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4. 24(토)
安民硏究所長
文 會 穆
임금을 모르겠거든 신하를 보라
不知其君,視其所使 - 說苑 卷17 雜言46
문재인 대통령의 이념편향에 대해서는 후일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그러니 국정운영에서 보인 언행은 의혹을 일으킬 소지가 많다.
특히 인사문제에 있어서는 계속적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기모란의 靑방역기획관 임명은 직무문제는 물론 발탁배경에도 의심스런 점이 한 둘이 아니다.
기모란이 임명되자 현대사의 어두운 역사가 되 살아 나고 있다. 통일혁명당 사건이다. 통혁당 인맥이 다시 화제가 되는 건 기모란의 아버지가 통혁당 사건으로 신영복 등과 함께 복역했던 기세춘이기 때문이다.
통일혁명당 계보
통일혁명당 사건과 관련된 인물로 김수영, 김수상, 최영도, 정태묵, 김질락, 이문규, 신영복, 박성준, 한명숙, 기세춘이 등장한다.
1961년 12월 26일 북한 간첩 김수영이 전남 신안군에 있는 임자도에 침투했다. 김수영의 동생 김수상, 외삼촌 최영도 또한 북한에서 간첩교육을 받고 조선노동당에 입당한 자들로써, 이들은 임자도에서 함께 간첩 활동을 시작한다.
1965년 3월 김수영은 또 다른 임자도 출신 정태묵을 포섭하여 함께 월북했다. 정태묵은 북한에서 조선노동당 연락국장 이효순을 만나 조선노동당에 입당하고 지하당 조직방법을 비롯해 운영방법 등을 교육받은 후, 접선 및 연락을 주고받는 데에 필요한 활동 물품을 받아 복귀했다.
김수영, 김수상, 최영도, 정태묵에 의해서 임자도를 거점으로 하는 전라남도 지하당이 본격 조직되었다. 이 지하당의 이름이 통일혁명당 즉, '통혁당'이다.
통일혁명당은 '재남지하당'이라고도 부르는데, 수괴는 김종태며, 지도위원은 김질락, 이문규다. 지도부 아래로, 당기관지, 민족해방전선, 조국해방전선이 있으며, 이중 민족해방전선에 신영복이 속해있었다
신영복과 김질락은 육군사관학교를 통한 군의 의식화(신영복이 육사 교수로 들어갈 예정이었음), 대학교 침투 방법 등에 대해서도 논의한다.
김종태는 경북 영천 출생이다. 포항과 안동에서 교사로 근무했던 이력이 있다, 김종태의 통일혁명당 내 공식직함은 '서울시위원회 위원장'이다. 통일혁명당의 공식 기관지 청맥의 전신이 '청맥회'다. 이걸 만든 사람이 김종태다. 김종태가 '청맥회'를 결성한 이유는 1950년대 노동자, 농민, 진보 청년을 조직화하기 위함이었다. 이걸 통해서 오늘날, '전농', '민노총', '전학련, 전대협, 한총련, 대진연' 등의 뿌리를 엿볼 수 있게 된다.
김질락은 김종태와 같이 서울대 문리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김질락의 친삼촌이 김종태다. 기관지 청맥의 창간인 임과 동시에 통일혁명당 창당 발기인이기도 하다.
이진영은 김질락의 같은 과 후배로 신영복이 김질락에게 소개 하였다. 월북해서 의식화 수업을 받았고, 통일혁명당 사건 전체에 있어서 '최고의 두뇌'로 알려졌다. 사형당했다.
이문규 는 김질락의 후배며, 기관지 청맥의 초대 편집장이었다. 상당한 민족주의자로서 다양한 사회주의 이념화 활동을 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특이점으로는 '학사주점' 운영자라는 것이다. 학사주점이란 의식화를 목적으로 한 일종의 '포교 시설'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처형당했다.
신영복은 김종태, 김질락, 이문규, 이진영과 함께 핵심 관계자이다. 통혁당의 선전 선동 논리를 신영복이 제공한 것으로 보면 된다.
김질락에 의해 신영복이 포섭한 인물이 박성준이다. 박성준의 부인이 한명숙이다. 이들 부부는 통일혁명당에 완전 동조하였다.
신영복은 본래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전향서를 제출하고 나서 20년 형으로 감형되어 출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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