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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만 외국인 노동자 정부가 외면하면...
  • 작성자 : 창강
  • 작성일 : 2011.12.20
  • 조회수 : 7667

따뜻한 일을 하는 사람의 모습을 아래에 올려봅니다.

 

- - - - -  아  래 - - - -

 

고대교우회보 <인터뷰>

 
<초대석> 200만 외국인 노동자 정부가 외면 … 편견과 비겁함 버려야
 
 


“현재 외국인 노동자의 모습은 백 년 전 우리 조상들의 모습” … 하와이, 멕시코,시베리아에서 일자리 찾던 우리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 이사장 이범증(사학64) 교우

 
 
[인터뷰] 2011-12-15
이범증 교우는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 이사장’이라는 명함은 이름만 올려놓은 것이고 모든 일은 대표인 한윤수 목사가 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인터뷰를 하며 이 교우는 자신의 생각들을 털어놓았다.

이 교우는 먼저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가 겪는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외국인센터는 연간 예산이 1억 원 전후입니다. 그 중 30%가 민간에서 조금씩 후원하는 이른바 개미 후원금입니다. 나머지는 한윤수 목사의 농가가 도시에 편입되며 보상금이 나왔던 것을 투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 외국인 노동자의 수는 공식적으로는 120만 정도다. 하지만 실제로는 2백만이 넘는다고 추정된다. 그 중 전국에서 수가 두 번째로 많은 곳이 바로 2만 5천이 사는 화성이다. “외국인 노동자의 처우는 불량하기 그지없습니다. 구타와 같은 인권문제, 임금 체불, 기타 법률적 제약 등의 문제가 산적했어요”

그는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사실 이들을 위한 노력은 정부가 해야 할 일입니다. 저는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역사학도로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 속에 한국이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지탱하는 산업들의 밑바닥을 형성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외국인 노동자들이라는 것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러나 정부 기관은 올해부터 자원봉사자 두 명의 월급 80만원조차 지원을 끊었다. 이 교우는 국회의원, 시장, 교수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어느 누구도 이를 해결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인노동자들은 부당한 처우들에 대해 신고도 하지 못하는 신세입니다. 운영비 문제로 많은 외국인노동자센터가 문을 닫았고, 외국인 노동자들 때문에 일자리가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한국 노동단체의 압력으로 정부는 눈과 귀를 닫은 상태지요”

이 교우는 자신이 이런 일을 하는 근본적 이유에 대해 우리 조상들이 백 년 전 이들과 똑같은 처지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 했다.

 

 

“1900년대 초 독립신문, 한성순보 등에 하와이, 멕시코, 시베리아 등에서 일할 노동자를 구하는 광고가 실렸어요. 지금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 노동자들처럼, 우리 조상들도 돈을 벌기 위해 해외로 나가 노예나 다름없는 취급을 당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우리 조상들이 당했던 것처럼 다른 나라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옳습니까?”

이 교우의 이런 신념은 특출한 가문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도 있다. 이 교우의 증조부는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냈고, 가문 모두가 경술국치 이후 만주로 떠나 독립운동을 했으며, 가문의 9명이 국가유공자로서 훈장을 받았다. 집안이 어려워 모교를 다니는 동안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거나 노숙을 했고, 등록금을 벌기위해 계속해서 일을 했다. 이 교우는 자기가 배운 그대로를 행할 뿐이라며, 훌륭하신 조상님들에 비하면 하잘 것 없는 일이라고 했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 편견과 비겁함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 “지금 이 사회는 조직폭력이 만연해있어요. 칼로 찌르는 그런 조직폭력이 아니라 자신들, 자신들과 관련된 이익에 열중하는 모든 집단들의 행동이 조직폭력입니다. 그 폭력에 휘둘리고 겁을 먹고 옳은 것을 옳다고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중간 입장을 고수하려는 지식인들도 반성해야할 것입니다”

겸손함과 굳은 심지를 동시에 가지며 옳다고 믿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이범증 교우의 모습이 바로 자유·정의·진리를 표방하는 진정한 고대정신이 아닐까 되짚어본다.
대담 : 박기범 편집국장 대리 정리 : 이재익 기자

이범증 교우는 …
이범증 교우는 고성 이씨가 종택 임청각 집안의 막내로 태어났다.

증조부는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 선생이며 3대에 걸쳐 9개의 건국훈장을 받을 정도로 우리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집안이다. 이 교우는 모교를 졸업하고 1972년 교단에 처음 발을 내디딘 후 75년 중앙중학교로 옮겨와 99년 교장으로 취임한 후 정년 퇴임했다.

이후 대학시절 알게 된 한윤수 목사와 함께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를 건립한 후 사회에서 소외받는 우리 이웃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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