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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5. 환단고기는 우리역사 아니다.
  • 작성자 : hanbark33
  • 작성일 : 2021.05.24
  • 조회수 : 402

2021-15. 환단고기는 우리 역사 아니다.


1. 이 발표는 한, 중, 일 3국의 15억 인구 중에서 최초로 필자가 20여년의 피땀흘린 연구 끝에 발견하고, 찾아내고, 추적한 것이므로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일제가 만들어준 기존의 역사만 알고 진실을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깊이 새겨주기를 희망한다.


2. 1910년 일제가 조사한 아시다(한반도) 인구는 1300만 명이었다. 그러므로 국가도 있었고, 왕도 있었고 역사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일제는 이것을 깡그러 말살시켰다.

그리고 일제는 1911년부터 1920년까지 10년 동안 중국 땅에 있었던 대한제국 국민약 400만 명을 한반도로 이민시켰는데 일제는 그들이 가지고 온 역사를 신만주와 아시다(한반도)에 밎추어서 조작한 다음에 “이것이 너의들의 역사다”고 주었는데 한국은 이것을 받아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일제는 역사조작에 맞추어서 모든 성씨들의 시조를 한반도로 조작했다.

정부가 가짜역사를 독점하여 꾸준히 세뇌시켜서 가짜가 진짜로 둔갑된 것이다.


3. 민족단체라는 허울을 쓰고 고조선이 우리역사이고 단군이 국조라고 하는 것은 일제가 조작한 역사를 고수하는 것이니 일제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하게 하는 것이다.


4. 한국사는 중국사를 섭렵하지 않고서는 밝힐 수 없다. 왜 내나라 역사인데 남의나라 역사를 섭렵해야 밝힐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한국사가 가짜라는 확실한 증거다.


5. 세상에는 진실과 거짓이 있고 강대국과 약소국이 있다. 거짓은 진실을 덮고 있고, 강대국들은 약소국의 역사와 문화를 마음대로 요리했다. 한국의 경우 일제가 만들어준 것으로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으므로 이제 정리해야 될 때가 되었다고 본다. -----한국상고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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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15, 고열가선군

(유우찬저 “환단고기단군세기 검토서(개정판)”. “한국사검토서”)


2. “58년(BC.238년) 이보다 앞서(BC.239년) 종실 대해모수는 몰래 수유와 약속하고 옛 서울 백악산을 습격하여 점령하고 천왕랑(天王郞)이라 칭했다. 수유후 기비(箕丕)를 권하여 번조선왕(番朝鮮王)으로 삼고 상하의 운장(雲障)을 지키게 했다.


수유후 기비(須臾侯箕丕)

수유국은 태호복희족의 나라로서 고구려 환도산 북쪽 90리에 있는 선교와 불교의 중심지인 수미산(須彌山: 묘향산)의 나라다. 최치원이 천부경을 새겼다는 바로 그 산이다. 은나라 기자((箕子)가 처음 조선에 와서 정착한 마을이다. 단국(檀國) 22세 색부루가 고씨(高氏)나라인 단군의 단국(檀國)을 멸하고 색씨조선(索氏朝鮮)을 건국했는데 바로 고조선(古朝鮮)이다.

기자는 단국 21세 소태단군 때의 기수(奇首: 奇子: 徐于餘: 徐餘), 상장서여(上將西余), 은나라의 기자(箕子: 胥餘) 등 3인이 나타난다.

고조선의 번조선 시조왕(BC.1285년 5월∼BC.323. 961년간)은 기자(奇子)인 서여(徐餘: 徐于餘)다. 기자(奇子)는 단국의 상장(上將) 서여(西余)라고도 전한다.(단기고사 奇子朝鮮편)

고조선의 번조선 시조가 기자(奇子)이므로 일명 기자조선(奇子朝鮮)이라고도 한다.

“은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건국한지 3년(BC.1131년)에 은나라 기자(箕子)가 망명하여오니 임금께서 가련하게 여기고 요서(遼西: 압록강서쪽)의 한 모퉁이에 거주하게 했는데”(마한세가 하, 단기고사 기자조선3세 솔귀편) 이곳이 태호복희로부터 선교의 성지인 수유국(須臾國)이다. 은나라 기자((箕子)로부터 38여세를 지나 기자의 후손 기후(箕詡)가 번조선왕으로 득세하였는데 이것이 곧 기자조선(箕子朝鮮)이다. 고조선의 번조선전기는 기자조선(奇子朝鮮)인데 산스크리트어로 “서라벌”이다., 번조선 후기가 기자조선(箕子朝鮮)이다.

“46세보을선군 19년(BC.323년) 읍차 기후(箕詡)가 병력을 이끌고 입궁하여 자칭 번조선왕이라 칭하고 사람을 보내 윤허를 구하니 이를 허락하고 연나라 에 굳게 대비토록 했다.“(환단고기 단군세기) ※BC.323∼BC.195년. 128년간

“47세고열가선군 57년(BC.239년) 북부여시조 해모수가 웅심산(熊心山: 崆峒山)을 내려와 군대를 일으켰다.--- 해모수는 몰래 수유(須臾)와 약속하고 옛 서울 백악산을 습격하여 점령하고 천왕랑(天王郞)이라 칭했다. 수유후(須臾侯) 기비((箕丕)를 번조선왕으로 삼았다“(환단고기 단군세기)

고조선의 번조선왕은 기후(箕詡)이고, 북부여 때는 기비((箕丕)이고, 위만에게 망한 때는 기준((箕準))이다.

기자조선(奇子朝鮮)의 기자(奇子)와 기자조선(箕子朝鮮)의 기자(箕子)는 작위이므로 그 작위를 칭하여 일명 기자조선(奇子朝鮮), 기자조선(箕子朝鮮)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기후(箕詡), 기비(箕丕), 기준(箕準)은 성씨와 이름이 아니고 기자조선의 후왕(詡王), 비왕(丕王), 준왕(準王)이란 뜻이고 은나라 기자(箕子)의 이름은 서여(胥餘)다.

번조선은 기자(奇子)인 “서여(徐餘: 徐于餘)의 나라, 서씨(徐氏)의 나라, 서국(徐國)”이므로 산스크리트어로 일명 “서라벌(徐羅伐) 또는 “서나벌(徐那伐)”이라고 했다. 진(晉)나라가 일시점령한 때는 진양설씨(晉羊舌氏)가 제후로서 일명 설국(舌國, 薛國)이다. 그래서 서라벌은 원효대사와 아들 설총(薛聰)의 고향이다.

『설가둔(薛家屯)(중국고금지명대사전 P.1296): 在吉林舒蘭縣東』

※최초의 길림성은 구만주인 중국 감숙성이다.

서라벌, 사로, 신라는 각기 다른 나라인데 삼국사기에는 신라로 통일하여 통합조작되어 있다.

원래 번조선의 기자조선(奇子朝鮮) 치소는 서주(徐州, 舒州), 서현(徐縣)인데 요임금 때는 평양(平陽)이고, 단국 때는 번한(番韓)의 치소이고, 고조선 때는 번조선의 치소이며, 한나라 때는 낙랑군 치소이고, 고구려 때는 3평양 중에서 제1평양이다. 지금의 감숙성 평량(平涼)이다. 감숙성의 서주(舒州, 徐州)를 신라 땅인 산동성 서남부 패현(沛縣)지역으로 이동했다가 지금은 또다시 남쪽으로 500리나 이동하여 강소성 북부에 이동되어 있다.

이렇게 진실을 추적해보면 현재 한, 중, 일의 역사책들은 100% 조작된 가짜만 있고 진서는 모두 말살되었다. 그러므로 현존하는 역사책대로 하면 100년을 연구해도 진실을 찾을 수 없다.

조작된 책이지만 진실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중국고금지명대사전"과 한국의 이씨조선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 두 가지뿐인데 상당량의 진실기록이 있고 또 진실을 추적할 수 있는 내용들이 있기 때문이다.


운장(雲障)

운장은 번조선(기자조선)과 위만의 이야기에 등장하는데 감숙성 천수 서쪽이다.


운장의 위치



                                               (유우찬저 “환단고기단군세기검토서(개정판)” 그림)


★환단고기는 일제 때 새로 쓴 책으로서 우리국사가 아니라 인류사다. 삼국사기도 우리역사가 아니다. 그런데 사대주의와 식민주의에 길들여져서 이 진실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없다.

신만주(동북3성)와 아시다(한반도)에서는 수유국과 운장이 없다. 단군세기에 나오는 모든 지명들도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고조선은 우리역사가 아니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은 고조선이 우리역사라고 한다. 이것은 역사의 원칙을 무시한 일방적이 주장에 불과하고 국민에게 거짓을 강요하는 폭력이다.

역사는 역사학의 원칙인 역사적조건, 지리적조건, 환경적조건 등으로 검토하여 결정한다. 단순히 책만 가지고 이러 쿵 저러 쿵 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학문으로서 진실을 외면한 사상적 몰이 배들에게 휩쓸리기 쉽다.

-----한국상고사연구회 회장 유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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