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7주문제 누가 백제를 우리역사라고 하는가?(12)
1. 이 발표는 한, 중, 일 3국의 15억 인구 중에서 최초로 필자가 20여년의 피땀흘린 연구 끝에 발견하고, 찾아내고, 추적한 것이므로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일제가 만들어준 기존의 역사만 알고 진실을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깊이 새겨주기를 희망한다.
2. 1910년 일제가 조사한 아시다(한반도) 인구는 1300만 명이었다. 그러므로 국가도 있었고, 왕도 있었고 역사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일제는 이것을 깡그러 말살시켰다.
그리고 일제는 1911년부터 1920년까지 10년 동안 중국 땅에 있었던 대한제국 국민약 400만 명을 한반도로 이민시켰는데 일제는 그들이 가지고 온 역사를 신만주와 아시다(한반도)에 밎추어서 조작한 다음에 “이것이 너의들의 역사다”고 주었는데 한국은 이것을 받아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3. 민족단체라는 허울을 쓰고 고조선이 우리역사이고 단군이 국조라고 하는 것은 일제가 조작한 역사를 고수하는 것이니 일제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하게 하는 것이다.
4. 한국사는 중국사를 섭렵하지 않고서는 밝힐 수 없다. 왜 내나라 역사인데 남의나라 역사를 섭렵해야 밝힐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한국사가 가짜라는 확실한 증거다.
5. 세상에는 진실과 거짓이 있고 강대국과 약소국이 있다. 거짓은 진실을 덮고 있고, 강대국들은 약소국의 역사와 문화를 마음대로 요리했다. 한국의 경우 일제가 만들어준 것으로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으므로 이제 정리해야 될 때가 되었다고 본다. -----한국상고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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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5도독부: 동명과 금련
(유우찬 저서 “한국사검토서” 560면. 50,000원)
4). 동명(東明): 감숙성 남부 성현동쪽 봉현∼태백시
동명의 종류:
1. 『고두막한이 을미년(BC.86) 한나라 소제(昭帝: BC.87-74)때 부여의 옛 도읍을 차지하여 동명국(東明國)이라 하니 이것이 곧 신라의 옛 땅이다』(삼성기 상편)
(해설)부여의 앳 도읍: 감숙성 무위(武威)
2. 『계유 13년(BC.108년)은 단군 고우루 13년이다. 제는 호탕하고 용맹하여 군사를 잘 다루었고, 북부여가 쇠약해짐을 보고 세상을 구할 뜻을 세워 졸본에서 즉위하고 동명이라 했다.』(북부여 하)
(해설)
삼성기와 후북부여기는 22년 정도의 시간차이가 있으나 사건은 일치하고 있다. 그런데 동명이 부여의 옛 도읍과 졸본 두 군데로 나타난다. 졸본의 위치는 찾을 수 없다.
지금지도에서 감숙성 북부 황하의 한 구간을 두만강이라고 하며 후세의 솔빈강이다. 한문 졸(卒)과 솔(率)자는 비숫하니 혼동하거나 왜곡이 쉽다. 원래는 임검(壬儉)인데 후세에는 “왕검(王儉)‘이라고 하는 것과 비숫하다. 이런식으로 추론하면 두만강이 졸본수가 된다. 그런데 도읍지 졸본은 다른 곳일 수도 있다.
동명은 전북부여의 도성인 감숙성 요서의 무위(武威)가 첫 번째 동명이고 후북부여가 천도한 란주 서쪽의 금성이 두 번째 동명이다. 사로는 두 번째 동명에서 건국했다.
그런데 중국은 동명을 정반대 방향인 동쪽의 하북성과 하남성의 접경지역으로 이동시켰는데 역사무대를 통째로 옮겼기 때문이며 동시에 치우묘, 요- 순- 하나라 도읍지와 낙랑도 모두 이동하여 동쪽으로 조작된 것이다.
3. 고구려의 동명은 동명이 북부여왕이냐? 고주몽이냐? 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4. 백제 동명묘는 비류, 온조, 위구태 중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해설)
백제 동명묘는 천여리 동남쪽인 섬서성 서남 봉현이다. 다만 하북성에 고구려를 옮기고, 산동성에 백제(百濟)를 옮기고, 하남성 동북지역에 낙랑(서라벌)을 옮기고, 하남성, 안휘성, 강소성에 신라를 옮겨서 서쪽의 역사무대를 동쪽으로 이동 조작했기 때문에 동명도 따라서 이동된 것이다. 그러므로 전부 가짜로 기록되어있는 것이 중국사기다.
백제는 시조 원년(BC.18년) 동명왕묘를 세웠는데 후에는 시조 위구태에게 제사지냈다는 기록은(삼국사기 권32 잡지제1 제사조 및 隨書 참조) 중국편이 아닌 비류는 죽이고 온조는 한반도 백제로 이동조작하고, 중국편인 위구태를 살려놓기 위한 사대주의 기록이다. 그러므로 동쪽에서는 동명도독부를 설치했다고 기록되었어도 진짜가 아니라 가짜로 조작된 것이다.
대방 땅은 비류백제에서 위구태백제로 바뀌었으므로 백제최초의 동명묘를 건설한 곳으로 추정되는 감숙성 동남 섬서성과의 경계에 있는 성현(成縣) 동쪽의 봉현인데 여기는 21대 문자제 때 고구려 땅이 되었다. 그러므로 당나라 동명도독부로 비정할 수 있는 곳은 봉현에서 멀지않은 섬서성 태백시 주변지역으로 비정된다.
5. 신라의 동명은,
양무현(陽武縣 P.958)조에서
수, 당 때 하남성 양무현인데 청나라 때는 하남-하북 간에 있었고, 후위 때는 봉천 구 금주부 경계, 안휘성경계, 하남성 경계 등 3개소에 설치했다.
(해설)
3개소 중 후위 때 설치했다는 신라의 동명은 봉천 구 금주부(舊錦州府) 경계에 있는 것이 정설이며 지금의 감숙성 란주서쪽의 금성이다.
6. 동쪽으로 이동조작된 동명
참고로 이동 조작된 동명을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서 찾아보면,
①동명현(東明縣)(P.483):
옛 양무호유향에 한나라가 동혼현(東昏縣)을 설치했는데 왕망이 동명으로 개명했다. 진나라 때는 성(省)인데 송나라가 동명으로 했으며 하남성 개봉현 동북 20리다.
한나라 때 리호현(離狐縣), 당나라 남화현(南華縣), 금나라 때 동명(東明)인데 황하재해로 지금의 하북성 동명현 남쪽 30리의 남동명집으로 옮겼다. 명나라 때 운대집으로 치소를 옮겼는데 지금의 서동명집이다. 홍치간에 다시 설치한 곳이 대군집으로 지금치소이다. 청나라 때 하북성 대명부다.
(해설)
동명이 하남성 개봉동북에서 하북성 대명부 사이에서 여러 번 옮겨 다닌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동명을 설치했다는 곳은 큰 호수지역 이었다가 당나라 때부터 육지화가 되어서 송나라 때(960-1279년) 육지가 된 땅이므로 모두 서쪽에서 이동시켜서 조작한 가짜다.
5) 금련(金漣, 金蓮, 金遠):
필자는 금련(金漣)을 찾지 못했다. 옛 지명을 바꾸고 자취를 없앤 것으로 보인다.
삼국의 무대가 중국본토로 밝혀짐에 따라 우리역사가 아니라 일제가 일본제국을 위한 역사로 창조한 가찌역사라는 것이 드러났다.
※사로와 서라벌은 고조선의 번조선 땅이고, 서라벌은 한나라 때의 낙랑군이다. 서라벌은사로의 동쪽에 있는 땅인데 중국 동부의 안휘신라(안라) 동북으로 이동조작 한 것이다. 안라(安羅)를 신라로 고쳐서 사로사에 합쳐서 신라가 마치 처음부터 동부에 있었던 것처럼 조작된 것이다. 안라는 남쪽 안남신라로, 다시 한반도로 이동 조작했다. (유우찬 저 “삼국사기검토서”)
★역사는 역사적조건, 지리적조건, 환경적조건 등으로 검토하여 결정한다. 단순히 책만 가지고 이러 쿵 저러 쿵 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학문으로서 진실을 외면한 사상적 몰이배들에게 휩쓸리기 쉽다.
-----한국상고사연구회 회장 혁신파역사가 유우찬----
--------- 백제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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