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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愚草 斷想 18-4회, 벚꽃 유감
  • 작성자 : 문회목
  • 작성일 : 2021.04.02
  • 조회수 : 417


   <愚草 斷想 18-4, 벚꽃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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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꽃, 왕벚꽃을 사랑하자

      2018. 5

    文 會 穆

    全筆家

 

4월이면 전국 방방곡곡은 벚꽃으로 봄을 만끽한다. 벚꽃 계절이 오면 벚꽃에 대한 遺憾과 함께 우리 벚꽃에 대한 애틋함이 느껴진다.


가쓰라-태프트 밀약과 워싱턴 벚꽃

 

매년 3월말부터 4월 중순까지 워싱턴의 포토맥 강변의 벚꽃이 필 무렵 워싱턴의 벚꽃 축제가 벌어진다. 이곳에 벚나무가 심어진 데에는 일본을 좋아했던 미국 여행작가 싯모어(Eliza Ruhamah Scidmore)의 공이 크다. 그녀는 29세때인 1885년 일본을 방문한 이후로 벚꽃의 아름다움과 일본 문화에 흠뻑 빠졌다.

 

귀국하자마자 싯모어는 미국의 공유지에 벚나무를 심자는 운동을 시작하고 워싱턴 DC 출범 100주년을 맞는 1901년에 벚꽃이 만발하게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자금 부족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끈질기게 밀고 나갔다. 식물학자인 데이비드 페어차일드(David Fairchild, 전화 발명가 알렉산더 벨의 사위)를 만나 1906년부터 2년간 1,300그루를 수입하여 대규모 이식이 가능하게 되었다.

 

싯모어는 여기서 끝내지 않고 영부인인 헬렌 태프트(Helen Herron Taft)에게 편지를 보내 벚나무 심기 운동에 동참하도록 했다. 마침 1907년 일본을 방문했던 영부인도 일본문화에 호감을 갖고 있었고 대통령 하워드 태프트(William Howard Taft, 27대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은 수도 워싱턴의 공터에 벚나무를 심는데 찬동했다.

* 국무장관 재임 시 일본과 미국이 한국과 필리핀을 나눠 갖자는 비밀합의인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을 체결한 장본인

일본은 이런 동향을 알아채고 재 빨리 움직였다. 미국에 벚나무를 선물하겠다고 역제안한 것이다. 도쿄 시장 겸 중의원 의원인 오자키 유키오(尾崎行雄)는 러일전쟁에서 일본을 도운 미국에 보답해야 한다며 1909년 벚나무 2,000그루를 보냈다. 오자키가 보낸 벚나무는 해충이 발견되어 이듬해 전량 소각됐다. 오자키는 일본에서 요시노(吉野櫻) 품종을 비롯한 12개 종, 3,020그루를 새로 추렸다.

1912327, 미국 대통령 영부인과 주미 일본대사 부인은 워싱턴의 포토맥 타이들 베이슨(Potomac Tidal Basin)의 북쪽 둔덕에 일본이 다시 보낸 벚나무 가운데 두 그루를 심었다. 일본은 1913년부터 1920년까지 1,800그루를 더 선물했다. 일본산 벚꽃이 포토맥 강변을 하얗게 수놓자 워싱턴의 시민단체들은 1935년부터 축제를 벌였다. 첫해에 3일간 치러진 벚꽃축제 기간이 요즘에는 한 달 동안 이어진다.

벚꽃이 얼마나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는지 1938년 제퍼슨 기념관을 건립하기 위해 벚나무를 베어낸다는 소식에 지역 여성들이 나무에 쇠사슬을 감고 반대 시위에 나선 적도 있다.

 

이승만 박사와 한국 벚꽃

 

워싱턴 벚나무도 위기가 있었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 사흘 뒤 미국인들은 벚나무 네 그루를 도끼로 찍어냈다. 벚나무의 이름도 일본 벚꽃Japanese Cherry ’에서 동양 벚꽃(Oriental Cherry)으로 바뀌었다. 일본에 대한 적개심으로 인한 벚나무 손상을 방지하자는 의도에서다.

* 당시 미국에 망명 중인 이승만 박사가 미 의회도서관에서 일본 백과사전을 뒤져 일본의 왕벚꽃이 한국에서 전래되었다는 내용을 찾아내 미 정부에 제출하면서 일본 벚나무대신 한국 벚나무(Korean Cherry)로 바꿔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당시 미 정부는 확실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 박사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대신 오리엔탈 체리(Oriental Cherry)’라는 중립적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다고 통보했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영어권 자료에서는 근거가 많지 않아 검증이 필요한 대목이다.

이 박사가 이에 실망하자 한국에서 선교사 활동을 했던 폴 더글러스(Paul Douglas) 아메리칸대 총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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