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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39. 삼국사기는 일제가 이동조작한 가짜다(신라경주편)
  • 작성자 : hanbark33
  • 작성일 : 2021.11.29
  • 조회수 : 268

2021-39. 삼국사기는 일제가 이동 조작한 가짜다.(신라경주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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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는 일제 강점기부터 계승되어온 후계들과 일본유학으로 일본의 교육을 받아 양성된 학자들이 친일파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이들이 중국의 역사책을 한반도의 역사로 조작하여 만든 환단고기,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기, 이조실록같은 책으로 공부하여 그들에게 종속되거나, 친일파의 우군이 된 재야학자들로 친일파가 넓게 형성되어 있다. 그런데 강단학자나 재야학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다. 그래서 국민들은 직금도 일제의 식민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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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경주(慶州)에 대한 검토.

수나라가 설치했다. 후에 홍화군으로 고쳤다. 당나라가 복귀했다가 안화군으로 고쳤다. 다시 순화군으로 고쳤다. 후에 다시 경주로 복귀했다. 송나라 경주안화군이다. 후에 경양부로 승격했다. 지금의 감숙성 경양현이다.(隋置. 尋改曰弘化郡. 唐復置改曰安化郡. 又改順化郡. 尋復爲慶州. 宋曰慶州安化郡. 後升爲慶陽府. 卽今甘肅慶陽縣)”(중국고금지명대사전)

✳(해설)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은 모든 역사를 조작한 다음에 거기에 맞추어서 1931년에 발행한 중국의 마지막 지리서이다. 그후 1982년에 재판했다. 중국의 역사를 일제때 한반도로 이동조작했으므로 신라와 경주란 이름은 한반도 경상도에 있다고 기록되어야 하는데 지명들이 다 중국 땅에 있다고 기록되었으므로 삼국사기가 이동조작된 가짜 책이라는 것이 나타난다.

수나라가 설치했다.“

경주는 고구려와 고려 땅이다. 수나라는 경주를 점령하지 않았으며 당나라는 고구려를 점령했으니 경주란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 수나라와 송나라 경주라는 것은 삼국사기와 고려사기를 한반도로 이동조작한 후에 전부 중국나라들이 차지한 것으로 조작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중국사는 모두 이런식으로 조작된 것만 남아 있고 진서는 한권도 없다.. 그러므로 역사의 진실을 연구하지 않은 채 현존하는 중국사기를 참고하는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모두 틀린 것이다.

경주는 고구려와 고려의 경주이지 신라의 경주가 아니다. 중국동부의 신라에 경주가 있다고 하는 것도 조작된 것이다.

신라의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하니 고려왕건이 개성근처에 있는 경주를 경순왕의 식읍으로 준 도시가 경주다. 지금의 중국 감숙성 경양이다.

한반도의 경주가 신라의 서울이라는 것은 일제 때 이동조작된 가짜이다.


4. 이씨조선 지리지의 慶州

(신증동국여지승람제21권 경상도경주부)

본래 신라의 옛 수도이다. 한나라 오봉원년(宣帝: BC.54-57) 시조 혁거세가 나라를 열고 도읍을 세워 나라이름을 서야벌(徐耶伐)이라고 했으며 이후로는 방언으로 왕경(도읍)을 서야벌이라고 통칭했다. 혹은 사라(斯羅), 혹은 사로(斯盧), 뒤에 신라라고 했다. 탈해왕 때에 시림(始林)에 괴이한 닭이 있었으므로 이름을 계림(鷄林)이라고 고치고 나라 이름으로 했는데 기림왕(基臨王)이 다시 신라로 하였다. 고려태조 18년에 경순왕 김부가 항복하니 나라는 없어지고 경주라 하였다성종(고려 6대 981-997) 때 동경유수(東京留守), 현종(고려 8대 1009-1031) 때 경주방어사또 안동도호부로 고쳤다.”

✳(해설)

이 문장은 서라벌, 사로, 계림, 신라를 섞어놓은 혼합문장이다. 서라벌 서부일부와 사로가 합병하여 계림이 되었다. 신라는 중국 동부로 이동조작했을 때의 나라이름이다.

본래 신라의 옛 수도이다.

신라의 엣 수도라고 한 것은 후세에 조작한 문구이다. 신라가 아니라 본래 서야별(서라벌: 낙랑군 땅)의 경주이다.

사라 혹은 사로는 감숙성 조하 서쪽의 한나라 임둔군 땅이고, 서라벌은 동쪽인 두번째 낙랑군(서라벌) 땅이다. 그 낙랑군 서쪽일부와 사로가 합병한 것이 계림이다.

그러므로 “시림(始林)에 괴이한 닭이 있었으므로 이름을 계림(鷄林)이라고 고치고---” 는 사로와 서라벌의 역사를 말살하기 위해 후세에 조작한 것이다.

고려태조 18년에 경순왕 김부가 항복하니 나라는 없어지고 경주라 하였다.”

이 문장은 신라가 없어지고 신라 땅을 경주라고 해석할 수 있는 문장이다. 조작왜곡으로 보인다.

항복한 백제 의자왕과 왕족을 당나라로 데려갔고, 항복한 고구려 보장왕과 왕족을 당나라로 데려갔다. 이렇게 항복한 왕족을 그 나라에 두지 않는 것이 옛날의 관례였다. 마찬가지로 항복한 경순왕을 신라 땅에 그대로 두지 않는 것이 당시의 관례였다. 그래서 고려도읍지인 개성근처에 식읍으로 준 도시 이름이 경주다.

고려의 도읍인 개성의 동쪽에 있으므로 고려가 동경유수라고 했고, 당나라 때 두 번째 안동도호부였으므로 경주방어사를 안동도호부로 고쳤다고 했다.

중국 땅에 있었던 고려를 계승한 이씨조선이 경주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을 한 것은 이씨조선이 중국 땅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5. 신라의 월성(月城)

월성진(月城鎭)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중국서부에서 동부로 이동조작한 월성진은 현재 중국 강소성 남경(금릉, 금성) 동쪽방향에 있다.

⬤ 이씨조선 세조 때 고구려 평양을 평양진(平壤鎭)으로 설치한 것과 같이 신라의 월성도 월성진(月城鎭)으로 고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므로 고조선, 고구려, 신라, 백제, 고려, 발해가 중국 본토에 있었으니 고려를 계승한 이씨조선이 중국의 나라인 것은 당연한 것이다.

만약 이씨조선이 한반도에 있었다면 8천여리나 떨어진 다른 나라의 경주를 구체적으로 기록할 필요가 없다.(유우찬저 “삼국사기검토서” 참고)

------------- 한국상고사연구회 회장 유우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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