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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機포럼 安保時論 21-41회, 미군은 점령군 주장, 노리는 것이 무엇인가
  • 작성자 : 문회목
  • 작성일 : 2021.07.10
  • 조회수 : 333


 

<天機포럼 安保時論 21-41, 이재명, 종북좌파 논리 맹신

 

2021. 7. 9()

安民硏究所長

文 會 穆

 


    이런 자를 대통령을 꿈꾸게 용인한 나라


이재명이 71일 안동 이육사 문학관에서 '미군은 점령군'이라는 발언을 한다. 대한민국이 정부 수립 단계에서 친일 청산을 못 하고, 친일 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그 지배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깨끗하게 나라가 출발되지 못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여당 대권 후보가 대놓고 공개적으로 종북좌파의 역사왜곡을 주장하고 나서 역사관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대한민국이 이 지경이 되었다.

 

이재명의 미군점령군 발언의 저의는 점령군이냐 주둔군이냐가 아니다. 미군정 때문에 친일청산의 기회가 사라졌다는데 있다. 따라서 지금의 상류 지도층으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친일 매국노와 후손들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한국이 진정한 독립을 하였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원인을 제공한 미국 즉 주한미군을 없애야 한반도에서 전쟁이 없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종북좌파나 주사파 운동권들은 아직도 미군을 점령군으로 부르고 주한미군 철수를 외치고 있다.

 

이재명은 종북좌파 운동권 시각을 견지하며 지금 대선경선 국면에서 점령군 운운하

며 반미 운동을 부추기는 부적절한 발언을 일삼는 것은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

 

 

< 미국과 소련의 포고문 1호 비교

 

 

미군과 소련군의 포고문 발표 시점과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자의적으로 유리한 해석을 할 여지가 생기고 그에 따라 역사왜곡과 역사부정의 논란이 발생한다.


 

  미, 소 포고문 발표 시점의 상황


 

소련의 포고문 제1호는 1945815일 북한 점령을 담당한 극동군 제25군사령관 이반 치스치아코프 이름으로 발표됐다. 치스치아코프가 포고문을 발표했을 당시 소련은 한반도의 해방만 인식하고 있었을 뿐 한반도의 분단현실에 대해서는 몰랐다. 815일까지는 치스치아코프가 1944년 가을 모스크바에서 미국과 소련 사이에 성립된 소련군이 만주의 일본 관동군을 섬멸한다는 것,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반도 동북지방의 항구들을 점령한다는 합의를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 소련은 그 시점에 한반도가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나뉘고 자신은 경계선 이북만 점령통치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소련군은 그때 겨우 함경북도의 몇몇 항구들을 점령하고 있었을 뿐이고 38도선까지 진격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치스치아코프는 우리 민족 전체를 향해 소련군이 조선의 해방자이며 후원자라는 사실을 원론적 입장에서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미군의 포고문 1호는 소련군의 포고문 보다 25일 늦은 194599일에야 태평양지역 연합군사령관 맥아더의 이름으로 발표됐다. 분할점령 사실을 안 맥아더는 한반도 전체가 아니라 미국이 점령한 38도선 이남만 대상으로 포고문을 발표했고, 그 포고문은 군정에 필요한 기술적 절차를 중점적으로 담았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미, 소 포고문의 성격


포고문에서 소련은 조선 해방을 축하하고 조선 인민을 격려하면서 원조의 뜻을 분명히 다짐했는데, 미국은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남조선을 점령지역이라고 선언하면서 미 점령군의 포고령을 철저히 지키라는 식의 고압적인 자세를 취했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소련의 포고문은 선전 선동문이고 미군의 경우, 군정을 위한 실무적 절차적 내용을 규정한 포고문이다. 그러나 미군의 포고문은 남한사람들의 감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무례하게 작성됐다는 비난은 피할 수 없다.


 

    미군 점령군 주장의 진위


 

미군이 포고문에서 자신을 점령군이라고 표기한 건 사실이지만, 점령의 목적이 항복문서를 이행하는 것이고, 자신의 역할을 조선의 해방·독립으로 분명히 밝혔다. 소련군 역시 스스로를 해방군으로 규정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군과 대비하여 포고문의 문구만 가지고 소련군이 미군보다 조선에 우호적이었거나 착한 군대였다고 보긴 어렵다. 당시 북한에 진주했던 소련군이 약탈과 폭력 등으로 해방군의 탈을 쓰고 여러 만행을 저질러 원성이 컸다는 사료도 많기 때문이다.


 

    친일파를 의도적으로 등용 했는가


 

맥아더 사령관은 98일 서울에 진주하면서 공포된 포고문 제1호를 통해 남한에 미군정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고, 정부 공공단체에 종사하는 자, 즉 일제 강점기 당시 활동하던 행정기관원에게 계속 집무할 것을 명령하였다.

 

미군정 국가기구의 핵심은 군대와 경찰, 관료였다. 미군정은 일제 강점기에 이들 조직에 있었던 인물들을 행정 실무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그대로 기용했다.

이 부분이 종북좌파 인사 및 역사가들이 끈질기게 제기하는 친일청산의 핵심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미군정에 기용된 친일파들이 친미보수반공 인사로 탈바꿈하여 대한민국의 핵심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이재명의 종북좌파 역사관 맹신


 

이재명은 근대 한국사 해석에 대한 이념적 편향성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2017년 대선 즈음에 처음으로 선거에 이용하기 위해 친일매국을 언급 한 이후 대외적으로는 잠잠했다. 그러다 다시 대선 정국이 시작되자 이번에는 미군은 점령군이라는 발언으로 케케묵은 역사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념 선명성을 제기하며 지지세력을 결집시키려 하고 있다.

 

이재명의 좌파적 역사관은 내부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며, 현재 국민의 혈세로 경기도에서 2019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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