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5주문제 누가 백제를 우리역사라고 하는가?(10)
1. 이 발표는 한, 중, 일 3국의 15억 인구 중에서 최초로 필자가 20여년의 피땀흘린 연구 끝에 발견하고, 찾아내고, 추적한 것이므로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일제가 만들어준 기존의 역사만 알고 진실을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깊이 새겨주기를 희망한다.
2. 1910년 일제가 조사한 아시다(한반도) 인구는 1300만 명이었다. 그러므로 국가도 있었고, 왕도 있었고 역사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일제는 이것을 깡그러 말살시켰다.
그리고 일제는 1911년부터 1920년까지 10년 동안 중국 땅에 있었던 대한제국 국민약 400만 명을 한반도로 이민시켰는데 일제는 그들이 가지고 온 역사를 신만주와 아시다(한반도)에 밎추어서 조작한 다음에 “이것이 너의들의 역사다”고 주었는데 한국은 이것을 받아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3. 민족단체라는 허울을 쓰고 고조선이 우리역사이고 단군이 국조라고 하는 것은 일제가 조작한 역사를 고수하는 것이니 일제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하게 하는 것이다.
4. 한국사는 중국사를 섭렵하지 않고서는 밝힐 수 없다. 왜 내나라 역사인데 남의나라 역사를 섭렵해야 밝힐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한국사가 가짜라는 확실한 증거다.
5. 세상에는 진실과 거짓이 있고 강대국과 약소국이 있다. 거짓은 진실을 덮고 있고, 강대국들은 약소국의 역사와 문화를 마음대로 요리했다. 한국의 경우 일제가 만들어준 것으로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으므로 이제 정리해야 될 때가 되었다고 본다. -----한국상고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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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5도독부: 웅진(유우찬 저서 “한국사검토서” 560면. 50,000원)
당나라가 백제 땅에 설치한 5도독부는 바로 통일신라 땅이 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없다고 해야 맞을 것으로 본다. 신라가 평양 이남을 차지했다는 것은 고구려 평양이 아니라 엣날부터의 평양이란 지명인 산서성 남부 후마지역을 기록한 것이다. 뒤이어 발해가 고구려 땅을 차지했으므로 청해성의 당나라는 중국 본토에 들어올 기회가 전혀 없다. 당나라가 서안에 있었다고 하려면 고구려, 신라, 백제를 중국 외곽으로 밀어내거나 한반도로 이동시켜야만 가능하다.
통일신라가 백제 땅을 흡수했으므로 통일신라는 동서 3천리, 남북 4천리의 광대한 땅인데 한반도 평양 이남전체라고 해도 통일신라 땅의 4분의 일도 못되므로 비교가 되지 못하며, 발해는 북방의 나라일 뿐이다. 현재 당나라 역사를 서안과 낙양에 도읍하고 찬란한 실크로드문화를 누렸다는 것은 청해성과 감숙성 서부지역의 실크로드에 있었기 때문인데 고구려, 신라, 백제 역사를 삭제하여 한반도로 떠넘기고 중국 중앙부를 모두 당나라역사로 둔갑시켰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허황된 소설인가!
①“백제는 본래 5부, 37군, 200성, 76만호(대략 500만명)였는데 당나라는 웅진(熊津), 마한(馬韓), 동명(東明), 금련(金漣, 金蓮, 金遠), 덕안(德安)의 5도독부를 설치하여 각 주와 현을 거느리게 했다”(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 20년조, 신당서, 태평환우기)
②“백제는 선조가 개마한(蓋馬韓)의 속국이고 부여의 별종이다. 구태가 있었는데 대방에서 나라를 시작했다. 그 땅은 신라와 경계를 다투는 곳이다. 북은 고구려와 접하고 서, 남은 다 대해다. 동서450리, 남북900리이고 치소는 고마성이다. 치소 밖에 5방이 있는데 중방은 고사성(古沙城), 동방은 득안성(得安城), 남방은 구지하성(久知下城), 서방은 도선성(刀先城), 북방은 웅진성(熊津城)이다. --방을 다스리는 군사는 1200명 이하 700명 이상이다.--“(周書, 북사).
✳ 이 두 가지 기록을 중심으로 살펴보았으나 5방의 지명 중 웅진과 득안은 찾을 수 있고 마한은 추정할 수 있으며, 동명은 하남성 동북부와 하북성 남부로 이동조작된 것은 있으나 진짜위치를 찾을 수 없다. 금련은 찾을 수 없다. 고구려는 고조선과 북부여 땅을 계승하여 다소의 지명들을 찾을 수 있지만 비류백제와 신라는 중국 중앙지의 나라여서 한반도로 이동시키고, 모든 지명도 이동시킨 후 중국 땅에서는 모두 지워 없앴기 때문에 찾기가 매우 어렵지만 여러 기록과 근거를 찾아 살펴보았다.
1. 웅진(熊津):
①이씨조선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충청도 공주목:
“본래 백제 웅천(熊川)으로 문주왕이 북한산성(섬서성 함양지역으로 추정)에서 천도했다. 성왕 때 남부여(사비성: 하남성 당하북쪽)로 옮겼다. 소정방과 김유신이 백제를 멸하고 웅진도독부를 두었다. 후에 신라가 다 점유하여 웅천주로 하여 도독을 두었고, 경덕왕이 웅주로 고쳤고, 고려 태조 23년에 공주목(公州牧)으로 고쳤다. 성종 14년에 절도사를 두어 안절군(安節軍)이라 하고 하남도(河南道)에 속하게 했다. 본조 세조 때 진(鎭)을 두었다.”
①-1. 공주하(公主河):
하남 섬현(陝縣)동북40리 삼문산(三門山: 삼문협) 좌측이다.
※공주(公州)를 공주(公主)로 변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화산 동쪽으로 하남성 섬현(陝縣)은 삼문협 바로 서남쪽에 있다. 주나라 때의 한(韓)나라 두 번째 도성이라고 조작된 곳이다.
①-2. 하남도(河南道):
“당 정관 초 설치. 황하 남쪽이라서 이름이 되었다. 동쪽은 바다, 서쪽은 함곡관, 남쪽은 회수(淮水), 북쪽은 박하(薄河)다. 지금 하남성과 산동성의 황하 이남이고 강소성, 안휘성의 회수 이북이다. 치소가 지금 하남성 낙양현의 치소다.”
(해설)
당나라 정관초는 627년이다. 대략 1600년 전이다. 이 시기에 안휘성 회수 동쪽은 바다와 습지였으므로 중국의 동해였다는 기록이다. 지금의 중국동해와는 대략 500리 안쪽까지 바다, 호수, 습지 땅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한반도도 현재 해안선이 내륙으로 100여리 안쪽에 있었다고 보면 평양, 공주, 부여, 김해는 바다나 호수, 습지였으므로 고구려, 백제, 신라, 가락국의 도읍이 존재할 수 없으며 약 1500년 전후에 평야지가 점차 확장되는 과정에서 농사가 풍요를 이루어 새로운 강자가 부상하여 몽고에서 내려온 골족의 나라를 물리치고 새로운 우리나라 백제국(伯濟國)을 건설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박하(薄河)는 산서성 동남 로성(潞城) 북에서 하남성 북쪽 안양 북으로 흐르는 장수(漳水, 漳河)다.
②삼국사기 지리지에는 “신라경덕왕이 개명했는데 지금의 신풍현이다(景德王改名今新豊縣)”(잡지 제5 지리3 熊州)
②-1. 신풍현을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서 찾아보면:
임동현(臨潼縣): 웅주, 웅진
“춘추 때 여융국이다. 진나라 여읍이다. 한나라가 신풍현을 설치했다. 당나라가 나누어서 회창현을 설치했다. 후에 신풍성으로 하고 회창을 소응으로 바꾸었다. 송나라가 임동으로 고쳤다. 명나라, 청나라 때는 다 서안부소속이다. 중화민국 초에는 관중도 소속이다. (春秋驪戎國. 秦爲驪邑. 漢置新豊縣. 唐析置會昌縣. 尋省新豊. 改會昌曰昭應. 宋改曰臨潼. 明淸皆屬陝西西安府. 民國初屬關中道)“
(해설)
여융, 여읍 등의 여(驪)는 치우의 여국(黎國), 단군 둘째아들 고부소의 고려(高麗, 高黎) 또는 구려(句麗, 句黎), 고구려(高句麗), 고려(高麗) 등의 나라 이름들이 이동하여 서안일대에서 사용되었는데 거의가 북방민족이 남하한 민족으로서 모두 함께 통용한다. 그러므로 서안지역 일대는 단군시대부터 고려까지의 려족(麗族)과 관련성이 있는데 후세에는 동서의 혼합지역으로서 섬서성은 동쪽의 고씨족과 서쪽의 여족이 충돌하고 혼혈된 중간지대로 변했다.
이 지역을 모두 중국의 나라들이 있었던 것으로 조작했다.
※관중도:
중화민국 초에 관중도라고 한 것은 서안지역이 동관(함곡관)과 서관(보계)의 사이에 있기 때문에 두 관문의 사이에 있다고 해서 관중도라고 한 것이다.
② “흠정만주원류고 권9 백제 여러 성”에 언급된 것을 참고하면 웅진은 전주 서북쪽에 있고 백제와 고구려의 국경이 갈라지는 곳“이라고 하였는데 백제와 고구려가 한강(위수)을 경계 삼았을 때를 말한 것으로서 호북성 전주의 북쪽 또는 서북쪽이니 비숫하다.
③앞의 북사의 백제 5방에서는 “백제 북방에 있다”고 했는데 웅주가 백제영토의 북방이니 맞다.
④또 조선지리지 한성부편의 한강(漢江)조에서
“강의 남쪽은 옛날 백제요, 백제의 동쪽은 엣날 신라인데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는 당나라의 유적이다. ---“옛 나루터인 웅진(熊津)인데 --- ” 라고 했는데 도성인 한성이 한강의 남쪽이고 섬서성은 백제이며 백제동쪽인 하남성, 강소성, 안휘성 쪽이 조작한 신라이니 정확하다. 웅진도독부와 나루터가 이씨조선의 도읍인 서안지역에 있으니 매우 정확하다. 원래는 백제 동쪽의 안라인데 신라로 역사를 조작한 것이지만 일단 기록상으로는 맞다.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는 당나라의 유적이다.”
당나라가 백제를 멸했으니 당나라 유적이 있을 수 있다. 통일신라가 점유하게 되었다. 서안 북쪽 강 건너 고구려 장안성평양인 함양에 안동도호부, 서안동쪽 100여리 의 백제 땅에 웅진도독부를 설치했는데 당나라가 서안에 도읍했다면 이런 것을 따로 설치할 필요가 없이 서안에서 직접 관장할 수 있는 주변이다. 그러므로 당나라는 서안에 오지 않았다는 분명한 증거가 된다.
섬서성의 한강(위수) 이남의 백제 땅에 웅진도독부를 처음에는 승전국인 당나라가 설치했지만 얼마 안되어 통일신라가 점유하여 웅주(熊州)를 두었다. 현재의 중국기록들이 중국 중심으로 모두 조작되어서 믿을 수 없는 수준임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백제 웅진성이 있었던 화산 동쪽지역에 통일신라가 서원경(西原京)을 설치했는데 서원은 지금지도에서 화산 동쪽, 황하 남쪽의 령보(靈寶)지역(지명사전 P.352 참고)으로 본다.
※웅주의 웅진성은 중국 서안동쪽의 임동현지역.
웅진도독부는 웅주와 남부여(하남성 당하북쪽) 중 하나이다.
★역사는 역사적조건, 지리적조건, 환경적조건 등으로 검토하여 결정한다. 단순히 책만 가지고 이러 쿵 저러 쿵 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학문으로서 진실을 외면한 사상적 몰이 배들에게 휩쓸리기 쉽다.
-----한국상고사연구회 회장 혁신파역사가 유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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