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38. 삼국사기는 일제가 이동 조작한 가짜다.(신라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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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는 일제 강점기부터 계승되어온 후계들과 일본유학으로 일본의 교육을 받아 양성된 학자들이 친일파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이들이 중국의 역사책을 한반도의 역사로 조작하여 만든 환단고기,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기, 이조실록같은 책으로 공부하여 그들에게 종속되거나, 친일파의 우군이 된 재야학자들로 친일파가 넓게 형성되어 있다. 그런데 강단학자나 재야학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다. 그래서 국민들은 직금도 일제의 식민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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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금성에 대한 검토
①금성현(金城縣)(중국고금지명대사전):
“한나라가 감숙성 고란현에 설치했다. 동진(東晋: 317-418) 때 걸복건(서진: 385-431)이 돌아와 원주(苑州: 남경)에서 금성으로 천도하고 하남왕(河南王)이라고 칭하다가 금성왕으로 고쳤는데 그것이 금성현이다. 후위 때는 성(省)이었는데 자성현(子城縣)으로 고쳤다. 수나라가 금성으로 고쳤다가 오천(五泉)이라고 했는데 지금(중화민국 때) 감숙성 고란현(란주)이다.
당나라 때는 련수현(漣水縣 : 절강성 湖州)을 나누어 북쪽에 금성현을 설치했는데 금나라 때의 진(鎭)이다.“
(해설)
수나라가 금성으로 고친 곳은 같은 감숙성이지만 서황하 건너 란주 서북의 수나라 땅이다. 사로 땅의 금성과 위치가 다르다. 금성은 신라의 금성이 아니라 사로의 금성이다. 신라는 후세에 생긴 이름이다. 사로의 금성은 원래 중국 감숙성 란주 서쪽에 있었는데 란주 동서남북으로 이동되었다.
② 금현(金縣)(중국고금지명대사전):
“ 주나라, 진나라 때 (위만)조선 땅이다. 한나라 현토 소속이다. 진나라에서 수나라까지는 고구려 땅이다. 당나라가 고구려를 평정하고 금주(金州)를 설치했다. 요나라 소주 안복군이다. 금나라가 다시 금주로 했다. 원나라 개주로인데 요양과 함께 관리했다. 명나라 금주위다. 청나라 녕해군인데 도광 때 금주부(金州府)로 하여 봉천부 소속으로 했다. 중화민국이 금현으로 고치고 봉천동변도 소속으로 했다. 그 땅이 요동반도 남쪽에 있다.
⊙금나라가 금주를 설치했다. 명나라는 현으로 하고 청나라는 감숙성 란주부 소속으로 했다. 중화민국은 금성현으로 했다가 다시 유중으로 고쳤다.(周秦朝鮮地. 漢屬玄菟. 晉至隋屬高句麗. 唐平高麗置金州. 遼爲蘇州安復郡. 金復爲金州. 元初屬盖州路. 後倂遼陽. 明爲金州衛. 淸置寧海郡. 道光爲金州府. 屬奉天府. 民國改爲金縣屬奉天東邊道. 地在遼東半島南.
⊙金置金州. 明爲縣. 淸屬甘肅蘭州府. 民國爲金城縣. 又改爲楡中)“
(해설)
①번과 ②번의 본문에서 여러 개의 금성이 나온다. 그러나 사로의 금성은 아니다. 중국 감숙성 란주(금현, 금주)는 현토군소속이고 고구려 땅이다. 사로의 동명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사로는 동명에서 일어나 남쪽의 금성을 건설하여 도성으로 삼았으나 고구려에게 빼앗기니 다시 남쪽의 월성으로 천도한 것으로 추정된다. 월성이란 달을 숭배하는 이름이다. 달은 중국의 서쪽나라인 사로와 당나라에서 숭상한다. 동쪽에서는 달을 숭상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로와 계림을 동쪽의 안라로 이동조작하여 1000년역사로 둔갑시켰다. 그래서 금성과 월성이 강소성 남경일대에서 나타나게 된 것이다.
③금산(金山)(중국고금지명대사전):
금산이란 지명은 많으나 해당사항만기록한다.
”역시 황금산이라고도한다. 봉천금현서남 127리에 있다. 당나라 영주도독 고간이 포위된 곳이다. 설인귀가 구해주었다. 싸운 곳이 금산이다.(亦名黃金山. 在奉天金縣西南百二十七里. 唐營州都督高侃被圍. 薛仁貴求之. 戰於金山. 卽此.)
(해설)
많은 금산 중에서 황금산이라고 칭하는 것은 이곳 뿐이다. 사로 사람들이 성을 지을 때 땅을 파니 황금이 나와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사로의 금성이다.
”667년 당나라 고간이 침략했다가 고구려군에게 포위되었는데 668년 설인귀가 고간을 구하고 금산을 점령했다“는 당나라와 고구려의 전쟁사에 나오는 금산이 사로의 금성이다. 중국감숙성 란주의 서남쪽 127리에 있다. 청나라 때는 중국 감숙성 란주부 소속이었다.
금산(금성)이 고구려에 점령되었으므로 사로는 남쪽(월성)으로 천도했을 것인데 기록을 말살하여 자취가 없다.
❉위 문장에서 사로나 신라가 없는 것은 중국 동부로 이동 조작했기 때문이다.
”중화민국이 금현으로 고치고 봉천동변도 소속으로 했다. 그 땅이 요동반도 남쪽에 있다“의 문구는 중화민국 때 신만주(동북3성)로 이동 조작한 것이다.
중국의 지리지는 조작된 것이기 때문에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줄 알아야 올바른 역사를 할 수 있다.
한나라, 수나라, 당나라 때의 요수는 지금 중국 청해성과 감숙성의 경계인 서황하다. 요서의 수나라, 당나라는 요동의 고구려를 침략했고, 수나라 백성들이 “서녕의 산을 바라보고 일찍 기도를 하면 응한다.(중국고금지명대사전)“는 기록에서 서녕은 청해성의 청해호 동쪽이므로 수나라가 청해성의 나라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수나라 땅을 계승한 당나라도 지금의 중국 청해성이다. 고구려의 서쪽에 있는 나라다. 그런데 수나라, 당나라를 고구려 동쪽으로 이동조작하여 섬서성 서안에 도읍하고 증국 중앙지를 차지한 것으로 조작했다.
기록으로 보면 금성이 주나라에서 청나라까지는 감숙성 란주지역인데 시로와 계림을 중국 동부로 이동조작하여 이동된 금성은 현재의 강소성 남경(신라 금릉, 금성)지역에 3개소가 있다. 또 동쪽으로 이동조작한 서라벌의 도읍 경주는 통일신라 때 낙양인데 중국기록에는 당태종이 낙양에 별궁을 건설한 곳으로 되어있고 무측천(684-705)이 낙양에서 통치한 것으로 되어있어서 처음부터 당나라 땅인 것처럼 조작되었다. 역사를 조작하는 과정에서 사기의 기록들이 이중 삼중으로 중복되어서 개판이다. 중국 동부의 신라를 한반도로 이동 조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 당나라가 본토에 오지 않았으므로 모든 기록이 조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유우찬저 “삼국사기검토서” 참고)
------------- 한국상고사연구회 회장 유우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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