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機포럼 安保時論 21-40회, 윤석열의 별의 순간
2021. 7. 4(일)
安民硏究所長
文 會 穆
돌다리도 두드리면서 건너야 한다
별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는가. 그것은 권력의 정점에 오르려는 자 또는 사회적 유명 인사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일상에도 별의 순간은 찾아온다.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빈부를 가리지 않는다. 별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삶의 대전환이다.
지난 1월 12일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차기 대권 유력 주자로 거론되자 '별의 순간을 잡아야 한다'라는 표현을 거듭 사용하면서 "그 별의 순간을 제대로 포착하느냐에 따라 국가를 위해 크게 기여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치권 안팎에선 '별의 순간이 자연스레 '대선 출마'와 연관지어 해석했다.
사전적 의미로 별의 순간은 독일어인 Sternstunde에서 비롯된 단어이다.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숙명적인 결정이나 행위, 사건을 뜻하는 은유로 쓰인다. 흔히 한국어로 운명적 시간, 결정적 순간이라는 의미로 번역된다. 김종인 위원장은 독일 유
학파로서 일찍부터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알고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단어는 점성술에서 파생됐는데, 출생 당시 별의 위치가 인간의 삶을 결정한다는 당시의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이 은유적 표현은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의 <인류의 별의 순간Sternstunden der Menschheit>가 1927년 발간되면서 널리 퍼지고 대중적으로 사용되기에 이르른다. 근래에는 방송의 토론 프로그램에서 다루어져 쓰이면서 별의 순간은 본래의 점성술적 의미가 퇴색하고 최고의 순간, 절정의 순간을 뜻하는 관용어가 된다.
츠바이크는 역사의 변곡점에 선 인물 중 사색하는 인간 키케로와 이상주의자 윌슨이 별의 순간을 제대로 잡지 못한 데 반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소적이며 대담한 혁명가 레닌이 러시아 혁명을 완성한 역사를 다루고 있다.
별의 순간과 관련하여 나폴레옹, 아이젠아워와 윤석열을 언급하려 한다.
<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
코르시카의 촌놈 나폴레옹은 아버지 카를로 마리아 디 부오나파르테(Carlo Maria di Buonaparte)가 변절하여 프랑스 국왕에게서 귀족 작위를 얻었다. 나폴레옹의 운명은 여기에서부터 방향이 잡혔다.
귀족 신분으로 육군유년학교를 거쳐 파리의 군사학교에 진학했다. 코르시카 사투리가 심해 동급생 귀족 자제들에게 놀림을 당하면 지냈다.
1785년 16세에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포병 소위로 임관했다. 4년 뒤인 1789년, 부르고뉴 지방에서 근무할 때 프랑스 혁명이 터진다.
혁명파와 왕당파가 대립하는 가운데 나폴레옹은 왕당파가 불러들인 영국군을 축출하고 툴롱항을 되찾는데 성공했다. 이어 혁명정부의 실력자 폴 바라스(Paul Barras)의 지시에 의거 파리 시내에서 일어난 왕당파의 봉기를 무려 1400명이 넘는 인명을 사살하며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폴레옹은 정권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갔다.
툴롱 포위전 이전의 나폴레옹은 작은 도시에서 보급대를 이끄는 하급 지휘관에 지나지 않았다. 툴롱 포위전 성공으로 장군까지 고속승진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이 전공을 바탕으로 이탈리아 방면군 사령관이 되어 이탈리아 전쟁에서 승리하였으나 이어진 이집트 원정애서는 실패하여 귀국 하였다. 이탈리아 원정군을 지휘하던 무렵 나폴레옹은 자신의 이름을 나폴레오네 디 부오나파르테(Napoleone di Buonaparte)에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로 바꿨다.
귀국 직후 시에예스와 손잡고 1799년 11월 9일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를 일으켜 정부를 뒤엎고 3명의 통령에 의한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였다. 물론 나폴레옹이 제1통령을 맡았다.
혼란을 종식시켜줄 영웅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나폴레옹 중심의 새 정부는 곧 인기를 얻었고, 곧이어 종신 통령에 취임했다. 이련 일련의 상황에서 황제 등극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804년 12월 2일 파리 노트르담 사원에서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1세가 탄생했다. 나폴레옹은 절대 권력을 통해서 프랑스 사회의 대변혁을 추구했다. 이 부분이 프랑스의 나폴레옹을 빛나게 했다.
< 대통령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Dwight David Eisenhower
육군 보병소위가 된 아이젠하워는 진급이 늦어져서 더글러스 맥아더의 밑에서 전속부관으로 일하게 되었다. 장교가 돼서도 그는 전투부대의 지휘관보다는 후방에서 허드렛일이나 하는 존재였다. 그는 소령 진급도 늦었고 소령에서 중령으로 승진하기 까지 10년도 넘게 걸렸다. 당연히 주변인들은 그를 주목하지 않았고 그의 능력에 대해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이젠하워는 맥아더의 참모총장 시절부터 전속부관으로 일하기 시작해서 워싱턴에서 5년, 필리핀에서 4년 합쳐서 무려 9년 동안이나 전속부관 일을 수행했다. 즉 대대장 한 번도 못해봤다는 소리다. 오직했으면 맥아더로부터 군인이 아니라 사무원(clerk)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필리핀을 떠나서야 맥아더의 요청으로 육군 대령으로 승진했고, 그제서야 재능을 인정받아 1941년에 준장까지 진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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