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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4. 한국사는 우리 토박이 역사가 아니다.
  • 작성자 : hanbark33
  • 작성일 : 2021.07.26
  • 조회수 : 347

2021-24. 한국사는 우리 토박이 역사가 아니다.


1. 이 발표는 한, 중, 일 3국의 15억 인구 중에서 최초로 필자가 20여년의 피땀흘린 연구 끝에 발견하고, 찾아내고, 추적한 것이므로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일제가 만들어준 기존의 역사만 알고 진실을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깊이 새겨주기를 희망한다.


2. 1910년 일제가 조사한 아시다(한반도) 인구는 1300만 명이었다. 그러므로 국가도 있었고, 왕도 있었고 역사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일제는 이것을 깡그러 말살시켰다.

그리고 일제는 1911년부터 1920년까지 10년 동안 중국 땅에 있었던 대한제국 국민약 400만 명(추정)을 한반도로 이민시켰는데 일제는 그들이 가지고 온 역사를 신만주와 아시다(한반도)에 밎추어서 조작한 다음에 “이것이 너의들의 역사다”고 주었는데 한국은 이것을 받아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일제는 역사조작에 맞추어서 모든 성씨들의 시조를 한반도로 조작했다.

정부가 가짜역사를 독점하여 꾸준히 세뇌시켜서 가짜가 진짜로 둔갑된 것이다.

이민자를 400만명으로 추정한 것은 1910년에 아시다(한반도) 인구를 1300만명이라고 하였는데 1919년 독립선언서에 “2천만 민중”이라고 하였으므로 10년동안 이민시킬 수 있는 최소값을 400만명으로 추정한 것이다.


3. 요동 땅(중국 감숙성∼ 섬서성)은 단국∼ (고)조선∼ 위만조선∼ 북부여∼ 고구려, 계림∼ 고려∼ 이씨조선∼ 대한제국이 점유한 땅이다. 그러므로 단국부터 대한제국까지 한반도 역사가 아니다. 이에 대한 근거들을 “한국사검토서”에 전부 수록했다.

민족단체라는 허울을 쓰고 고조선이 우리역사이고 단군이 국조라고 하는 것은 일제가 조작한 역사를 고수하는 것이니 일제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하게 하는 것이다.


4. 한국사는 중국사를 섭렵하지 않고서는 밝힐 수 없다. 왜 내나라 역사인데 남의나라 역사를 섭렵해야 밝힐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한국사가 가짜라는 확실한 증거다. -----한국상고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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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지식 5, 중국 감숙성경원도 17현(1)


필자는 기존역사를 공부하다 문제점들을 발견한 후 지난 20년동안 역사의 진실을 추적했는데 그 결과 한, 중, 일 3국의 역사가 100% 조작된 가짜이고 진서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가짜중에서도 한, 중의 역사책 중에서 진실을 추적할 수 있는 것은 일제가 조작하고 이병도 일행이 번역한 이씨조선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역사조작을 마치고 발행한 중국의 마지막 지리지인 “중국고금지명대사전” 두 권 뿐이다.

중국과 일본이 역사조작을 끝마치고 펴냈으므로 한국사의 모든 설명이 신만주와 한반도로 직접 기록되어야 하는데 그러한 직접기록은 없고, 전부 중국 땅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반도 평양, 공주, 부여, 경주에 대한 전거가 하나도 없다. 따라서 이렇게 분명한 증거들이 여기저기 나옴으로서 필자가 “한국사는 중국사를 쪼개서 그 중에 하나를 일본제국의 대륙사로 만든 것”이라고 평가한 것을 확실하게 증명해주고 있다.

한국사는 많은 문제로 갑론을박 할 필요 없이 ①요수, ②요동요서와 한4군 ③신만주 발생시기 만 규명하면 간단명료하게 해결된다. 또 중국사기는 각국의 도읍지를 철저히 말살했기 때문에 추적하는데 대단히 어렵지만 불가능은 아니다. 다만 도읍지를 규명하는 시간보다 나라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훨씬 쉽고 빠르다. 그 대표적인 것이 감숙성 경원도17현 중에 나오는 평량, 고원, 해원에 역사의 중요기록들이 있는데 역사무대가 신만주와 한반도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며 현존하는 한국역사책들이 진짜 우리나라 토박이 역사가 아니라는 증명이 된다.


1). 경원도(涇原道.)(중국고금지명대사전P.728):

감숙성 치소 동쪽에 있다. 청나라 평량, 경양 2부와 경주, 고원 2주 및 화평천청의 땅이다. 민국이 경원도를 설치했는데 감숙성 소속이다치소는 평량현이다. 분할해서 평량, 화정, 정녕, 융덕, 장랑, 경양, 녕, 정녕, 합수, 환, 경주, 숭신, 진원, 령대, 고원해원, 화평 17현이다.(在甘肅省治東. 淸平涼慶陽二府. 涇州固原二州. 及化平川廳地. 民國置涇原道. 屬甘肅省. 治平涼縣. 轄平涼. 華亭. 靜寧. 隆德. 莊浪. 慶陽. 寧. 正寧. 合水. 環. 涇州. 崇信. 鎭原. 靈臺. 固原. 海原. 化平 十七縣.)”

중화민국(19111928)이 설치한 감숙성 경원도는 17현인데 감숙성 동부 평량현이 치소로서 감숙성이란 위치가 확실하게 나오고 평량은 고구려 평양을 바꾼 이름이고, 고원은 고구려환도성을 환인으로 바꾸어서 산서성 북부로 이동조작했고, 환도성자리에 고원(고평, 평고)으로 바꾸어 놓았다. 해성을 해원으로 바꾸고 해성은 만주로 이동조작했다.

17현 중 해성현은 요동 땅에 있는 낙랑의 소속 현이었다가 제2의 현토땅이 되었으므로 요동요서와 한4군을 함께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가 되고, 요동요서와 한4군 땅에 고조선과 고구려가 있었고, 漢, 魏, 晉, 수, 당, 발해, 요, 고려, 금, 원, 명, 이씨조선, 청, 대한제국, 중화민국이 전체 또는 일부를 소유한 땅이다.


1. 평량군(平涼郡)(P.213):

“동진 때 부진이 설치했다. 지금 감숙성 평량현 서북에 있었다. 후위가 치소를 순음으로 했는데 지금 감숙성 평량현 서남 90리에 있었다. 북주가 폐했다.

⊙수나라가 설치했는데 치소가 평고다. 즉 감숙성 고원현 치소다. 당나라 원주다. 후에 다시 평량군으로 했다가 다시 원주로 했다.(東晋時苻秦置. 在今甘肅平涼縣西北. 後魏治鶉陰. 在今平涼縣西南九十里. 北周廢.

⊙隋置治平高. 卽甘肅固原縣治. 唐曰原州. 尋又曰平涼郡後復爲原州.)“(순鶉:메추라기,아름답다,별이름)


(해설).

① 평고(平高)(P.213):

"한나라 고평현이다북주가 평고로 고쳤다당나라는 폐했다지금감숙성 고원현 치소다.(漢高平縣. 北周改平高, 唐廢, 卽今甘肅固原縣治)"

※한국의 역사에는 이렇게 시대별, 나라별로 사용한 자세한 연혁을 언급한 지명이 하나도 없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냥, 무작정 한국의 역사라고만 한다.

고구려 환도성, 국내성, 평량현(평양) 등은 각개의 명칭이고. 환도성, 국내성, 평량(평양)이 고구려 도읍지였기 때문에 도읍인 “서울”이라고 할 때는 모두 평양이라고 부른다. 지도를 보면 환도성과 국내성(집안)은 평량의 북쪽 환도산에 있다. 환도성인 고평은 고구려 평양(서울)이여서 고평이라고 한 것이다. 이 문장에서는 고구려 환도성을 환인으로 바꾸어서 산서성으로 이동조작했기 때문에 고평, 평고 등으로 바꾼 것이며 수나라는 고구려 환도성(고평)을 점령한 사실이 없는데도 수나라가 평고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으로 조작되어 있다.

평량군의 치소가 현재의 감숙성 평량현 서북의 고평(高平: 高原, 固原: 고구려 환도성)이다, 평량현 서남90리다, 고원(固原: 환도성)이다 등은 나라마다 치소가 이동되었음을 알 수 있다. 중국 감숙성평량군 소속이나 원주소속이나 소속이 시대마다, 나라마다 여러 번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이동 때문에 하나의 지점으로 통일해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② 원주(原州):

“후위의 고평이다. 당나라 평량군 원주이다. 토번의 원주 임경현인데 지금의 감숙성 진원현이다. 송나라 원주평량군이다. 금나라 원주다. 원나라 진원주다.(後魏高平(高原, 固原), 唐平涼郡原州, 吐蕃原州臨涇縣卽今甘肅鎭原縣. 宋原州平涼郡. 金原州. 元改鎭原州.

※고구려 땅인데 고구려를 말살하고 후위의 광역을 넓혀서 조작한 것이다. 실제로는 고구려의 고평이다. 중국감숙성은 발해의 남경, 중경, 서경이 있는 곳인데 후에 토번의 침략으로 빼앗기고 동쪽 800여리되는 섬서성 수덕으로 천도했다. 고구려, 백제, 사로는 토곡혼과 전쟁 또는 무역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발해와 통일신라는 토번에게 서쪽 땅을 빼앗겼다. 그런데 삼국사기를 한반도로 이동 조작하니 이런 기록을 모조리 말살한 것이다. 한반도는 원주를 강원도에 두었으니 이동조작이 잘못된 것이다.


③. 평량현(平涼縣):

“북주가 설치했다. 수나라는 치소를 양진천으로 했는데 지금 감숙성 평량현 서북에 있었다. 당나라가 지금현의 서쪽 35에 옮겼다가 당나라 말기에 폐했다. 5대 당나라가 다시 설치했다. 원나라가 지금치소로 옮겼다청나라가 감숙성 평량부 치소로 했다. 중화민국이 부를 폐하고 현을 유지시켰는데 김숙성 평량도 치소로 했다. (北周置. 隋治陽晉川. 在今甘肅平涼縣西北. 唐移於今縣西三十五里. 唐末廢. 五代唐復置. 元徙今治. 淸爲甘肅平涼府治. 民國廢府留縣. 爲甘肅平涼道治)”

※(해설)

환단고기 고구려본기에 광개토대왕이 수복한 평량은 중화민국 때(1911-1927)의 감숙성 평량도 치소였으므로 광개토왕이 연나라에게 빼앗겼다가 정복전쟁할 때 수복한 위치가 중국 감숙성 평량이라는 것이 증명된다. 원래는 평양인데 평양을 하북성 남부로 이동조작한 후에 지금은 평량으로 바뀌었다. 하북성남부의 평양은 또 일제가 한반도로 이동조작했다. 고구려 집안은 중국 감숙성 평량북쪽에 있었는데 중화민국 때 산서성 회인현으로 이동했다가 일제가 고구려역사를 만주와 한반도로 이동조작하면서 집안, 환인, 평양을 이동조작 했다.


2. 고원현(固原縣)의 위치(중국고금지명대사전P.439): 고구려환도성

“한나라 고평현이다. 후위가 원주를 설치했다. 송나라가 진융군을 설치했다. 금나라가 진융주로 승격했다. 원나라가 다시 원주로 했다가 개성부로 고쳤다. 다시 낮춰서 주로 했다. 명나라가 낮춰서 현으로 했다. 후에 고쳐서 고원주를 설치했다청나라의 직예 감숙성이다. 민국은 현으로 고쳤는데 감숙성 경원도 소속이다. 지세는 남쪽에 육반산이 점거하고 있고 동쪽(동남쪽)으로는 롱저를 잡았는데 숙관도 잡고 있다.(漢高平縣. 後魏置原州. 宋置鎭戎軍. 金升爲鎭戎州. 元復曰原州. 改開成府. 又降州. 明降爲縣. 尋改置固原州淸直隸甘肅省. 陝西提督駐此. 民國改縣. 屬甘肅涇原道. 地勢南據六盤山. 東扼隴坻以扼肅關. 秦隴之戶鍵也.)”

(扼액: 누르다, 잡다, 가지다)

(해설) 한나라의 고평(高平), 후위와 원나라 때 개성부 원주, 명나라가 현을 고원주(固原州)로 승격했다., 청나라 직예 감숙성인데 섬서성을 다스리는 제독을 두었다. 중화민국 때 감숙성 경원도 고원현(固原縣)이다.

위치를 추적해보면 원래의 고구려 환도산의 환도성인데 환인(桓仁)으로 바꾸어서 산서성 대동서남쪽으로 이동했다가 일제가 다시 신만주로 이동했다. 고려의 개성이 중국 감숙성 평량(평양) 북쪽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① 고평제일성(高平第一城)(P.772):

지금 감숙성 고원현 치소다. 한나라 광무제가 크게 정벌을 할 때 진군한 곳이다. (후한서서융전)에 수레를 타고 서쪽을 대정벌 할 때 융족의 5군태수와 강족 포로인 소월씨 등이 대군과 만난 곳이 고평제일성이다. (今甘肅高原縣治. 漢光武帝伐隗囂時. 進軍之此. (後漢書寶融傳)車駕西征隗囂. 融率五郡太守及羌虜小月氏等. 與大軍會高平第一. (後漢書郡國志)安定郡高平有第一城.)”(외隗: 험하다, 높다, 산이름, 국명. 효囂: 들렐, 왁자지껄, 소리, 저자, 거리. 車駕: 마차)

※(해설)

한나라 고평은 명나라 고원현(高原縣)인데 고원현(固原縣)으로 바꾸었다. 고원현(固原縣)은 현재의 명칭이다. 그러므로 高平- 高原- 固原으로 글자를 바꾸었음을 알 수 있다. 이름을 바꾸면 이전의 이름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이것이 중국사기의 공통점이다. 고평은 산서성 남부로, 고원은 동북의 찰합이성으로 이동하여 역사를 조작했다. 고원현의 위치는 고구려 환도성이다. (유우찬저 “한국사검토서” 참고)

이렇게 지명연구를 해보면 한국사는 100% 이동조작된 가짜라는 것이 밝혀진다.

한국상고사연구회 유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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