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9. 한국사는 우리 토박이 역사가 아니다.
1. 이 발표는 한, 중, 일 3국의 15억 인구 중에서 최초로 필자가 20여년의 피땀흘린 연구 끝에 발견하고, 찾아내고, 추적한 것이므로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일제가 만들어준 기존의 역사만 알고 진실을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깊이 새겨주기를 희망한다.
2. 1910년 일제가 조사한 아시다(한반도) 인구는 1300만 명이었다. 그러므로 국가도 있었고, 왕도 있었고 역사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일제는 이것을 깡그러 말살시켰다.
그리고 일제는 1911년부터 1920년까지 10년 동안 중국 땅에 있었던 대한제국 국민약 400만 명(추정)을 한반도로 이민시켰는데 일제는 그들이 가지고 온 역사를 신만주와 아시다(한반도)에 밎추어서 조작한 다음에 “이것이 너의들의 역사다”고 주었는데 한국은 이것을 받아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일제는 역사조작에 맞추어서 모든 성씨들의 시조를 한반도로 조작했다. 이제 정리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정부가 가짜역사를 독점하여 꾸준히 세뇌시켜서 가짜가 진짜로 둔갑된 것이다.
이민자를 400만명으로 추정한 것은 1910년에 아시다(한반도) 인구를 1300만명이라고 하였는데 1919년 독립선언서에 “2천만 민중”이라고 하였으므로 10년동안 이민시킬 수 있는 최소값을 400만명으로 추정한 것이다.
3. 요동 땅(중국 감숙성∼ 섬서성)은 단국∼ (고)조선∼ 위만조선∼ 북부여∼ 고구려, 계림∼ 고려∼ 이씨조선∼ 대한제국이 점유한 땅이다. 그러므로 단국부터 대한제국까지 한반도 역사가 아니다. 이에 대한 근거들을 “한국사검토서”에 전부 수록했다.
따라서 민족단체라는 허울을 쓰고 고조선이 우리역사이고 단군이 국조라고 하는 것은 일제가 조작한 역사를 고수하는 것이니 일제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하게 하는 것이다.
4. 한국사는 중국사를 섭렵하지 않고서는 밝힐 수 없다. 왜 내나라 역사인데 남의나라 역사를 섭렵해야 밝힐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한국사가 가짜라는 확실한 증거다. -----한국상고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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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지식10. 중국민족의 대분류
1). 중국민족을 크게 분류하면 사이(四夷)라고 한다.
서쪽은 백인족(흉노)과 청묘족(치우), 동쪽은 고례족, 북쪽은 선비족(숙신족)이며, 남쪽은 남묘족(남방묘족)이다.
여기서 한민족(韓民族)이란 북방의 선비(숙신)족과 동방의 고례족인데 통털어 동이족이라고 한다. 한반도는 동이족의 조상이며 원류이지 동이족이 아니다.
아시다(한반도)의 서해바다와 남해바다는 육지였는데 대체로 6500년 전후의 지구변동시대에 해일이 밀려와 아시다의 민족은 동몽골로 피난했다. 옛날에는 지구기후가 더워서 만주와 한반도가 바다, 호수, 늪지, 습지가 되어 몽골로 간 민족들은 돌아오지 못하고 몽골에서 나라를 건국했는데 환단고기의 인드(환국)12제국 중의 하나인 선비국이다. 후세에는 숙신국이라고 했으며 전통적인 농업민족이었기 때문에 남쪽의 농사가 잘되는 감숙성과 섬서성으로 남하해서 예맥족이 되었다.
대략 6000년 전후에 서쪽에서 온 웅칸(환웅)이 선비국의 일파인 내몽고 태백산지역의 호족(虎族)터전을 차지하고 “밝나라(밝달)”를 건국했다. 이때 환웅에게 터전을 빼앗긴 호족(虎族)들은 당연히 환웅에게 반대하고 적대하니 사해 밖으로 쫒아냈다. 환단고기에서는 호족(虎族)이라고 썼지만 호족이 아니고 옛날에 부족을 상징할 때 곰, 호랑이, 늑대 등의 머리를 깃발에 꽂아 시용했으므로 호기족(虎旗族)으로 써야 맞다. 그런데 쫓겨난 호기족의 시조로 추정되는 고시례를 환단고기에서는 환웅의 농업장관이라고 하였으니 원래는 아닌데 일제가 조작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쫒겨난 호기족은 내몽고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당시에는 만주평야지가 바다여서 일부가 적봉유적지역에 남고, 또 일부는 아시다(한반도)의 압록강 남북으로 와서 “례(禮)”국을 건설하니 이것이 “고례(高禮)“국이다. ”례”국을 일명 “고례“라고 하는 것은 후세에 이들의 성씨가 고씨(高氏)였기 때문이다. ”고시례“란 이름일 수도 있지만 ”례“국의 시조라는 별칭일 수도 있다.
이들의 이동경로인 내몽고∼ 적봉∼ 만주는 피라밋이 같은 유형이다. 만주의 피라밋들은 6500년 전 이전의 것일 수도 있고 이후의 것일 수도 있는데 만약 6500년 전 이후의 것이 확실하다면 고례족이 건설한 것이며 결코 고구려 유물이 아니다. 이 피라밋은 민족의 이동에 의하여 멕시코와 수메르의 피라밋과도 같은 유형인데 만주피라밋보다 연대가 늦다.
2000년대 초 중국의 해수변화발표에 의하면 지금 지도상에서 초록색으로 된 중국과 아시다(한반도)의 평야지 즉 중국의 하북성, 산동성, 하남성동부, 안휘성, 양자강 이남과 신만주, 아시다(한반도) 평야지가 모두 2500년 전까지는 바다, 호수, 늪지, 습지였다. 압록강 남북의 고레국에서 기까운 하북성-산동성-안휘성이 중국의 동해로서 연안바다이므로 대략 5700년 전후시대에 고기잡이 배를 타고 소호씨가 산동성 태산이 섬일 때 옮겨가서 살았고, 소전씨(신농씨)가 벳길로 호북성 려산섬으로 이동하여 자리 잡았는데 소전씨의 후손인 신농씨가 5200년 전후에 중국천하를 통일하여 天子가 되었다. 이후 단군의 아들 부소의 봉국인 고리(高麗)를 고주몽의 고우리(高句麗), 왕건의 고리(高麗)까지 국가칭호로 사용한 것이다. “고리”는 태호복희의 구리(句麗)를 치우가 구리(句黎)로 바꾸었는데 단군 때 단군이 고씨(高氏)이므로 고리(高麗)로 바꾼 것이다. 왕건의 고리는 중국사기와 한국사기 모두 중국의 나라로 나타나는데 교육부에서 우리나라로 가르치고 있어서 국밀들을 일제의 식민으로 만들어왔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고려의 영토를 계승한 동이족인 이씨조선은 단군∼ 고구려∼고려를 계승한 국호가 아니고 서이족인 백인흉노족이 건설한 “조선”이란 국호를 계승했다는 점이다. 이성계의 국호는 원래 “조선”이 아니었는데 일제 때 서세동점의 역사조작으로 인하여 “조선”으로 변조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부분이다.
그래서 이씨조선실록은 믿을 수 없는 책이 되어버렸다.
※이 내용은 과학적 학문분야인 지구환경학을 접목하여 우리민족의 이동경로를 추적하면서 역사의 개요를 정리하여 저서로 낸 “인류의 본향 마드”를 참고한 것이다.
그런데 일제 때 토착역사를 완전히 쓸어내고 조작해서 자료가 부족했기 때문에 논문으로는 제시하지 못하고 드문드문 나오는 근거들을 연결해서 개요적으로 쓴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도라도 역사의 진실을 추적하여 개요를 정리하게 된 것을 필자는 큰 보람으로 여긴다.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2). 중국의 국가와 민족
| 중국의 국가와 민족 | ||||
| 국호 | 시조 | 도읍지 | 나라위치 | 인종 |
| 밝나라 | 웅칸(환웅) | 청구 | 내몽고태백산 | ? 西來人 |
| 단(檀) | ? (檀君) | 밝달(博達) | 감숙성 | 황인동이 |
| 조선(朝鮮) | 색부루(單君) | 장당경 | 감숙성 서부 | 백인흉노 |
| 하(夏) | 夏后씨(禹) | 안읍:가짜기록 | 청해성 | 백인흉노 |
| 은(殷) | 成湯 | 박(亳,薄, 博) | 감숙성남부와 청해성 | 황인동이 |
| 주(周) | 문왕 | 빈(邠): 조작된 가짜 | “ | 묘족 |
| 진(秦) | 非子 | 天 水: 조작된 가짜 | “ | 묘족 |
| 한(漢) | 유방 | 長 安: 조작된 가짜 | “ | 묘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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