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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주문제 누가 백제를 우리역사라고 하는가?(11)
  • 작성자 : hanbark33
  • 작성일 : 2020.11.16
  • 조회수 : 431

제96주문제 누가 백제를 우리역사라고 하는가?(11)


1. 이 발표는 한, 중, 일 3국의 15억 인구 중에서 최초로 필자가 20여년의 피땀흘린 연구 끝에 발견하고, 찾아내고, 추적한 것이므로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일제가 만들어준 기존의 역사만 알고 진실을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깊이 새겨주기를 희망한다.


2. 1910년 일제가 조사한 아시다(한반도) 인구는 1300만 명이었다. 그러므로 국가도 있었고, 왕도 있었고 역사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일제는 이것을 깡그러 말살시켰다.

그리고 일제는 1911년부터 1920년까지 10년 동안 중국 땅에 있었던 대한제국 국민약 400만 명을 한반도로 이민시켰는데 일제는 그들이 가지고 온 역사를 신만주와 아시다(한반도)에 밎추어서 조작한 다음에 “이것이 너의들의 역사다”고 주었는데 한국은 이것을 받아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3. 민족단체라는 허울을 쓰고 고조선이 우리역사이고 단군이 국조라고 하는 것은 일제가 조작한 역사를 고수하는 것이니 일제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하게 하는 것이다.


4. 한국사는 중국사를 섭렵하지 않고서는 밝힐 수 없다. 왜 내나라 역사인데 남의나라 역사를 섭렵해야 밝힐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한국사가 가짜라는 확실한 증거다.


5. 세상에는 진실과 거짓이 있고 강대국과 약소국이 있다. 거짓은 진실을 덮고 있고, 강대국들은 약소국의 역사와 문화를 마음대로 요리했다. 한국의 경우 일제가 만들어준 것으로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으므로 이제 정리해야 될 때가 되었다고 본다. -----한국상고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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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5도독부: 덕안, 마한(유우찬 저서 “한국사검토서” 560면. 50,000원)


2. 덕안(德安): 중국 호북성 종상으로 비정한다.

백제 5방에서의 이름이 비슷한 최초의 득안이다.

①안륙부(安陸府)(중국고금지명대사전):

원, 명 때는 안주(安州), 청나라 안륙부인데 치소가 지금 종상현(鍾祥縣: 호북성 중앙)이다.

②안륙군(安陸郡):

수, 당 때는 안주와 안륙군을 번갈아 썼고 송나라가 덕안부를 설치했는데 치소가 안륙현이다.

③안륙현(安陸縣):

한나라 안륙현이다.

북쪽(현재 종상의 동북 安陸)으로 옮겼는데 언제 옮겼다는 기록은 없다. 청나라가 덕안부 치소로 썼다.

④종상현(鍾祥縣):

한나라 경륙현(竟陸縣) 땅에 명나라가 종상현을 두어 승천부(承天府)의 치소로 썼다. 청나라가 안륙부의 치소로 썼다.

(해설)최초의 안륙(종상)은 호북성 가장 중앙에 위치하는데 종상으로 바꾸고, 인륙을 동북쪽 덕안자리로 옮겼다. 송나라 때는 현재의 양자강변의 무한에 치소를 둔일도 있다. 그러니까 덕안부의 치소는 구안륙과 신안륙이 다 사용되었으므로 신, 구위치 중에서 어느 것이 당나라 덕안도독부 자리인지는 가려내기 어렵지만 필자의 견해는 한나라 때부터 행정부의 치소로 썼고, 군사주둔지로 사용했고, 송나라가 덕안으로 개명했다고 했는데 당나라 때의 이름을 후세인 송나라 때로 바꾸어 기록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호북성 중앙에 위치한 즉 지금의 종상으로 비정한다.

바로 전주이씨의 농장이 전라북도만큼 넓은데 그 농장의 중앙에 해당한다.


3. 마한(馬韓): 중심지는 중국 사천성 성도

마한은 번조선왕 기준이 위만에게 망하고 건너가서 건국한 사천성인데 주나라 때는 월(越)땅이 되었다가 한나라에서 땅이 대단히 광대하다고 하여 익주(益州)로 고쳤다. 사천성은 익산금마와 남쪽 광서성 안남신라의 선화공주 이야기의 무대로 추정된다. 성도 서쪽의 대읍이 단군이 비군 (卑君)때 다스린 읍락이고 현재의 성도는 후세에 번창한 도시다.

번조선 왕 기준이 위만에게 망한 후 감숙성 천수서남의 기성(箕城)에서 성현지역으로 가서 배를 타고 도망간 금마가 사천성 성도지역인데 대방 땅에서 서한수를 타고가면 곧바로 성도지역에 도착한다.


①조선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전라도 익산편을 보면:

본래 마한국이다백제 시조 온조가 병합한 후에 금마저라 불렀다. 신라 신문왕이 금마군으로 고치고 고려조에 와서 전부에 부속 시켰다. 충혜왕 때 익주라고 했는데 본조 태종 13년에 지금이름(익산)으로 고치고 군으로 만들었다” 고 기록되어 있고 군명으로서는 금마(金馬)익주(益州) 두 가지가 있다. 중국 한나라 익주 땅임을 알 수 있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서 금마와 익주를 찾아보면:

②금마하(金馬河)

성도(成都) 서남쪽 신진(新津)과 대읍(大邑) 사이에 있는 옛 숭경인데 당나라가 백제를 멸한 후에 금당현(金堂縣)으로 바꾸어 성도 동북으로 옮겼다. 5대 진(晉)나라 때는 한성(漢城)이었다.


③익주(益州):

“한나라가 설치했는데 지금 사천성 광한현 치소다. 후에 면죽으로 옮겪는데 지금 사천성 덕양현 북쪽 35리에 있다. 다시 성도현 치소로 옮겼다. 촉한과 진나라 초에는 그대로 했다. 후에 치소를 파군, 파동으로 옮겼는데 지금 사천성 봉절현 동북에 있다. 후에 성도로 환원했다. 송나라는 그대로 했다. 당나라는 다시 익주로 했는데 촉군으로 고쳤다가 다시 익주로 했다가 또 성도부로 했다.(漢置今四川廣漢縣治. 後徙治緜竹.在今四川德陽縣北三十五里. 復爲成都縣治. 蜀漢及晉初因之. 後治巴郡又移治巴東, 在今四川奉節縣東北. 後還治成都. 宋因之. 唐復置益州. 改曰蜀郡復爲益州.又改成都府)“

※위의 3가지 검토로 마한도독부는 사천성 성도로 비정한다.

(유우찬 저 “삼국사기검토서” 참고)


★역사는 역사적조건, 지리적조건, 환경적조건 등으로 검토하여 결정한다. 단순히 책만 가지고 이러 쿵 저러 쿵 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학문으로서 진실을 외면한 사상적 몰이 배들에게 휩쓸리기 쉽다.

-----한국상고사연구회 회장 혁신파역사가 유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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