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주문제 누가 고구려를 우리역사라고 하는가?(2)
한국사의 실체:
1. 이 발표는 한, 중, 일 3국의 15억 인구중에서 최초로 필자가 20여년의 피땀흘린 연구 끝에 발견하고, 찾아내고, 추적한 것이므로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일제가 만들어준 기존의 역사만 알고 진실을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깊이 새겨주기를 희망한다.
2. 만주는 원래의 구만주와 신만주가 있는데 신만주(동북3성)는 1905년부터 1932년까지 중국의 지명을 옮겨서 구만주의 역사를 통째로 이동 조작했다. 아시다(한반도)는 일제가 중국의 지명을 옮겨서 역사를 통째로 이동하여 조작했다.
일제시대의 신만주와 아시다(한반도)는 일본의 점령지 즉 일제의 영토다. 그러므로 이전의 토착역사를 말살하고 새로운 역사를 조작했으므로 한국사는 일본제국의 대륙사다. 식민지인 우리역사가 아니다. 이것을 전쟁에 패하여 버리고 간 쓰레기인데 미국 군정청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이승만 정부에 넘겨주었는데 진위여부에 대한 검토 없이 그대로 수용하여 세뇌시킨 것이 현재의 한국사다. 이것을 한국인들은 진짜역사라고 한다. 그러므로 한국은 영토만 독립했고 역사문화정신은 지금도 일제의 식민 그대로 살고 있다. 만약 기존의 역사를 고집한다면 한국 국민들은 아침저녁으로 천황만세를 외치며 존경해야 된다.
3. 중국 땅의 지명에는 주나라 때부터의 과거연혁이 다 나오는데 신만주와 한반도가 한나라 때부터 중국 땅이라고 했는데도 지명에는 과거연혁이 전혀 없이 일제 때 이동된 지명만 있다. 그래서 현재 한국의 모든 역사책이 조작되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4. 환단고기와 삼국사기는 중국사기인데 일제가 한반도역사로 둔갑시키기 위해 새로 쓴 책으로서 실제로는 우리국사가 아니다. 그래서 일제시대에 약 400만명의 대한제국민을 한반도로 이민시켰는데 이들이 가지고온 책들 즉 현재 우리역사라고 하는 것들이 한반도역사가 아니고 중국의 역사라는 것이 들통날까봐 일제는 모든 역사서를 수거하여 불태우고 일부는 가져갔다. 그런데 사대주의와 식민주의에 길들여져서 이 진실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없다.
5. 고구려, 백제, 신라는 중국 본토에 있었는데 중국과 일제가 만주와 아시다(한반도)로 옮겨놓고 만주를 중국 땅이라고 주장하면서 동북공정으로 만주를 가져간 것이다. 이에 고구려, 백제, 신라를 중국 땅으로 돌려놓으면 만주와 아시다(한반도)는 온전히 우리 땅이 된다.
6. 이제 정리해야 될 때가 되었다고 본다.
----------------------------------------------------------
2). 고구려 통화, 환인의 위치(중국지리지기록 소개)
1. 통화현(通化縣)(중국고금지명대사전):
"수나라가 설치했는데 당나라가 폐했다. 5대시에 옮긴 곳이 소봉현인데 통화로 고쳤다. 명나라 초에는 성이다. 옛 치소가 사천성 리번현 동쪽에 있고 지금은 통화리다.
⦿청나라 수암주 동변 땅이다. 광서간에 나누어 통화현을 설치했다. 치소는 두도강이고 봉천 흥경부 소속이다. 중화민국 때는 봉천 동변도다.(隋置. 唐廢. 五代時移小封縣於此 . 仍改曰通化. 明初省. 故治在今四川理番縣東.
⦿淸岫巖州東邊地. 光緖間析置通化縣. 治頭道江. 屬奉天興京府. 民國屬奉天東邊道.)“
(해설)
“⦿청나라 수암주 동변 땅이다. 광서간에 나누어 통화현을 설치했다. 치소는 두도강이고 봉천 흥경부 소속이다. 중화민국 때는 봉천 동변도다”
중화민국(1911년∼1927년) 때 구만주에서 봉천성, 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동북3성)을 차례로 만들어서 1차로 산서성과 하북성 북부로 옮겼다가 다시 2차로 1927년에 신만주로 옮겨서 역사를 조작했는데 1927년-1931년에 지리지 기록당시는 “지금은 요녕성이다“라는 뜻이다.
“수암주 동변지”, “봉천 흥경부 소속”, “봉천동변도 소속” 이 3가지도 감숙성에서 산서성으로, 산서성에서 신만주로 이동했으므로 고조선과 고구려는 감숙성, 산서성, 신만주 3개소에 다 있는 해괴한 역사가 되었다. 그래서 환단고기, 고구려, 백제, 신라본기는 현대지명으로 쓴 일제의 작품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일제가 현대에 조작한 가장 마지막 위치에 있는 역사를 우리역사라고 한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인가?!
신만주는 1905년부터 지명을 이동하기 시작했으므로 1500년 전의 고구려역사에 해당될 수 없다.
청나라 광서제 때(1875-1908년) 산서성 회인현을 나누어 통화현을 설치했다. 그런데 중화민국 때(1911∼1927년) “통구“로 이름을 바꾸어서 만주요년성으로 옮긴 것이다.
(그림) 최초의 길림성은 두만강과 백두산 북쪽이다. 지금은 백두산 서쪽이다.
독자들은 동북3성이 언제 생겼는지 만 알아도 역사를 가지고 왈가왈부하지 않을 것이다.
2. 환인현(桓仁縣)(중국고금지명대사전):
“원래 수암주 동변지, 청나라 광서간에 회인현을 나누어 설치했다. 치소는 육도하(六道河)인데 봉천 흥경부 소속이다. 민국 때 환인으로 개명했다. 옛 발해 환주이고 봉천동변도 소속이다.(原爲岫巖州東邊地. 淸光緖間析置懷仁縣. 治六道河. 屬奉天興京府. 民國改名桓仁. 以古爲渤海桓州. 故名. 屬奉天東邊道.)”
(해설)
“청나라 광서간에 회인현을 나누어 설치했다.“, ”민국 때 환인으로 개명했다. “
청나라 광서제 때(1875년∼1908년) 산서성 회인현을 나누어 어떤 현(환도현 추정)을 설치했는데 중화민국 때((1911년∼1927년) 환인으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뜻이다. 회인현은 그 자리에 두고 환인을 신만주요년성으로 이동했다. 발해 땅은 구만주인 섬서성과 감숙성이다. 그러므로 발해환주와 봉천동변도도 이동 조작한 것이다.(“환단고기 단군세기 검토서“ 참고)
고구려 집안, 통화, 환인의 위치
※그림설명:
중국산서성 북쪽 회인현을 나누어 통화, 집안, 환인을 설치했으므로 중국 산서성에서는 집안, 환인, 통구가 한 곳에 붙어있다. 그런데 만주 요녕성에서는 각각 멀리 떨어져 있다.
★역사는 역사학의 원칙인 역사적조건, 지리적조건, 환경적조건 등으로 검토하여 결정한다. 단순히 책만 가지고 이러 쿵 저러 쿵 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학문으로서 진실을 외면한 사상적 몰이 배들에게 휩쓸리기 쉽다.
-----한국상고사연구회----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COMMENT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등 유해한 댓글은 관리자에 의해 삭제 될 수 있습니다.
( / 2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