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 초 독립신문, 한성순보 등에 하와이, 멕시코, 시베리아 등에서 일할 노동자를 구하는 광고가 실렸어요. 지금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 노동자들처럼, 우리 조상들도 돈을 벌기 위해 해외로 나가 노예나 다름없는 취급을 당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우리 조상들이 당했던 것처럼 다른 나라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옳습니까?”
이 교우의 이런 신념은 특출한 가문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도 있다. 이 교우의 증조부는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냈고, 가문 모두가 경술국치 이후 만주로 떠나 독립운동을 했으며, 가문의 9명이 국가유공자로서 훈장을 받았다. 집안이 어려워 모교를 다니는 동안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거나 노숙을 했고, 등록금을 벌기위해 계속해서 일을 했다. 이 교우는 자기가 배운 그대로를 행할 뿐이라며, 훌륭하신 조상님들에 비하면 하잘 것 없는 일이라고 했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 편견과 비겁함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 “지금 이 사회는 조직폭력이 만연해있어요. 칼로 찌르는 그런 조직폭력이 아니라 자신들, 자신들과 관련된 이익에 열중하는 모든 집단들의 행동이 조직폭력입니다. 그 폭력에 휘둘리고 겁을 먹고 옳은 것을 옳다고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중간 입장을 고수하려는 지식인들도 반성해야할 것입니다”
겸손함과 굳은 심지를 동시에 가지며 옳다고 믿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이범증 교우의 모습이 바로 자유·정의·진리를 표방하는 진정한 고대정신이 아닐까 되짚어본다.
대담 : 박기범 편집국장 대리 정리 : 이재익 기자
이범증 교우는 …이범증 교우는 고성 이씨가 종택 임청각 집안의 막내로 태어났다.
증조부는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 선생이며 3대에 걸쳐 9개의 건국훈장을 받을 정도로 우리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집안이다. 이 교우는 모교를 졸업하고 1972년 교단에 처음 발을 내디딘 후 75년 중앙중학교로 옮겨와 99년 교장으로 취임한 후 정년 퇴임했다.
이후 대학시절 알게 된 한윤수 목사와 함께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를 건립한 후 사회에서 소외받는 우리 이웃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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