으로 고치고, 집안은 산서성 북부 회인현자리로 옮기고 고구려 무대도 산서성과 하북성으로 옮겼다. 이 집안을 일제가 신만주 요녕성 현재의 위치로 이동 조작하고 고구려를 만주와 한반도로 이동 조작했다.
집안과 국내성은 같은 곳으로서 “집안”은 6500년 전후의 지구변동 때 한반도에서 몽골로 이동하여 선비제국을 건설한 선비족 중에서 남쪽 감숙성 쪽으로 내려간 고리족(高麗族)의 언어인 산스크리트어이고 “국내”는 후에 나온 중국 한문 식 이름이다. 그러므로 국내성은 중국 감숙성에 하나뿐이다. 
이렇게 진실을 알면 한국의 역사계가 일제의 역사를 얼마나 철저하게 수호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1. 회인현(懷仁縣)(중국고금지명대사전):
“요나라가 설치했다. 아보기가 진왕 이극용과 동성에서 회합했다. 회상인이란 사람이 있다고 해서 현의 이름으로 택했다. 지금의 산서성 회인현 서쪽이다. 금나라 때 지금의 치소로 옮겼다. 명나라, 청나라 때는 다 산서성 대동부소속이었다. 중화민국 초에는 산서성 안문도에 속했다"(遼置. 因阿保機與晉王李克用會於東城. 有懷想仁人之語. 故縣取名. 在今山西懷仁縣西. 金徙今治. 明淸皆屬山西大同府. 民國初屬山西雁門道.)“
※중화민국(1911년∼1928년).
(해설)
(본문 1)“요나라가 설치했다. 아보기가 진왕 이극용과 동성에서 회합했다. 회상인이란 사람이 있다고 해서 현의 이름으로 택했다.”
요나라와 청나라는 감숙성이 중심무대이며 중국산서성 회인현 땅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문장의 당초 회인현은 청나라 땅인 감숙성인데 산서성 서북부로 이동 조작된 지명이다.  이것을 금나라 때에 설치한 산서성이라고 소급하여 조작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산서성 회인현 서쪽이다. 금나라 때 지금의 치소로 옮겼다. 명나라, 청나라 때는 다 산서성 대동부소속이었다. 중화민국 초에는 산서성 안문도에 속했다“고 한 것이다. 여기서도 명나라는 산서성과 하북성에 존재하지 않았고 청해성과 감숙성 서북부다.
회인현이 중화민국 초기(1911년∼1917년경)에 산서성 북부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만주요녕성으로 이동한 것은 아무리 빨리 잡아도 1915년∼ 1920년의 일제 때로 추정된다.
★회인현은 청나라 때는 산서성 대동부 소속이었고, 중화민국 때는 산서성 안문도 소속이었다. 집안이 있는 만주요녕성에는 대동부, 안문도, 회인현이 존재한 사실이 없다.


2. 집안현(輯安縣): 감숙성⤇ 산서성 회인현 지역 ⤇일제가 신만주로 이동
“한나라 말기에 고구려 환도현이다. 당나라 때 발해의 서경압록부다. 청나라가 통화, 회인 두 현을 설치한 땅이다. 광서간에 나누어서 집안현을 설치했다. 치소는 통구구이고 봉천성소속이다. 중화민국 초에는 봉천 동변도인데 지금은 요녕성이다.(漢末高麗丸都縣. 唐渤海西京鴨綠府. 淸爲通化懷仁兩縣地. 光緖間析置輯安縣. 治通溝口屬奉天興京府. 民國初屬奉天東邊道. 今屬遼寧省.)” 
(해설)
중화민국 초기(1911-1917년경)에 봉천성이나 요녕성의 위치가 현재의 동북3성이 아니라 산서성과 하북성 북부지역이었으므로 이 문장은 다 맞다. 이렇게 문장을 보고 맞는지 틀리는지를 알려면 진실역사를 10년이상 연구한 사람이 아니면 무조건 문장대로 동북3성이라고 단정하게 되어 가짜역사를 하게 된다.

(본문 1)“한나라 말기에 고구려 환도현이다. 당나라 때 발해의 서경압록부다.“
한나라 말기의 고구려 환도현이고 당나라 때 발해의 서경압록부는 감숙성이다. 그런데 청나라 말기에 감숙성에 있었던 통화, 회인 두 현을 산서성 북부에 옮겨서 설치했고 광서제(1875년∼1908년) 때 산서성의 회인현을 나누어 집안현을 설치했다는 뜻이다. 아무튼 신만주 요녕성은 1927년에 설치했으므로 고구려 때의 집안은 신만주가 아니다.

“중화민국 초에는 봉천 동변도인데 지금은 요녕성이다.”
중화민국(1911년∼1927년) 때 구만주에서 봉천성, 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동북3성)을 차례로 만들어서 1차로 산서성과 하북성 북부로 옮겼다가 다시 2차로 1927년에 신만주로 옮겨서 역사를 조작했는데 1927년-1931년에 지리지 기록당시는 “지금은 요녕성이다“라는 뜻이다.
“수암주 동변지”, “봉천 흥경부 소속”, “봉천동변도 소속” 이 3가지도 감숙성에서 산서성으로, 산서성에서 신만주로 이동했으므로 고조선과 고구려는 감숙성, 산서성, 신만주 3개소에 다 있는 해괴한 역사가 되었다. 그래서 환단고기, 고구려, 백제, 신라본기는 현대지명으로 쓴 일제의 작품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일제가 현대에 조작한 가장 마지막 위치에 있는 역사를 우리역사라고 한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인가?!
신만주는 1905년부터 지명을 이동하기 시작했으므로 1500년 전의 고구려역사에 해당될 수 없다.

★여기서 집안지역의 지리적 조건을 살펴보면,
원래의 고구려 환도산에서는 각각 1천 여리의 3대강인 비류수(압록강), 패수, 조수(潮水)가  나온다. 또 환도성과 국내성이 있다. 그런데 산서성 회인현 지역에는 환도산이 없고, 환도산에서 나오는 1천 여리의 3대강인  비류수(압록강), 패수, 조수가 없으며, 환도성과 국내성이 없다. 현재의 신만주 요녕성 집안지역도 비류수(압록강), 패수, 조수가 없다. 그러므로 중국 산서성과 신만주 요녕성은 두 곳 다 가짜다. 광개토왕비문이 새겨진 비석도 일제가 이동 조작한 가짜다. 한반도 압록강은 약 6번 이동하여 조작된 가짜이다.
          (유우찬저 “환단고기단군세기검토서” 참고)
고구려 집안의 위치(사서성 대동부 서쪽)



※그림설명:
중국산서성 북쪽 회인현을 나누어 통화, 집안, 환인을 설치했으므로 중국 산서성에서는 집안, 환인, 통화가 한 곳에 붙어있다. 그런데 만주 요녕성에서는 각각 멀리 떨어져 있다. 평양은 산동성 북쪽 황하건너 하북성(이동조작한 낙랑군) 남부에 있다.

★역사는 역사학의 원칙인 역사적조건, 지리적조건, 환경적조건 등으로 검토하여 결정한다. 단순히 책만 가지고 이러 쿵 저러 쿵 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학문으로서 진실을 외면한 사상적 몰이 배들에게 휩쓸리기 쉽다.
                               -----한국상고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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