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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8. 한국사는 우리 토박이 역사가 아니다.
  • 작성자 : hanbark33
  • 작성일 : 2021.08.23
  • 조회수 : 409

2021-28. 한국사는 우리 토박이 역사가 아니다.


1. 이 발표는 한, 중, 일 3국의 15억 인구 중에서 최초로 필자가 20여년의 피땀흘린 연구 끝에 발견하고, 찾아내고, 추적한 것이므로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일제가 만들어준 기존의 역사만 알고 진실을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깊이 새겨주기를 희망한다.


2. 1910년 일제가 조사한 아시다(한반도) 인구는 1300만 명이었다. 그러므로 국가도 있었고, 왕도 있었고 역사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일제는 이것을 깡그러 말살시켰다.

그리고 일제는 1911년부터 1920년까지 10년 동안 중국 땅에 있었던 대한제국 국민약 400만 명(추정)을 한반도로 이민시켰는데 일제는 그들이 가지고 온 역사를 신만주와 아시다(한반도)에 밎추어서 조작한 다음에 “이것이 너의들의 역사다”고 주었는데 한국은 이것을 받아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일제는 역사조작에 맞추어서 모든 성씨들의 시조를 한반도로 조작했다. 이제 정리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정부가 가짜역사를 독점하여 꾸준히 세뇌시켜서 가짜가 진짜로 둔갑된 것이다.

이민자를 400만명으로 추정한 것은 1910년에 아시다(한반도) 인구를 1300만명이라고 하였는데 1919년 독립선언서에 “2천만 민중”이라고 하였으므로 10년동안 이민시킬 수 있는 최소값을 400만명으로 추정한 것이다.


3. 요동 땅(중국 감숙성∼ 섬서성)은 단국∼ (고)조선∼ 위만조선∼ 북부여∼ 고구려, 계림∼ 고려∼ 이씨조선∼ 대한제국이 점유한 땅이다. 그러므로 단국부터 대한제국까지 한반도 역사가 아니다. 이에 대한 근거들을 “한국사검토서”에 전부 수록했다.

따라서 민족단체라는 허울을 쓰고 고조선이 우리역사이고 단군이 국조라고 하는 것은 일제가 조작한 역사를 고수하는 것이니 일제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하게 하는 것이다.


4. 한국사는 중국사를 섭렵하지 않고서는 밝힐 수 없다. 왜 내나라 역사인데 남의나라 역사를 섭렵해야 밝힐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한국사가 가짜라는 확실한 증거다. -----한국상고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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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지식7, 현대지명인 백두산(白頭山)과 횡산(橫山)

(유우찬저“ 한국사검토서” 참고)


✳동북3성인 신만주의 지명들은 1905년에서 1928년까지, 한반도는 1911년부터 1930년까지 중국의 지명을 이동하여 역사를 이동조작했기 때문에 신만주와 한반도는 1911년 이전의 고조선부터 대한제국까지 모든 역사무대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한국사 전체는 일제가 조작한 가짜인데 진짜로 삼고 있다. 이것이 진실이다.


1. 고구려본기의 태백산(太白山):

“吉林之長白山(길림의 장백산이다.)”

태벡산은 중국에 6개소에 있다고 기록되었는데 고구려사에 해당하는 것은 “길림의장백산”이라는 것이 해당된다. 즉 장백산이 태백산이란 뜻이다.


2. 장백산(長白山)(중국고금지명대사전):

봉천장백현 북쪽에 있다. 한나라 때 단단대령(單單大嶺) 또는 개마대산(蓋馬大山)이다. 후위가 태백산, 도태산, 종태산, 태황산이라고 했다. 장백산은 금나라가 처음 썼으며 백산(白山)이라고도 했다. 만주어(滿州語)로 과륵민산연아림(果勒敏山延阿林)이다. 장백산이란 뜻이다. 산 높이가 10000내지 12000--

계속해서 “--사방주위에서 수많은 물들이 들어오고 세 강의 근원이다. 세 강은 압록강, 도문강, 송화강이다 ----” 등으로 현재의 한반도 북쪽 만주 땅과 백두산을 설명했다.

이 문장에서 당장 알 수 있는 것은

①. 산 높이가 약 3300m∼4000m이니 한반도 백두산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②. 그 다음에 역사의 진실을 추적하려면 최초의 길림, 봉천, 만주가 어디인지를 추적해야 한다.

우선 한반도 북쪽의 만주는 1932년 일제가 만주국을 건국하고 구만주 역사를 신만주로 이동 조직했으므로 고조선, 고구려, 발해는 현재의 신만주 땅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다.

③. “만주”라는 이름은 남쪽은 “위만조선(衛滿朝鮮)” 땅이고, 북쪽은 흉노 두만(頭滿)의 땅이어서 “滿州”라는 이름이 된 땅이다. 그런데 한반도 북쪽의 신만주 땅은 위만이나 흉노가 점유한 사실이 없으니 신만주가 아니고 중국에 있는 구만주다.

④. 1911년 이후 손문정부 초기의 길림성, 봉천성은 현재의 감숙성과 섬서성 북쪽인데 일제가 1932년에 한반도 북쪽에 “만주국”을 세우고 옮겨놓은 것이다.

원래의 만주 땅에 봉천성을 만들었다가 신만주로 이동했고, 후에 길림성을 만들어서 신만주로 이동했으니 구만주 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근거는 유우찬의 저서 “고조선, 고구려, 발해위치연구”등 여러 책에서 규명했다.

그러므로 원래의 장백산은 내몽고 장백산맥을 한나라 때는 단단대령, 후위 때는 최고봉을 태백산, 금나라 때는 장백산으로 부른 것이다.

물론 한나라가 부른 단단대령이나 개마대산은 남쪽에 있었는데 후에 북쪽으로 이동 조작한 기록이다. 이렇게 중국기록을 보고 조작상황을 알려면 진실역사추적에 대한 공부를 10년 이상 한 사람이 아니면 대학교수나 박사라도 금방 알기는 어렵다.


3. 백두산(白頭山)기록(중국고금지명대사전):

“조선 사람들이 장백산을 백두산으로 불렀다. 장백산조에 상세하다(朝鮮人呼長白山爲白頭山. 詳長白山條)”

백두산에 대한 기록은 이것이 전부다. 그러므로 중국 내몽고의 장백산, 태백산이 바로 백두산이란 뜻이다. 태백산, 장백산, 백두산이 하나의 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을 일제가 “만주”이름과 함께 한반도 북쪽으로 이동 조작하여 역사를 조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쓸개빠진 사람이 아니면 “백두산“이란 이름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애국가“에 나오니 한국인들은 애국가 부를 때마다 자동적으로 백두산을 부르게 되고 머릿속에 깊이 세뇌시키게 된 것이다. 애국가 작사가는 일제의 치밀한 심리전술가였을 것으로 본다.


★태백산의 결론:

고려사기나 이조실록에 백두산이 나온다면 고려나 이씨조선의 역사무대가 한반도가 아니고 중국 땅에 있었기 때문에 이상할 것이 없다.

현재 한국의 모든 역사책들은 일제가 일본제국의 대륙사로 창조했으므로 만주와 한반도의 모든 지명도 일제 때 중국에서 이동 조작한 현대지명들이다. 따라서 현재 역사책들이 이 땅의 진짜역사가 아니라는 증거는 1000가지도 넘는 셈이다.


4. 고구려본기 횡산(橫山)

①횡산(橫山)(중국고금지명대사전):

“요녕요양현에 있는 화표산이다. 당나라 설인귀가 온사다문을 격파한 곳이다(遼寧遼陽縣之華表山. 唐薛仁貴破溫沙多門於此“

(해설) 화표산은 중국본토에만 있고 신만주와 한반도에는 없다.


②횡산현(橫山縣):

“한나라 사연현, 후위의 암록현, 당나라 삭방, 서하 땅, 명나라 회원보, 청나라 회원현인데 중화민국이 횡산현으로 고쳤는데 옛 섬서성 유림도다.(漢)徙延縣. (後魏)巖綠縣. (唐)朔方. 西夏 땅. (明)懷遠堡. (淸)懷遠縣. 民國改爲橫山縣舊屬陝西楡林道

★횡산의 결론

고구려본기에 나오는 횡산은 원래 중국 감숙성에 있는 화표산인데 1911년 이후 손문의 중화민국이 “횡산”으로 바꾸어 섬서성 북부에 이동 설치한 것이므로 횡산은 현대지명이다. 그런데 한반도역사라고 조작된 고구려본기에 나오므로 일제가 중국의 역사를 한반도로 이동 조작했다는 증거 중의 하나가 되었다.

중국사기를 연구하면 지명위치를 옮기거나 지명을 변조할 때는 이름을 바꾼다는 공통점이 발견되었다. (유우찬저 “한국사검토서” 참고)

                                                                                    한국상고사연구회 유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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