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機포럼 安保時論 21-54회, 임금이 임금 노릇을 잘해야지
2021. 9. 9(목)
安民硏究所長
文 會 穆
황제가 되어서는 안 되는황제
임금 노릇만 못했습니다(獨不能爲君).
임금이 임금 노릇을 잘해야지(人君貴能爲君)
다른 일을 잘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它非所尙也)
중국 역사상 정치적으로 가장 무능한 군주를 꼽으라면, 北宋의 제8대 황제인 徽宗이라 말할 수 있다. 취미 생활과 도교 신앙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아 반란이 일어났으며, 1125년에 金나라가 침입하여 황제 자리에서 물러났다. 1127년 정강의 변(靖康之變)에 포로가 되어 만주의 오지에서 노역에 시달리다 객사한다..
정강의 변 이후, 송나라는 카이평(개봉)에서 지금의 항저우(임안)로 수도를 옮긴다. 그 후 송나라는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다 결국 1279년 원나라의 침략에 망한다.
< 안보 경시의 종말
당나라가 망하고 五代十國 50여년의 혼란기를 수습하던 後周의 명군 世宗이 갑자기 사망하자 7세의 어린 아들이 황제자리(恭帝)를 물려받는다. 이 틈을 타 주변 국가들이 공격하려 한다는 소식에 후주의 정예부대인 금군(禁軍)이 출전하게 됐다. 그러자 어린 임금에 불안해 하던 장병들은 전공이 뛰어나고 인망이 두터운 조광윤(趙匡胤ㆍ927~976)을 받들어 제위에 올렸다. 그가 바로 송나라 태조이다.
송 태조는 황제를 추대할 수 있는 막강한 군부를 통제하기 위해 지방에서 할거하던 군사 조직인 번진을 축소하고, 중앙에 정예병을 집중하려 했다. 태조 이후 황제들도 이 정책을 따르면서 번진의 책임자를 문신으로 교체되었다. 문인정치의 중용으로 군이 사유화되거나 지방 군벌화 되는 경향은 사라졌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여러 폐단이 생겨났다. 그 중 하나가 각 분야에서 문신 우위 현상이 지나쳐, 군사 방면에 무능, 무지한 문신들이 전략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역사가들은 이를 송나라가 잦은 외침에 시달리게 된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게다가 매년 문과를 보는 사람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문관의 높은 봉급과 여러 우대조치로 막대한 재원을 필요로 하게 되고, 이에 따라 군사력 약화를 초래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이런 군사력의 약화가 부른 대참사가 1127년의 ‘정강의 변(靖康之變)’이다. 금나라의 공격으로 수도 개봉이 함락되고 휘종(徽宗), 흠종(欽宗) 두 황제와 황후, 태자 등 3,000여 명이 포로가 되어 금나라로 끌려간 사건이다. 중국 역사에 없던 漢族의 치욕이었다.
이 참극을 만든 장본인이라고 비난을 피할 수 없는 군주가 徽宗 조길(趙佶ㆍ1083~1135)이다. 황제로서의 무능함을 기술한다면 지면이 모자랄 정도이다. 탐관오리와 수탈당하는 백성, 도적과 민란이 일상이던 수호전의 배경이 바로 휘종 때이다.
겉은 화려한데 속은 곪은 것이 휘종 시대의 암울한 사회상이었다. 신기하게도 휘종은 정치 만 빼고 다른 면에서는 놀랄 정도로 뛰어났다. 詩書畵는 기본이고 음악, 조경까지 못하는 분야가 없었다. 지금도 전해지는 계산추색도, 납매산금도, 메추리와 난초 등의 휘종의 글씨나 그림을 보면 황제가 취미생활로 한 작품이라기 보다 전문가 수준의 걸작품이다.
이와 관련된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원나라 황제가 휘종의 그림을 구경하며 감탄하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신하가 말한다.
“휘종은 다재다능했지만 한 가지 일만은 무능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대답하였다.
“임금 노릇만 못했습니다(獨不能爲君).
임금이 임금 노릇을 잘해야지(人君貴能爲君)
다른 일을 잘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它非所尙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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