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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4. 환단고기는 우리역사 아니다.
  • 작성자 : hanbark33
  • 작성일 : 2021.05.17
  • 조회수 : 556

2021-14. 환단고기는 우리 역사 아니다.


1. 이 발표는 한, 중, 일 3국의 15억 인구 중에서 최초로 필자가 20여년의 피땀흘린 연구 끝에 발견하고, 찾아내고, 추적한 것이므로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일제가 만들어준 기존의 역사만 알고 진실을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깊이 새겨주기를 희망한다.


2. 1910년 일제가 조사한 아시다(한반도) 인구는 1300만 명이었다. 그러므로 국가도 있었고, 왕도 있었고 역사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일제는 이것을 깡그러 말살시켰다.

그리고 일제는 1911년부터 1920년까지 10년 동안 중국 땅에 있었던 대한제국 국민약 400만 명을 한반도로 이민시켰는데 일제는 그들이 가지고 온 역사를 신만주와 아시다(한반도)에 밎추어서 조작한 다음에 “이것이 너의들의 역사다”고 주었는데 한국은 이것을 받아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일제는 역사조작에 맞추어서 모든 성씨들의 시조를 한반도로 조작했다.

정부가 가짜역사를 독점하여 꾸준히 세뇌시켜서 가짜가 진짜로 둔갑된 것이다.


3. 민족단체라는 허울을 쓰고 고조선이 우리역사이고 단군이 국조라고 하는 것은 일제가 조작한 역사를 고수하는 것이니 일제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하게 하는 것이다.


4. 한국사는 중국사를 섭렵하지 않고서는 밝힐 수 없다. 왜 내나라 역사인데 남의나라 역사를 섭렵해야 밝힐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한국사가 가짜라는 확실한 증거다.


5. 세상에는 진실과 거짓이 있고 강대국과 약소국이 있다. 거짓은 진실을 덮고 있고, 강대국들은 약소국의 역사와 문화를 마음대로 요리했다. 한국의 경우 일제가 만들어준 것으로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으므로 이제 정리해야 될 때가 되었다고 본다. -----한국상고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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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14, 물리선군조(2)

(유우찬저 “환단고기단군세기 검토서(개정판)”. “한국사검토서”)


“36년(BC.426년), 융안의 사냥꾼 우화충이 장군을 자칭하며 무리 수만명을 모아 서북 36을 함락시켰다. ----백민성(白民城)의 욕살 구물(丘勿)이 어명으로 군대를 일으켜 장당경을 점령하니 구지(九地)의 군사들이 이에 따라서 동서의 압록(鴨綠) 18성이 모두 병력을 보내 원조하였다.”


1). 서북 36:

①“21세 소태단군 47년(BC.1291년) 은나라 왕 무정이 귀방(鬼方)을 쳐 이기더니 색도(索度)와 령지(令支)의 나라를 침공하였으나 우리에게 대패하여 화해를 청하며 조공을 바쳤다.”(단군세기)


②“21세 소태단군 49년(BC.1289년) 개사원의 욕살 고등이 귀방을 습격하여 멸망시키니 일군국과 양운국이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쳤다.“(단군세기)


③“43세 물리선군36년(BC.426년), 융안의 사냥꾼 우화충이 장군을 자칭하며 무리 수만명을 모아 서북 36을 함락시켰다.”(단군세기)


※“귀방(鬼方)“이란 한문을 어떤 글자를 쓰든지 간에 산스크리트어로 ”고조선의 귀퉁이에 있는 일대의 땅“이란 뜻이다. 그것이 서북쪽 귀퉁이에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36군에 해당되는 넓은 땅이란 뜻이며 약수(弱水) 지역의 북부에 해당하는 백인흉노족의 근거지다. 융안지방이라고도 한다.

서북36군에 해당하는 귀방은 청해성의 은나라가 점령했는데 고조선의 고등이 습격하여 빼앗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흉노족 색부루를 고등의 사위 또는 손녀사위로 맞이했는데 고등의 말년에 색부루가 득세하여 고씨나라인 단국(檀國)을 멸하고 색씨조선(索氏朝鮮: 古朝鮮)을 건국했다. 그러므로 고조선을 우리역사라고 하는 사람들은 조상을 백인흉노족으로 바꾸는 환부역조라는 것을 모르는 무식한 사람들이다. 후세에 이 땅에서 우화충이 반란했다는 뜻이다.


④ “한나라가 BC.104년 대완(大宛)을 점령했다.

(사마천의 사기 본기 권12 효무본기 제12)

※대완은 청해성의 나라인 한나라의 서북쪽 즉 귀방을 넘어 알타인산 서남의 발하시호 지역이다. 대완을 점령하려면 흉노지역인 귀방을 점령하고, 누란(樓蘭)과 오손(烏孫)을 점령한 후에야 대완을 점령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漢)나라도 융안지방, 귀방, 서북36군이라고 부르는 땅을 점령한 사실이 있다.


서북36군과 장당경의 위치:


2). 장당경(藏唐京)

장당경에 대한 지리지 기록은 없다. 따라서 역사를 수십 년 동안 연구하다보면 그 지역적인 평가와 판단을 할 수 있는데 필자는 장당경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1. 단국도성의 서북쪽 즉 융안36군지역에 가까이 있다.

2. 원래 요임금의 도성은 감숙성의 평양(平陽)인데 태원(太原) 땅이고 당읍(唐 邑)이므로 당(唐) 땅, 당산(唐山) 등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요임금 이 단군(檀君)에게 쫒기어 1차로 천도한 곳으로 감숙성 무위(武威)로 추정 한다. 그래서 감숙성 무위가 제2의 당 땅, 태원이 된 것이다.

“장당경이란 요임금의 도읍인 당경(唐京)을 숨긴 곳이란 뜻이다.“ 훗날 당 나라의 발원지로서 국호를 “당(唐)“으로 정한 바로 그 땅이다. 그런데 중국 의 모든 서책은 요임금, 순임금의 도성이 산서성 남부로 되어 있는데 조작 된 가짜다.

3. 단군이 감숙성의 요임금 땅을 빼앗은 후에 다시 요임금을 공격하여 요임금 을 돈황지역으로 쫓아내고 장당경에 아들 부여를 보내 부여국을 건설하니 부여국의 도읍지다.

4. 색부루가 조선을 건국하고 제위에 오른 곳이 장당경 근처에 부여의 신궁 을 짓고 등극했다.(BC.1286년)

5. 구물선군이 BC.425년에 장당경에서 즉위하고 국호를 대부여(大扶餘)로 고 쳤다. 감숙성 해성을 평양으로 고치고 이궁(離宮)을 지어 동경(東京)으로 삼 았다.

6. 북부여 해모수가 대부여 5가들을 회유하여 공화(共和)를 철폐한 후에 도성 으로 삼은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7. 한나라가 흉노 혼야왕(混耶王)으로부터 항복을 받고 진번군(眞番郡)의 치소 진번성(眞番城)으로 삼은 곳이다.

8. 요(遼: 거란)나라가 상경임황부(上京臨湟府)로 삼은 곳이다.


★환단고기는 일제 때 새로 쓴 책으로서 우리국사가 아니라 인류사다. 삼국사기도 우리역사가 아니다. 그런데 사대주의와 식민주의에 길들여져서 이 진실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없다.

역사는 역사적조건, 지리적조건, 환경적조건 등으로 검토하여 결정한다. 단순히 책만 가지고 이러 쿵 저러 쿵 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학문으로서 진실을 외면한 사상적 몰이 배들에게 휩쓸리기 쉽다.

-----한국상고사연구회 회장 유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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