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댓글 내용을 남겨주세요. 최대 글자수를 초과하였습니다. 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권한이 없습니다.
2021-26. 한국사는 우리 토박이 역사가 아니다.
  • 작성자 : hanbark33
  • 작성일 : 2021.08.09
  • 조회수 : 448

2021-26. 한국사는 우리 토박이 역사가 아니다.


1. 이 발표는 한, 중, 일 3국의 15억 인구 중에서 최초로 필자가 20여년의 피땀흘린 연구 끝에 발견하고, 찾아내고, 추적한 것이므로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일제가 만들어준 기존의 역사만 알고 진실을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깊이 새겨주기를 희망한다.


2. 1910년 일제가 조사한 아시다(한반도) 인구는 1300만 명이었다. 그러므로 국가도 있었고, 왕도 있었고 역사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일제는 이것을 깡그러 말살시켰다.

그리고 일제는 1911년부터 1920년까지 10년 동안 중국 땅에 있었던 대한제국 국민약 400만 명(추정)을 한반도로 이민시켰는데 일제는 그들이 가지고 온 역사를 신만주와 아시다(한반도)에 밎추어서 조작한 다음에 “이것이 너의들의 역사다”고 주었는데 한국은 이것을 받아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일제는 역사조작에 맞추어서 모든 성씨들의 시조를 한반도로 조작했다. 이제 정리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정부가 가짜역사를 독점하여 꾸준히 세뇌시켜서 가짜가 진짜로 둔갑된 것이다.

이민자를 400만명으로 추정한 것은 1910년에 아시다(한반도) 인구를 1300만명이라고 하였는데 1919년 독립선언서에 “2천만 민중”이라고 하였으므로 10년동안 이민시킬 수 있는 최소값을 400만명으로 추정한 것이다.


3. 요동 땅(중국 감숙성∼ 섬서성)은 단국∼ (고)조선∼ 위만조선∼ 북부여∼ 고구려, 계림∼ 고려∼ 이씨조선∼ 대한제국이 점유한 땅이다. 그러므로 단국부터 대한제국까지 한반도 역사가 아니다. 이에 대한 근거들을 “한국사검토서”에 전부 수록했다.

따라서 민족단체라는 허울을 쓰고 고조선이 우리역사이고 단군이 국조라고 하는 것은 일제가 조작한 역사를 고수하는 것이니 일제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하게 하는 것이다.


4. 한국사는 중국사를 섭렵하지 않고서는 밝힐 수 없다. 왜 내나라 역사인데 남의나라 역사를 섭렵해야 밝힐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한국사가 가짜라는 확실한 증거다. -----한국상고사연구회----

-----------------------------------------------------------

역사지식8, 중국의 신만주 진입검토(1)(유우찬저 “한국사검토서” 참고)


1). 봉천성

1. 봉천부(奉天府) :

“청나라 때 설치했고 성경장군을 두었는데 치소는 승덕현이다. 즉 지금의 봉천 심양현 치소이다.(淸置. 隸盛京將軍. 治承德縣. 卽今奉天瀋陽縣治.)”


2 봉천성.

(본문4)청나라 천명7년(청태조 7년: 1622년) 요양에 동경을 건설했다. 10년(1626년) (동경을) 심양으로 옮겼다. 천총5년(2대 태종5년: 1632년) (심양을)높여서 성경이라고 했다. 순치14년(3대 세조14년: 1658년) 봉천부에 부윤울 설치했다. 건륭(6대 고종: 1736-1795년)초에 성경장군부를 건설했다. 광서(11대 덕종) 31(1906부윤을 다시 두고, 33(1908)에 장군을 다시 두고(만주 요동반도로 이동순무를 설치하였다. 성 이름을 봉천으로 바꾸고 (미래의)3성에 총독을 주둔시켰다.(중화민국 때)

(본문5)순치(1644-1661년)에서 강희간(1662-1722년)에 부와 현을 설치했다. 세월이 많이 지난 후에 성, 부, 청, 주, 현을 증설했는데 수십개다. 또 나누어서 각도의 지휘소를 함께 설치했는데 광서33(1908)에 이르러 (앞으로)행성규모 설치를 대비하여 지금 지휘소를 도 3현 56개로 했으며 치소는 심양현이다.

✳(해설)

청나라는 중국본토에 있는 구만주의 나라다. 위의 문장에서 “광서(11대 덕종) 31(1906부윤을 다시 두고, 33(1908)에 장군을 다시 두고(만주 요동반도로 이동순무를 설치하였다. 성 이름을 봉천으로 바꾸고 (미래의)3성에 총독을 주둔시켰다.” “광서33(1908)에 이르러 (앞으로)행성규모 설치를 대비하여 지금 지휘소를 도 3현 56개로 했으며 치소는 심양현이다. ”만 신만주(동북3성)이고 나머지 문장은 모두 중국본토의 구만주를 언급한 것이다.


2).요녕성

심양현(瀋陽縣):

“진나라 이전에는 숙신 땅이다. 한, 진 이후 당나라까지는 읍루국소속이다. 후위 때는 발해 심주 땅이다. 요나라, 금나라는 그대로다. 원나라 심양로 소속인데 명나라가 심양위를 설치했다. 청나라가 요양(동경)에서 천도했다는 것인데 성경이라고 했다. 입관후에 봉천부윤과 성경장군수비군을 함께 두었다. 강희3년(1665)에 승덕현과 부곽을 설치했다.(여기까지는 구만주다)

광서 31(1906다시부윤을 두고 봉천부지부를 설치했다선통2(1911다시 승덕현을 두었고 부를 직할로 했다. 중화민국 초에 다시 부를 두었다승덕현을 그대로 두었다가 후에 지금이름(심양)으로 고치고 봉천성의 치소로 했다요심도도 그대로 두었다18(1928국민정부가 요심도를 폐지하고 봉천성을 요녕성으로 고쳤다심양은 그대로 두고 성의 치소로 삼았다.(동북3성을 언굽한 것이다)


3). 길림성

”청나라 순치 10년에 녕고탑을 건설하고 나라를 받드는 문장을 높혀 설치했다. 강희원년에 수비진지를 고쳐 녕고탑 등 여러 곳에 장군을 설치했다. 15년에 장군을 길림으로 이주시키고 부도통을 두어 녕고탑을 수비했다. 그 후 부도통을 증설했는데 4개의 城인데 혼춘, 삼성, 아륵초객, 백도눌이다.(여기까지는 원래위치다.)

광서이후(1908년이후대륙에 접속된 땅에 부주를 증설하기 시작했다. (옹정간에 길림녕고탑을 증설했다. 백도눌 등 여러 곳에 주와 현을 설치했다. 건륭간에 이르러 모두 폐했다.). 30(1906)에 이르러 다시 장군과 부도통 등의 관리를 두고 길림순무를 설치하고 다시 나누어 각 도를 설치했는데 행성규모를 대비하여 도4392개를 설치했으며 치소는 길림현이다.(신만주기록이다. ( )안은 왜곡이다.)



✳만주의 지명들은 1906년에서 1928년까지, 한반도는 1911년부터 1930년까지 중국의 지명을 이동조작했기 때문에 한반도는 1911년 이전의 고조선부터 대한제국까지 모든 역사무대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한국사 전체는 일제가 조작한 가짜인데 진짜로 삼고 있다. 이것이 진실이다.

                                                                                  한국상고사연구회 유우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다음글
이전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