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機포럼 安保時論 21-31회, 조국, 위리안치로 부활 시도하다
2021. 6. 3(목)
安民硏究所長
文 會 穆
어디서 감히 위리안치라는 말을 쓰는가
조국이 역사소설에나 등장하는 위리안치란 말을 끄집어내어, 자기 자신을 위리안치(圍籬安置)된 극수(棘囚)라고 비유하였다. 머리가 좋아 자신의 처지를 잘 대변할 것 같은 그럴 듯한 말을 찾아내긴 했는데, 위리안치의 의미도 제대로 모르는 용렬한 자가 이 말을 사용하였다는 것이 가소로울 뿐이다.
안치(安置)란 거주의 제한을 두는 조선시대 유배형벌이다. 위리안치(圍籬安置)는 중죄인에게 내려졌다. 가시 많은 나무로 만든 울타리로 둘러싼 집 안에서만 지내게 하는 것이다. 집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외부인 출입도 금지한다. 손님을 맞거나 마을을 돌아다닐 수 없어 꽤 중한 형벌이다. 남쪽 지방에는 탱자나무가 많아 탱자나무로 가시 울타리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역사적으로 연산군은 1506년 강화도 교동에 위리안치 됐으나 두 달 만에 유배지에서 사망했다. 1623년 광해군도 교동에 위리안치 됐으며 병자호란 이후에는 제주도로 옮겨져 1641년 생을 마감했다. 추사 김정희는 1840년 윤상도 옥사 사건으로 제주도에 위리안치 돼 8년을 보냈다.
위리안치의 가시 울타리는 단지 울타리일 뿐이다. 출입문도 있다. 나가려면 마음대로 나갈 수 있다. 뚫지 못할 감옥이 아니다.
유배된 고위관리가 위리안치의 국법을 위반하지 않는 자발적 준법의 상징이며 襟度의 경계선이다.
조국은 자신은 정의와 공정을 위해 헌신해 왔는데, 사악한 무리들이 자신을 모함하여 시련을 겪고 있으며, 검찰개혁의 불쏘시개이자 순교자로 자처하며 핍박받는 의로운 인물임을 강조하기 위해 이 말이 찾아내어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불법과 불의의 상징인 조국이 정말로 위리안치의 극수와 같은 심정으로 지내왔는가. 위리안치를 당했다고 하면서 자숙하기는커녕 자기 마음대로 드나들고, 사사건건 하고 싶은 말은 다하면서 쓸데없는 간섭을 일삼고 위리안지를 우습게 여긴 자가 함부로 쓸 용어가 아니다. 가증스런 일이다.
나라를 시끄럽게 한 죄만 하더라도 평생 반성해야 하는데, 또 분란을 일으키려 한다. 이번에도 자신의 핍박 받음에 동정을 보내고 자신을 숭앙하고 자신의 큰 뜻을 알아 줄 자들에게 보내는 조국의 선동이 먹혀들어갈까
어쨌든 조국은 행복하다. 대통령이 가장 신임하는 충의지신이자 나라의 기둥으로 떠 바치는 자신의 처지를 동정하고 위리안치에 가슴 아파하는 인간들이 자신의 재기를 염원하고 다량으로 책을 구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돈도 벌고 부활 기회도 만들었으니 일거양득이 아니겠는가.
이번에는 교활한 조국이 이겼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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