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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7. 한국사는 우리 토박이 역사가 아니다.
  • 작성자 : hanbark33
  • 작성일 : 2021.08.16
  • 조회수 : 436

2021-27. 한국사는 우리 토박이 역사가 아니다.


1. 이 발표는 한, 중, 일 3국의 15억 인구 중에서 최초로 필자가 20여년의 피땀흘린 연구 끝에 발견하고, 찾아내고, 추적한 것이므로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일제가 만들어준 기존의 역사만 알고 진실을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깊이 새겨주기를 희망한다.


2. 1910년 일제가 조사한 아시다(한반도) 인구는 1300만 명이었다. 그러므로 국가도 있었고, 왕도 있었고 역사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일제는 이것을 깡그러 말살시켰다.

그리고 일제는 1911년부터 1920년까지 10년 동안 중국 땅에 있었던 대한제국 국민약 400만 명(추정)을 한반도로 이민시켰는데 일제는 그들이 가지고 온 역사를 신만주와 아시다(한반도)에 밎추어서 조작한 다음에 “이것이 너의들의 역사다”고 주었는데 한국은 이것을 받아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일제는 역사조작에 맞추어서 모든 성씨들의 시조를 한반도로 조작했다. 이제 정리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정부가 가짜역사를 독점하여 꾸준히 세뇌시켜서 가짜가 진짜로 둔갑된 것이다.

이민자를 400만명으로 추정한 것은 1910년에 아시다(한반도) 인구를 1300만명이라고 하였는데 1919년 독립선언서에 “2천만 민중”이라고 하였으므로 10년동안 이민시킬 수 있는 최소값을 400만명으로 추정한 것이다.


3. 요동 땅(중국 감숙성∼ 섬서성)은 단국∼ (고)조선∼ 위만조선∼ 북부여∼ 고구려, 계림∼ 고려∼ 이씨조선∼ 대한제국이 점유한 땅이다. 그러므로 단국부터 대한제국까지 한반도 역사가 아니다. 이에 대한 근거들을 “한국사검토서”에 전부 수록했다.

따라서 민족단체라는 허울을 쓰고 고조선이 우리역사이고 단군이 국조라고 하는 것은 일제가 조작한 역사를 고수하는 것이니 일제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하게 하는 것이다.


4. 한국사는 중국사를 섭렵하지 않고서는 밝힐 수 없다. 왜 내나라 역사인데 남의나라 역사를 섭렵해야 밝힐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한국사가 가짜라는 확실한 증거다. -----한국상고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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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지식9, 중국의 신만주 진입시기 검토(2)

(유우찬저 “한국사검토서” 참고)


1. 봉천성, 길림성, 요녕성의 기록을 나열해보자.


⚫천명(태조) 7년(1622년)요양에 동경을 건설했다.

10년(1626년) (동경을) 심양으로 옮겼다.

⚫천총5년(2대 태종5년: 1632년) (심양을)높여서 성경이라고 했다.

성경장군 치소는 승덕현이다. 즉 지금의 봉천 심양현 치소이다.

⚫순치14년(3대 세조14년: 1658년) 봉천부에 부윤울 설치했다.

⚫순치(3대,1644-1661년)에서 강희간(4대, 1662-1722년)에 부와 현을 설치했다.

세월이 많이 지난 후에 성, 부, 청, 주, 현을 증설했는데 수십 개다.

⚫강희3년(4대, 1665)에 승덕현과 부곽을 설치했다.

⚫(옹정간(5대, 1723∼1735년)에 길림녕고탑을 증설했다. 백도눌 등 여러 곳에 주와 현을 설치했다. 건륭간(6대 고종, 1736∼1795년)에 이르러 모두 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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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여기까지는 위치가 구만주인 중국 감숙성이다.

①청태조가 동경인 요양에서 동경을 고구려 경주이며, 발해의 瀋州이고, 고려의 경주인 감숙성 慶陽에 옮기고 천도하려고 성경을 건설했다가 이씨조선 땅이어서 감숙성 요양의 서북쪽 명나라 도성이었던 북경(창려)으로 천도했다.

②감숙성에 봉천부를 새로 설치하고 성(省)으로 승격시키기 위한 준비작업을 했다는 뜻이다. 후세에 국가가 안정되고 행정편제를 증설하고 조정해야할 필요가 있었고, 인구도 늘어났으므로 세월이 지난 후 봉천부를 성으로 승격시키고, 부- 청 –주- 현들을 증설했다는 뜻이다. 최초의 봉천성은 지금의 감숙성과 청해성 땅 전체이다.

그런데 봉천과 요녕을 감숙성에서 만들어서 하북성 북부를 거쳐서 신만주로 이동했기 때문에 구체적 연구를 하지 않은 사람들은 문장만 보고 마치 처음부터 동북3성인 신만주에 설치한 것으로 인식하게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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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륭(6대.1736년∼)초에 성경장군부를 건설했다.

(해설)구만주의 지명이동은 청나라 말기에서 중화민국 때이므로 건륭황제시대인 천총5년에 구만주에 설치한 성경장군을 다시 성경장군부로 승격시켰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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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서30년(11대 덕종 :1905년)에 이르러 다시 장군과 부도통 등의 관리를 두고 길림순무를 설치하고 다시 나누어 각 도를 설치했는데 행성규모를 대비하여 도4,

392개를 설치했으며 치소는 길림현이다.(길림부를 신만주로 이동)

⚫광서31년(11대 덕종:1906년) 부윤을 다시 두고 봉천부지부를 설치했다.(현재요녕성 땅)

⚫광서33년(11대 덕종:1908년)에 장군을 다시 두고(만주 요동반도) 순무를 설치. 성 이름을 봉천으로 바꾸고 동3성에 총독을 주둔시켰다.(신만주 전체를 봉천성으로 함)

⚫광서33년(11대 덕종:1908년)에 이르러 행성규모를 대비하여 지금 지휘소를 도 356로 했으며 치소는 심양현이다.(요녕성으로 분할 독립시킬 준비)

⚫광서이후(1909년 이후) 대륙에 연속해서 부주를 증설하기 시작했다.(길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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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신만주 전체를 봉천성으로 했다가 길림부(두만강 북쪽 최초의 길림성 땅)에 길림성으로 승격시키기 위해 4392개를 설치하고, 요녕부(현재의 요녕성 땅)에 356개를 설치하여 각각 성으로 승격시키기 위해 행정관서를 증설했다는 뜻이다.

광서제 이후 즉 1909년 이후부터 1928년까지 府, 廳, 州, 縣들을 계속해서 증설했다는 뜻이다.

★일제가 만주를 이미 차지하여 1932년에 만주국을 세울 정도였으므로 이 기록들은 일제와 협잡했거나, 중국의 일방적인 조작으로 우리영토를 무단점령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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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통2년(12대, 1911년)에 다시 승덕현을 두었고 부를 직할로 했다.(요녕성 심양현 땅)

(해설)

봉천성 봉천부 치소를 승덕현으로 했다는 것인데 지금 요동반도 심양위치에

먼저 승덕을 옮긴 다음에 후에 요녕성으로 바꾸면서 심양으로 바꾼 것이다.


⚫중화민국 초에 다시 부를 두었다. 승덕현을 그대로 두었다가 후에 지금이름(심양)으로 고치고 봉천성의 치소로 했다. 요심도도 그대로 두었다.(요녕성)

(해설)

중화민국 초에 봉천선 봉천부를 요녕부로 바꾸고, 승덕은 그대로 치소로 삼았다가 후에 1927년 또는 그 전에 심양으로 바꾸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승덕은 다시 하북성북부로 원위치 시켰다.

⚫18년(1928년) 국민정부가 요심도를 폐지하고 봉천성을 요녕성으로 고쳤다. 심양은 치소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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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1

1927년 신만주 전체가 봉천성이었는데 이것을 분할하여 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으로 했으며, 요녕성 치소가 심양이란 뜻이다.

그런데 1928년 장개석의 국민정부에서 신만주 3성을 다시 조정해서 새로 설치한 것이 현재의 동북 3성이다.


2. 결론;


승덕, 성경, 심양은 하나의 같은 현이며 청나라 東京으로서 지금의 김숙성 경양이다. 물론 이씨조선을 한반도로 옮기고 마치 청나라 땅인 것처럼 왜곡한 것이다.

그런데 승덕과 심양을 신만주 요동반도로 옮긴 것은 1911년 청나라 멸망과 중화민국 초이다. 감숙성의 행정지명들을 신만주로 이동시켜서 역사를 이동시켰지만

①청나라가 신만주에 들어올 때의 전쟁, 또는 항복 등의 역사기록이 없다.

②원래 위치인 감숙성에서는 심양(경양)서남쪽에 평양이 있고, 평양서북 300여리에 해성(해주)이 있고, 해성북쪽 70리에 요양이 있고, 요양 북쪽 70리에 창평이 있고, 창평 서남쪽 90리에 창려(북경)가 있고 창려 서남쪽 120리에 노룡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청나라의 역사무대가 동북3성인 신만주라고 하려면 원래 위치에서의 지리적 위치와 지명위치가 같아야 하는데 100% 엉터리다.

따라서 필자는 청나라의 신만주 점유자체를 부정한다. 단지 海上진출을 위해 요동반도 남부만 점유한 것으로 추정한다. 신만주는 모두 우리 땅이었는데 중국과 일제가 서로 각축을 벌인 땅이다.


✳ 만주는 본토에 있는 구만주와 동북3성에 있는 신만주가 있으며 구만주는 중국 서안에서 볼 때 서북방향에 있다. 감숙성 중부에서 그 북쪽 장백산맥 넘어 몽고경계까지다. 한국인들은 구만주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면서도 역사를 잘 안다고 하니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청나라는 구만주의 나라다. 중화민국 때 구만주에서 봉천성,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을 만들어 본토의 동북부로 옮겼다가 다시 신만주로 이동조작했다.

신만주의 지명들은 1905년에서 1928년까지, 한반도 지명들은 1911년부터 1930년까지 중국본토의 지명을 이동조작했기 때문에 고조선부터 대한제국까지 모든 역사무대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한국사 전체는 일제가 조작한 가짜인데 진짜로 삼고 있다. 이것이 진실이다.


★ 1927년에 설치된 중국의 행정구역

청해성열하성찰합이성하북성요녕성길림성흑룡강성하북성의 북경.

하북성의 북경은 명나라, 청나라의 도성이 아니라 중화민국의 도성이다. 1927년 일제 때 만들어진 신만주 땅에 어떻게 고조선, 고구려, 발해가 있다는 것인가?

한국상고사연구회 유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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