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 한국사는 우리 토박이 역사가 아니다.
1. 이 발표는 한, 중, 일 3국의 15억 인구 중에서 최초로 필자가 20여년의 피땀흘린 연구 끝에 발견하고, 찾아내고, 추적한 것이므로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일제가 만들어준 기존의 역사만 알고 진실을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깊이 새겨주기를 희망한다.
2. 1910년 일제가 조사한 아시다(한반도) 인구는 1300만 명이었다. 그러므로 국가도 있었고, 왕도 있었고 역사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일제는 이것을 깡그러 말살시켰다.
그리고 일제는 1911년부터 1920년까지 10년 동안 중국 땅에 있었던 대한제국 국민약 400만 명(추정)을 한반도로 이민시켰는데 일제는 그들이 가지고 온 역사를 신만주와 아시다(한반도)에 밎추어서 조작한 다음에 “이것이 너의들의 역사다”고 주었는데 한국은 이것을 받아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일제는 역사조작에 맞추어서 모든 성씨들의 시조를 한반도로 조작했다. 이제 정리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정부가 가짜역사를 독점하여 꾸준히 세뇌시켜서 가짜가 진짜로 둔갑된 것이다.
이민자를 400만명으로 추정한 것은 1910년에 아시다(한반도) 인구를 1300만명이라고 하였는데 1919년 독립선언서에 “2천만 민중”이라고 하였으므로 10년동안 이민시킬 수 있는 최소값을 400만명으로 추정한 것이다.
3. 요동 땅(중국 감숙성∼ 섬서성)은 단국∼ (고)조선∼ 위만조선∼ 북부여∼ 고구려, 계림∼ 고려∼ 이씨조선∼ 대한제국이 점유한 땅이다. 그러므로 단국부터 대한제국까지 한반도 역사가 아니다. 이에 대한 근거들을 “한국사검토서”에 전부 수록했다.
따라서 민족단체라는 허울을 쓰고 고조선이 우리역사이고 단군이 국조라고 하는 것은 일제가 조작한 역사를 고수하는 것이니 일제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하게 하는 것이다.
4. 한국사는 중국사를 섭렵하지 않고서는 밝힐 수 없다. 왜 내나라 역사인데 남의나라 역사를 섭렵해야 밝힐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한국사가 가짜라는 확실한 증거다. -----한국상고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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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지식 3, 우리는 “아시다의 골족”이다.
일제용어인 한민족 대신 “골족“으로 쓰고, 일제용어인 한반도 대신 해 뜨는 東便地라는 뜻인 우리말 “아시다”를 쓰고, 한반도 깃발은 지금의 우리영토를 나타내지만 만주를 영원히 잘라먹는 반역사적인 행위가 된다. 한반도의 모양은 순진한 어린이가 1자를 그리면서 조금 삐트러지게 그린 것과 같다. 그러므로 남북이 협의하여 민족철학인 ▎(수직선) 깃발로 바꾸어 썼으면 좋겠다.
※▎의 뜻 : 신(조물주), 천손민족, 장자민족. 神人일체, 우리는 하나.
1). 성찰의 시간을 갖자.
존경하는 독자여러분!
필자의 글을 읽고 기존지식에 맞지 않는 반역의 역사를 한다고 배타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은 독재시대가 아니고, 자유민주적인 사회로 대단히 향상되었습니다. 또 시대적으로는 다변화, 다양화의 시대입니다. 따라서 학문도 과거처럼 연구에 제한을 두어서는 아니 되며, 다른 사람의 연구가 자기와 다르다고 공격해서도 아니됩니다. 진정한 민주주의 열린사회가 되어야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사고체계가 넓어지고, 그 넓어진 생각들 속에서 수많은 아이디어가 나와서 선진산업을 일으키고, 나라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됩니다.
인류역사의 공통점은 강대국들이 점령지나 식민지의 역사문화를 보존하는 일은 없으며 파괴하거나, 조작하거나 가져가는 것이 상습적으로 이루어졌으며 하나의 전통으로 굳어졌다. 따라서 우리도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았는데 우리역사의 진실은 얼마나 될까?를 연구하여 그 결과를 발표해 왔습니다.
한, 중, 일 3국에서 처음으로 필자가 한국사의 실체를 연구한 것이어서 아직은 아는 사람이 없으므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발표수준입니다. 그런데 기존지식과 반대된다고 하여 부정적인 댓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대체로 이런 사람들은 일제가 만들어주고 가르쳐준 것만 알고 역사의 진실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됩니다.
예를 들어
고려사 권 제42. 세가 42. 공민왕조 경술19년(1370)에는 과거시험 합격자를 선발하는 인원배정 기록이 있다.
【"4. 향시(鄕試)에는 각 성(省)과 직예부(直隸府)와 주(州)에서는 합계 500명을 한도로 선출한다. 그러나 인재가 많이 모여 있는 곳은 규정된 수에 구애되지 않으며 인재가 부족하여 수가 차지 않는 데에서는 실제 정형대로 공(貢)에 충당할 것이다.
하남성 40명, 산동성 40명, 산서성 40명, 섬서성 40명,
북평성 40명, 복건성 40명, 강서성 40명, 절강성 40명,
호광성 40명, 광동성 25명, 광서성 25명.
경사(京師) 서울에서 실시하는 향시에는 직속府와 州들의 선비 100명이다.』
⋆“이 기록을 해명하십시오.” 하면 갑자기 벙어리가 됩니다.
“아! 그런 것이 있습니까? 함께 연구해봅시다.”하고 학구적인 자세를 가진 사람이 없고 자기지식과 틀리다는 불만을 품은 채 묵묵부답으로 있다가 돌아서면 기존지식만 주장합니다. 그래서 한국의 역사는 “진실에 의한 학문적 역사가 아니라 교육부라는 권력기관에 의해서 길러진 주장역사가 되었는데 그 권력의 뿌리가 일제의 총칼에서 뻗어나온 힘이란 것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형태가 지금 한국사람들의 편협한 사고체게이니 심각하다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열린사고, 진실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는 포용력을 길러야 합니다.
그러려면 조용한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한국의 역사책들 즉 환단고기부터 이조실록까지 이렇게 대학교수들도 답변할 수 없는 조항들이 매우 많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혜량을 바랍니다.
한국상고사연구회 회장 유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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