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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주문제 누가 백제를 우리역사라고 하는가?
  • 작성자 : hanbark33
  • 작성일 : 2020.08.31
  • 조회수 : 457

86주문제 누가 백제를 우리역사라고 하는가?(2)

 

1. 이 발표는 한일 3국의 15억 인구 중에서 최초로 필자가 20여년의 피땀흘린 연구 끝에 발견하고찾아내고추적한 것이므로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일제가 만들어준 기존의 역사만 알고 진실을 아는 사람이 없다그러므로 독자들은 깊이 새겨주기를 희망한다.

 

2. 1910년 일제가 조사한 아시다(한반도인구는 1300만 명이었다그러므로 국가도 있었고왕도 있었고역사도 있었을 것이다그런데 일제는 이것을 깡그러 말살시켰다.

그리고 일제는 1911년부터 1920년까지 10년 동안 중국 땅에 있었던 대한제국 국민 약 400만 명을 한반도로 이민시켰는데 일제는 그들이 가지고 온 역사를 신만주와 아시다(한반도)에 밎추어서 조작한 다음에 이것이 너의들의 역사다고 주었는데 한국은 이것을 받아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3. 민족단체라는 허울을 쓰고 고조선이 우리역사이고 단군이 국조라고 하는 것은 일제가 조작한 역사를 고수하는 것이니 일제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하게 하는 것이다.

 

4. 한국사는 중국사를 섭렵하지 않고서는 밝힐 수 없다왜 내나라 역사인데 남의나라 역사를 섭렵해야 밝힐 수 있는가이것이 바로 한국사가 가짜라는 확실한 증거다.

 

5. 세상에는 진실과 거짓이 있고 강대국과 약소국이 있다거짓은 진실을 덮고 있고강대국들은 약소국의 역사와 문화를 마음대로 요리했다한국의 경우 일제가 만들어준 것으로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으므로 이제 정리해야 될 때가 되었다고 본다. -----한국상고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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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제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기록(유우찬 저서 한국사검토서” 560. 50,000)

 

삼국사기와 중국사기는 백제 시조가 소서노온조비류구태 등 네 사람이 나오는데 하나의 나라로 혼합하여 조작편집하여 한반도 백제사로 둔갑시킨 것이다.

 

1. 삼국사기백제본기

비류와 온조는 북한산 부아악에 올라 살 곳을 살폈다고 하고,

고주몽의 둘째부인 소서노의 아들 온조는 하남위례성비류는 해빈의 미추홀로 가서 나라를 세웠다“. 고 했다.

(해설)장자 비류가 대방백제인데 뒤에 섬서성과 호북성 즉 중국 중앙지를 차지한 나라이므로 비류를 죽은 것으로 하고 중국 중앙지는 원래부터 중국의 나라들이 있는 것으로 조작했다.

 

② 북부여왕 해부루의 서손이고 졸본 연타발의 딸 소서노의 아들 비류왕이 시조다소서노가 주몽의 왕비가 되었다가 주몽의 첫부인 아들 유리가 왕위를 이으니 아우 온조와 일행을 거느리고 패수(浿水)와 대수(帶水)를 건너 미추홀에서 살았다.”

(해설)미추홀이란 주나라 때 제후국인 추국(鄒國)이 사천성 성도서쪽에 아미산골자기에 있었으므로 아미산의 와 추국의 를 합쳐 만든 이름이 미추골이다온조의 나라로 추정된다.

소서노는 감숙성 천수지역 일대의 어하라를 고구려에 주고 천수 남쪽 패수(현재의 위수)를 건너면 파총산백이 있고 파총산 동서에서 나오는 두 줄기 물이 허리띠 모양이어서 대수(帶水)라고 한 것이며 이 동서 대수 중앙에 지금 감숙성 성현(成縣)이 있는데 이곳이 대방군 땅 중앙이다.

 

③ 북사(北史)와 수서(隋書)에 이르기를

동명의 후예에 구태(仇台)가 있었는데 처음에 대방고지에 나라를 세우니 요동태수 공손도가 딸을 아내로 주어 드디어 동이가 강성하게 되었다.”

(해설)“무덕7(당고조: 624조공을 바치니 고조가 사신을 보내 대방군왕백제왕(帶方郡王百濟王)으로 책봉하였다.“(구당서)고 하여 대방 땅에서 누군가가 백제를 건설했음을 알 수 있다그런데 대방 땅의 주인이 바류와 위구태 두 사람인데 비류는 이미 대방을 떠나 섬서성에 안착한 후이므로 위구태의 대방백제 뿐이다.

 

2. 삼국사기고구려본기의 구태(仇台)에 대한 기록을 보면:

“(태조대왕 16(68) 8월에 갈사왕의 손자 도두(都頭)가 나라를 들어 항복하여 우태(于台)로 삼았다.”

“(태조대왕 69: 121) 12월에 왕은 마한예맥의 군사 1만여 기를 거느리고 진군하여 현토성(위치불명)을 포위하자 부여왕(夫餘王후동부여왕)이 아들 위구태(尉仇台)를 파견하였다그는 군사 2만 명을 거느리고 한나라 군사와 힘을 합쳐 대항하므로 아군은 대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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